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의 마법에 빠진 이들의 겨울은 당신의 여름보다 더 뜨겁다. 달리기(running)와 여행(trip)을 합친 ‘런트립’의 스케줄을 짜는 데 최적의 시기여서다. 런트립을 계획하는 이들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뉴욕, 런던, 베를린, 시드니, 도쿄, 시카고, 보스턴 등 세계 7대 마라톤을 정복하기 위해 떠나는 도전형 여행자. 그리고 나만의 경험을 기록해 현지인의 문화 속으로 뛰어들고픈 일탈형 여행자. ‘세상은 넓고, 뛸 곳은 많다’지만 후자를 택한 러너에게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도시가 있다.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 오스트리아 빈이다.

빈이 도심 러닝 여행지로 뜨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나 홀로 여행자가 “왜 빈에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일단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다. 러닝과 하이킹, 어떤 코스를 선택하든 트램이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시작점이 있다. 코스도 다채롭다. 역사적 건축물을 끼고 달리는 도심 코스, 황실 사냥터에서 달리는 도심 속 자연 코스, 다뉴브강을 끼고 도는 강변 코스까지 선택지가 넓다. 공식 하이킹 코스도 빈 도심 외곽으로 12개가 있다.

구시가지 중심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5.3㎞의 순환도로 ‘링슈트라세’는 그 자체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늦가을, 빈에 머무는 5일간 매일 아침 빈 미술사 박물관을 시작으로 한 바퀴씩 달렸다. 마주치는 모든 풍경이 믿을 수 없이 웅장하다. 오페라극장과 빈 미술사 박물관, 호프부르크 왕궁, 자연사박물관의 건축물들이 한쪽 시야에, 정성스레 가꿔놓은 가로수가 다른 한쪽에 담겼다. 분명 왕실 마차가 지나다니던 길인데, 애초에 달리기 트랙으로 설계된 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장애물이 없다.
빈 도심에서 지하철로 약 20분 만에 닿을 수 있는 ‘그린 프라터’는 숲속 러닝에 최적이다. 빈은 전체 면적의 50% 이상이 녹지인 세계 최고의 녹색 도시 중 하나. 20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심겨 있는 이 숲은 한때 황실의 사냥터였다고. 그린 프라터에서 꼭 뛰어야 하는 코스는 4.5㎞ 길이의 가로수길 하우프탈레다. 이 길은 프라터슈테른 역에서 시작해 레스토랑 루스트하우스(Lusthaus)에서 끝나는 프라터의 메인 거리다. 약 2600그루의 밤나무 가로수가 있는데, 봄이면 겹겹이 늘어선 밤나무들이 하얀 꽃을 피워낸다.
러닝 중상급자라면 ‘도나우 운하 코스’로 가보자. 도시 면적의 5%가 물인 이 도시에서 도나우 운하는 총 7개 구역을 통과하는 도나우강의 최남단 지류다. 약 17㎞의 쾌적한 트레일을 따라 달릴 수 있다. 운하 양옆으로 멋진 바와 레스토랑이 즐비해 자꾸 멈추게 된다는 것은 함정. 가로등이 잘 갖춰져 있어 야간 러닝 코스로도 좋다.

하루 3~4시간을 그저 느긋하게 걷고 싶은 하이커에게도 빈은 매력이 넘치는 도시다. 빈 도심에서 외곽으로 큰 원을 그리는 12개의 공식 도시 하이킹 코스가 있어서다. 각각 10㎞ 안팎으로 총 240㎞가 넘는다. 대부분 도시 외곽의 숲이나 지역 휴양지를 관통한다. 마주하는 풍광도 모두 다르다. 양 떼와 같은 동물을 만날 수도, 수백 년 된 와이너리를 마주칠 수도 있다. 물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와 레스토랑, 벤치와 테이블도 넉넉하다.
빈의 호이리게 마을인 누스도르프의 트램 D 종점에서 시작하는 시티 하이킹 1코스 ‘칼렌베르크’는 가장 대표적인 루트다. 경사가 완만하지만 도시와 빈의 숲, 도나우강 전망 등 숨 막히는 전경을 모두 볼 수 있다. 포도밭과 숲을 지나 칼렌베르크 언덕까지 완만한 능선을 따라 4시간 정도 걸으니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동물과 교감하고 싶다면 2코스인 ‘헤르만스 코겔’로 가보자. 빈에서 가장 높은 산(524m)에 오르면 1888년 세워진 합스부르크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 근방의 아그네스 분수는 ‘치유의 샘’으로 여겨졌다고. 22종의 나무로 이뤄진 원형 정원도 둘러볼 만하다. 빈 코벤즐 농장에선 여러 체험 프로그램이 열린다. 양, 염소, 토끼, 거위 등 100마리 동물이 있는 7개의 축사를 찾아 먹이를 주고, 유기농 농업에 관한 강연도 들을 수 있다.
좀 더 긴 시간 산책하고 싶다면 ‘비너베르크’(시티 하이킹 12번 코스)를 추천한다. 빈 남쪽에 있어 비너베르크, 리징, 오래된 성이 있는 뵈젠도르프 등 휴양지를 통과한다. 도시 외곽의 옛 와인 저장고 골목은 물론 포도밭과 참나무 숲을 걷고 싶다면 ‘비삼베르크’ 5번 코스가 제격이다. 12개의 시티 하이킹 코스는 각 구역을 지날 때 스탬프를 찍어 소장할 수 있게 했다. 빈 관광청 홈페이지에선 코스별 지도를 상세하게 안내한다. 하이킹 코치에게 가이드를 받을 수도 있다.
빈=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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