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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의 신뢰 모델, 용퇴와 전문경영인 승계 [EDITOR's LETTER]

입력 2025-12-22 07:00   수정 2025-12-24 16:34

[EDITOR's LETTER]

용퇴(勇退).

스스로 물러나는 용기와 지혜라는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 등장하는 수많은 용퇴란 표현은 현실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기업 CEO나 임원 대부분이 인사발령으로, 즉 타의에 의해 그만둡니다. 오랜 기간 헌신을 감안해 용퇴라는 단어를 써주는 것입니다.

진짜 용퇴가 어려운 이유는 권력의 속성 때문입니다. 결정권, 권력은 인간에게 최고의 통제감을 주는 장치입니다. 권력을 내려놓는 것을 상상할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본성과 결합해 권력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용퇴는 드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대기업 인사에서 ‘진짜 용퇴’가 있었습니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회장입니다. 그는 실적도 좋았고 자기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에도 물러났습니다.

이야기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대중공업 오너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정통 중공업맨’ 권오갑을 현대오일뱅크 사장에 앉힙니다. 정유업계가 큰 어려움에 처했던 시절, 믿을 만 한 사람을 구원투수로 보낸 것입니다. 권 사장은 눈여겨본 후배들을 오일뱅크로 데리고 갑니다. 재무 전문가 조영철과 홍보맨 금석호 등이었습니다. 이들에게 각각 경영지원과 인사 업무를 맡겼습니다. 이를 두고 “권 회장이 미래 현대중공업 CEO 육성을 시작했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일뱅크를 살려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2014년에는 현대중공업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수주절벽과 원가상승으로 엄청난 적자가 났습니다. 현대중공업은 그룹기획실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습니다. 구조조정과 수익성 회복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정몽준 이사장은 이번에도 권오갑을 그룹 기획실장에 앉혀 난제를 풀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때 조영철은 경영지원본부장, 금석호는 인사지원부문장으로 현대중공업으로 컴백합니다. 결국 현대중공업도 턴어라운드에 성공합니다.

정몽준 이사장은 이같은 능력을 높이 사 2017년 그룹 경영을 권오갑에게 맡깁니다. 지주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후 정 이사장은 경영이나 인사관련해 권 회장의 뜻을 존중해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생전에 아끼는 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회사에 출근해 도장 찍으려고 하지 말라.” 믿을 만한 사람을 전문경영인으로 쓰고 전권을 위임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삼성가가 아닌 현대가에서 이 말을 실행에 옮긴 사람은 정몽준 이사장이었습니다.

다시 경영자 권오갑 얘기입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 넓은 인맥, 월급 1%를 내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나선 사회공헌 마인드 등은 유명합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 폭행으로 구속된 노조원을 위해 석방탄원서를 쓴 이야기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경영자로서 그가 중시했던 것은 사람과 신뢰입니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경영자 후보를 장기간 육성했습니다. 능력과 책임감 있고 사심 없는 이들을 찾아냈습니다. 기회와 훈련을 통해 성장을 도왔습니다. 오너가 자신을 믿어준 것처럼 후배들을 신뢰했습니다. 후배들이 의견을 내면 거의 “그래 당신 생각대로 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사심없는 후배들은 스스로의 책임아래 일을 했고, 성장했습니다.

권 회장이 오래전부터 현대중공업의 미래라고 점찍었던 조영철은 올해 부회장으로 승진해 오너 2세 정기선 회장과 HD현대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금석호는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아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권오갑 회장은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HD현대중공업을 책임질 2세 정기선 회장은 권오갑 회장이 육성한 이들과 함께 순조롭게 승계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너가 신뢰하는 전문경영인에게 전적으로 권한을 이임하고, 전문경영인은 임원들을 신뢰하며, 후계자를 육성하는 HD현대중공업의 문화. 한 번쯤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할 케이스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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