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주요 그룹 임원 인사 보도자료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미래’ ‘쇄신’과 함께 ‘용퇴’였다. 총수를 도와 회사를 이끌던 부회장과 선임 사장이 대거 물러났기 때문이다. 만만찮은 내년 경영 여건을 고려해 임원 인사 최소화 등 ‘조직 슬림화’ 카드도 꺼내 들었다.
이날 임원 인사를 발표한 현대차그룹의 승진 임원은 219명이다. 사장 4명을 비롯해 부사장 14명, 전무 25명, 상무(신규 선임) 176명이 새로운 명함을 받았다. 지난해(239명)보다 20명 줄었다. 역대 최대인 2023년(252명)에 비해서는 33명 감소했다. 미국의 수입차 관세 여파로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0% 넘게 줄어드는 점을 감안한 결과로 풀이된다.
SK그룹은 해킹 사태가 터진 SK텔레콤 임원을 30% 감축하는 등 그룹 전체적으로 임원을 10%가량 줄였다. LG그룹도 올해 임원 승진자를 역대 최소 수준인 98명으로 축소했다. 2024년(121명), 2023년(139명)과 비교하면 20~30% 줄어들었다.
각 그룹 최고위급 경영자도 줄줄이 퇴진했다. ‘삼성 2인자’로 불린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장(부회장)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그랬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롯데에선 부회장단 4명이 모두 짐을 쌌다. 롯데는 62개 계열사 대표 중 20명을 한꺼번에 바꿨다.
빈자리는 50대 최고경영자(CEO)와 인공지능(AI) 시대를 이끌어 갈 40대 연구개발(R&D) 인재들이 채웠다. 노태문 사장(57)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가전 등 완제품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으로 정식 선임됐고 LG전자에서 가전사업을 총괄하던 류재철 사장은 CEO로 한 계단 올라섰다.
기술과 트렌드에 밝은 젊은 인재들은 새로운 기회와 함께 숙제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김철민 모바일경험(MX)사업부 시스템퍼포먼스그룹장(39)과 삼성리서치 AI(인공지능)모델팀에서 일하는 이강욱 상무(39) 등 30대를 신규 임원으로 발탁했고, 40대 부사장도 11명 선임했다. 지난해 각각 1명, 8명에서 규모를 늘렸다. SK그룹은 신규 임원 85명 중 54명(63%)을 40대로 채웠다. 현대차그룹에서도 신임 임원의 49%가 40대였다.
최신 기술에 밝은 엔지니어 출신이 약진한 것도 올해 인사의 특징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미래 선행기술 개발 강화를 위해 양자컴퓨팅 전문가인 박홍근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사장급)으로 영입했다. SK하이닉스도 미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차선용 미래기술원장(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건설회사 SK에코플랜트는 연구원 출신인 김영식 SK하이닉스 양산총괄을 신임 CEO로 선임했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로 올라선 SK하이닉스의 ‘성공 DNA’를 이식하기 위해서다.
LG도 신규 임원의 25%를 미래 성장동력인 ‘ABC’(AI, 바이오, 클린테크) 분야에서 발탁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주요 그룹마다 위기의식을 반영해 임원 승진 폭을 최소화했지만 AI 등 미래 사업을 이끌 기술 인재는 중용했다”고 설명했다.
김보형/신정은/김진원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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