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팍에는 늘 ‘I♡도봉’ 배지가 있다. 도봉은 내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고, 국회의원으로서 변화를 만들어야 할 곳이며, 내 자부심이다. 의정활동의 출발점인 동시에 정책의 중심이다. 내 정치적 판단의 기준은 늘 도봉을 향해 있다. 그래서 I♡도봉 배지는 국회의원 배지보다 더 무겁다.내가 사는 서울 도봉구는 오랫동안 더불어민주당이 강세이던 지역이다. 민주화 운동을 한 김근태 의원이 3선을 했고, 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도 내리 3선을 했다. 그런 곳에서 보수 정당 소속 30대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당이 아니라 지역을 잘 알고 일 잘하는 열정적인 사람을 뽑겠다는 도봉구민의 요구다.
그렇기에 내 정치의 중심은 늘 도봉이다. 때로는 그것이 당의 입장과 다르다 하더라도 나는 늘 도봉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했다고 자부한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김포를 서울에 편입하자는 논의가 나왔다. 그때 나는 “새로운 서울을 만들 것이 아니라 있는 서울부터 제대로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도봉을 비롯한 외곽 지역은 서울이라는 이유로 규제는 감당했지만 혜택은 충분히 누리지 못해 왔다. 판단의 기준은 단순했다. 도봉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였다.
논란이 예상되는 사안에서도 기준은 같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점거로 도봉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4호선에서 반복적인 불편이 발생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많은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전장연 방지법 발의에 나선 이유다.
도봉구는 그동안 서울시 특별교부금 배분에서도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하지만 당선 첫해, 도봉구는 약 227억원의 특별교부금을 확보하며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은 예산을 배정받았다. 말이 아니라 결과로 보이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도봉구에서 등하교와 출퇴근을 모두 경험한 국회의원은 내가 유일하다. 쌍문역에서 4호선 ‘지옥철’을 타고 대학에 다니던 기억이 있다. 도봉구를 동북권의 교통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는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주거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지어진 아파트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만큼 도봉의 시간은 오래 멈춰 있었다. 내가 재개발과 재건축에 집중하는 이유다.
정치를 하는 동안 도봉구를 확실하게 바꿀 것이고, 도봉구의 천지개벽은 이미 시작됐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떡볶이를 사 먹던, 구제 바지를 사러 들르던 창동역 1번 출구 일대는 서울아레나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역이 바뀌는 과정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맡은 역할과 책임의 무게를 실감한다.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났다. 도봉에서 자라날 두 아이를 생각하면 이 지역을 어떤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줘야 할지 더 분명해진다. 주민들이 붙여준 ‘도낳스(도봉이 낳은 스타)’라는 이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도봉의 무게를 알고 있고, 그 무게를 감당하는 정치를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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