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중학생들에게 ‘화학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작은 교육 캠프가 열렸다. LG화학과 기아대책이 함께 만든 ‘젊은 꿈을 키우는 화학캠프’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실험을 하고 과학자의 길을 상상하던 이 프로그램은 2019년까지 약 15년 동안 7000여 명의 청소년을 만났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병은 사회공헌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LG화학과 기아대책은 비대면 환경·ESG(환경·사회·지배구조) 교육 플랫폼 ‘라이크 그린(LIKE GREEN)’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제는 유튜브와 온라인 교실을 통해 기후·환경·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며 더 많은 학생과 대중에게 ESG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최창남 기아대책 회장은 20년에 가까운 이러한 협력을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이 어떻게 ESG로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라고 말한다. ‘얼마를 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느냐’를 분명히 보여줘서다. 글로벌 IT 기업의 데이터 전문가 출신인 최 회장은 2024년 4월 기아대책에 합류해 사회공헌을 진화시키고 있다. 최 회장과 ESG, 사회공헌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 20년 협력의 비결은.
“CSR, ESG가 지속가능하려면 단편화돼서는 안 된다. 결국 사람의 삶을 다루는 일인데, 이게 파편화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연말에 기부 한 번 하고 사진 찍고 끝내는 방식으로는 사회도, 기업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지속적으로 사람을 살리고 자립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해결해야 할 문제, 만들어내야 할 변화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LG화학과 기아대책의 생각이 일치했고, 성과를 냈기에 장기간 협력이 가능했다고 본다.”
- CSR과 ESG를 어떻게 구분하나.
“CSR은 기업의 도덕적·윤리적 책무를 강조하는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반면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기업의 성과와 생존을 가르는 기준이 됐다. 탄소배출, 공급망, 인권문제는 이제 규제와 비용으로 돌아온다. 특히 과거에는 CSR 부서가 비용 부서로 인식됐지만, 지금 ESG는 마케팅이나 기업 변화를 주도하는 부서로 바뀌었다. 이 변화가 ESG의 본질을 보여준다. 즉 CSR은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실행하는 방식, ESG는 그 책임을 관리·평가하는 틀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 ESG 시대, 사회공헌은 어떻게 달라졌나.
“분명히 달라졌다. 과거 사회공헌은 기업이 선한 일을 한다는 선언적 의미가 컸고, 일회성 배분 프로그램 위주로 사회공헌이 추진됐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아동의 삶을 변화시키기로 했다면 생애주기에 기반한 역량과 경험의 성장, 커리어 설계, 정서적 케어, 자립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성과를 내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협력하는 기업도 이러한 접근 방식을 지지한다.”
- 기아대책의 사회공헌 방향성은.
“직장 생활 중 34년을 외국계 회사에서 보냈다. 과거 경험(한국오라클 사업본부장 등)을 통해 NGO(비정부기구)도 이제 방식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느꼈다. 기아대책은 36년 동안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활동하며 방대한 경험을 축적했다. 어떤 방식이 효과적이었는지, 어떤 사업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있다. 데이터가 있으면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A 국가에서 실패한 방식을 B 국가에서 다시 시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는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정형 데이터보다 중요한 것은 기아대책이 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변화했고, 그 변화가 가정과 공동체로 어떻게 확산됐는지에 대한 비정형 데이터라고 볼 수 있다. 실제 400여 명의 우리 봉사단이 50여 개 취약 국가에 들어가 전문성을 키우며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역의 특수성을 담은 이 스토리가 파편화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예를 들어 페루의 물 부족 지역에서 안개를 모아 물을 저장하는 사업이 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노동력을 활용한 적정 기술을 적용했다. 적은 예산으로 큰 효과를 냈고, 지속가능했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유지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이 우리의 자산이다.”
- 파트너십에 이러한 경험이 도움이 되나.
“그렇다. 기업과 NGO는 갑을관계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동반자다. 기업이 제안하고 NGO가 따라가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기아대책은 기업이 진출한 지역과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를 먼저 분석해 선제적으로 제안한다. 지역 전문가, 긴급 구호 인력, 400명의 기대봉사단이 가진 현장 전문성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과 청소년의 삶은 1년짜리 프로젝트가 아니다. 아이들의 삶은 연 단위 예산으로 끊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 지원이 끝났다고 사업을 중단하면 더 큰 상처를 준다. 기아대책은 기업 후원이 중단되더라도 자체 재원으로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처음부터 설계한다.”
- 최근 관심을 쏟는 사회공헌 주제는.
“기후와 이주다. 기후 위기는 가장 취약한 국가부터 타격한다. 기후 위기는 식량 위기를 낳고, 식량 위기는 다시 빈곤을 확대한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단기 구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을 살리고 자립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 국내에서는 이주 배경 아동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면 미래 사회 비용이 폭증한다. 기후와 이주는 지금, 그리고 다음 세대의 문제다.”
- 기아대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파트너십은.
“규모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적은 예산이라도 오래 함께 가며 열매를 지켜보는 기업이 가장 소중하다. 이러한 마음으로 기업 파트너와 함께한다. 사회문제를 자기 일처럼 고민하는 기업이 진정한 파트너라고 본다. 이처럼 가장 좋은 ESG 파트너는 오래 함께 가는 기업이다. ESG를 고려한 사회공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기업은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오래 갈 수 있는 파트너를 선택해야 한다. 기아대책은 그런 파트너가 될 준비가 돼 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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