
'춤의 몬드리안'이라 불리며 현대 발레계에 획을 그은 안무가 한스 판 마넨이 1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발레의 고전적 어법과 현대적 감성을 결합해 20세기 이후 무용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절제된 형식 속 인간 관계와 감정의 긴장을 담는 데 탁월한 장기를 발휘했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상주 안무가였던 그는 일생동안 12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세계 90여개 발레단에서는 그의 작품이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

1932년 네덜란드 니우베르암스텔에서 태어난 그는 발레 무용수로 경력을 시작했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안무 창작에 관심을 보였으며 1957년 첫 안무작을 발표하며 창작자로서 길을 걸었다. 무용수의 신체적 한계를 과시하는 것보다 음악의 구조와 움직임의 관계, 무대 위 인간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를 탐구한 그의 작업은 유럽 무용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1960년대 이후 판 마넨은 네덜란드 댄스씨어터(NDT)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현대 발레를 구축했다. 그의 발레는 정교한 기술을 유지하면서도 장식적인 움직임은 걷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대 발표한 '거대한 푸가(Grosse Fuge)'와 '아다지오 함머클라비어(Agagio Hammerklavier)', '5 탱고스(5 Tango's)'등은 음악과 움직임의 긴밀한 결합을 보여준 대표작이다.

판 마넨은 1973년부터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상주 안무가로 활동하며 레퍼토리 확장에 기여했다가 다시 NDT로 돌아가 2000년대 초반까지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은 고전과 현대를 잇는 필수 레퍼토리로 이름을 올렸으며 전통과 동시대 예술의 가교 역할을 했다. 무용 외에도 사진 작업에도 애정을 보였다. 인체와 움직임에 대한 탐구를 사진을 통해 이어갔다. 많은 업적으로 에라스무스상, 브누아 드 라 당스 평생 공로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한국과의 인연 또한 주목할 만하다.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였던 발레리나 김지영은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판 마넨 작품의 주요 배역을 맡았다. 김지영은 그의 작품이 요구하는 절제된 테크닉과 음악성, 감정의 밀도를 탁월하게 구현하며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았고, 이는 한국 무용수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근엔 한스 판 마넨의 작품이 한국 무대에서 많이 소개됐다. 2024년 창단한 서울시발레단은 판 마넨의 주요 작품을 레퍼토리로 올리며 국내 관객에게 그의 미학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특히 '캄머발레(Kammerballett)'와 '5 탱고스' 등은 간결한 구성 속에서 드러나는 긴장감과 음악적 정밀함으로 호평을 받으며 한국 발레계에 현대 레퍼토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캄머발레에서는 김지영이, 5 탱고스에서는 네덜란드발레단 수석무용수 최영규가 객원 댄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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