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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5명 떠나보내고도 '정시 출근'…"미쳤다"던 男의 반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5-12-20 00:00   수정 2025-12-20 10:31


아내와 두 아들, 아버지, 절친한 친구. 이 모든 사람들을 단 2년만에 잃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비극에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매일 술에 절어 살았고, 온화했던 성격은 거칠고 괴팍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다행히도 남자는 몸과 마음을 추슬러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새로운 사랑도 찾았습니다. 하지만 야속한 운명은 또다시 그를 덮쳤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이듬해,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겁니다. “참 안된 일이지만…. 그 사람은 이제 끝났어. 그런 일을 겪으면 사람은 미칠 수밖에 없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 남자, 이반 시시킨(1832~1898)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비극을 맞아 무너진 남자가 아닌, 러시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아이들이 먹는 초콜릿 포장지부터 달력과 교과서까지 일상 곳곳에서 함께하는 ‘국민 화가’. ‘숲의 차르(황제)’라는 별명을 지닌 숲 그림의 거장으로 말입니다.


어떻게 시시킨은 몰려오는 거대한 비극과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시시킨의 아픔, 그가 그려낸 숲,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
숲의 화가, 무너지다
예술가 중에서도 특출나게 ‘타고난 예술가’가 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재능과 운명이 너무나도 강력해, 흔들리지 않고 평생 예술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시시킨이 그랬습니다.

그는 1832년 드넓은 숲에 둘러싸인 러시아의 도시 옐라부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시킨은 화가를 꿈꿨지만, 부모님은 “환쟁이는 안 된다”며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은 시시킨의 모스크바 회화조각학교 입학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화가를 시켜줘야겠어. 어려운 길이지만 우리 아들은 할 수 있을 거야.”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기 전부터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과 집요한 열정, 성숙한 마음가짐 덕분이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청년 시절에도 시시킨의 마음가짐은 노련한 거장과 같았습니다. 스무살 때 부모님께 보낸 편지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예술가는 모든 삶을 바쳐 예술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림은 영혼이 신과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이 유행하는 옷을 사고 노는 데 열중할 때, 시시킨은 돈을 아끼고 아껴 12루블(현재 가치 약 200만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스위스 화가 알렉상드르 칼람의 판화를 사서 친구들과 함께 보며 공부했습니다. 시시킨의 친구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우리는 밤새 무릎을 꿇고 판화를 보며 선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연구했다.”

시시킨이 집중한 주제는 숲과 나무였습니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잎사귀 구조와 나무껍질의 주름을 연구했습니다. 이런 시시킨을 조롱하는 교수들도 있었습니다. “자네는 화가가 아니라 식물학자가 돼야겠구먼. 우리나라의 거친 숲,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볼품없는 것들을 그렇게 자세히 그려서 뭘 하려고. 화가라면 더욱 아름다운 것들을 상상하고 그리란 말이야.”


그래도 시시킨은 묵묵히 나무를 연구하고 그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앙상한 가지와 마른 풀, 이끼 낀 바위의 거친 질감을 완벽하게 묘사한 그림들을 제출했습니다. 이를 본 교수들은 조용해졌습니다. 시시킨의 그림 속에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생명력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러시아 미술계의 유명 인사가 된 시시킨은 30대 들어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러시아 귀족들은 앞다퉈 시시킨에게 멋진 풍경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넣었습니다. 1868년, 서른여섯 살 때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해 꿈에 그리던 행복한 가정도 꾸렸습니다. “가족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만큼 시시킨은 다정한 남편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대접하길 좋아하는 호탕한 성격 덕분에 그의 주변엔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햇살 같은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1872년, 그의 예술적 조언자였던 아버지와 첫째 아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이듬해, 친동생처럼 아꼈던 처남이자 천재 화가였던 표도르 바실리예프가 스물셋의 나이로 요절합니다. 비극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874년, 아내 예브게니야와 둘째 아들마저 그의 곁을 떠납니다. 단 2년 만에 아버지와 아내, 두 아들과 친구를 모두 잃은 시시킨. 뿌리째 뽑혀 나간 나무처럼 시시킨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출근이라는 구원
가족을 모두 잃은 시시킨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붓을 놓고 매일 술만 마셨습니다. 온화했던 성격은 거칠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이제 시시킨은 끝났어.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겠지.” 화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도 그럴법 했습니다. 시시킨의 불행이 너무나도 컸으니까요.

그래도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동료 화가인 아르힙 쿠인지(1841~1910)였습니다. 쿠인지의 그림 스타일은 시시킨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시시킨이 나무껍질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렸지만, 쿠인지는 단순하지만 환상적인 빛을 그렸습니다. 매일 술에 취해 넋두리하는 시시킨과 반대로, 쿠인지는 입에 술을 대지도 않았고요. 그런데도 쿠인지는 시시킨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인정하는 동료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으니까요.



그 묵묵한 응원을 받으며 시시킨의 마음속에는 서서히 작은 용기가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습니다. “다시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리고 시시킨은 곧바로 짐을 싸서 시베르스카야(Siverskaya)라는 숲 옆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아침마다 이젤을 등에 짊어지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치 직장인들이 출근하듯,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숲에 들어간 겁니다. 알코올 금단 증상으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그는 숲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중간중간 시시킨은 나뭇잎의 잎맥 하나, 소나무 껍질의 거친 주름 하나를 돋보기로 보듯 관찰했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들을 붙잡고, 마음의 상처를 한 땀 한 땀 꿰매는 것 같은 처절할 정도의 반복 작업. 고된 일이었지만, 하루하루 일상을 반복하면서 시시킨의 무너진 내면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숲에서 그림 그리기를 2년. 1878년, 그는 대작 ‘호밀밭’을 전시회에 내놓습니다. 화면 가득 펼쳐진 황금빛 밀밭과 그 뒤로 굳건히 서 있는 거대한 소나무들. 그림 속에서 숨쉬는 대자연의 생명력을 보고 관객들은 경악했습니다. “이제 작가 인생이 끝났다”던 술꾼이 가져온 그림이, 전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풍요로웠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으로 시시킨은 단숨에 러시아 미술계의 중심부에 복귀합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난 시시킨의 인생에도 다시 봄이 오는 듯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였던 한 여성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시시킨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따뜻한 사람이었지요. 덕분에 시시킨은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고, 재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다시 ‘숲의 차르(황제)’라 불리며 안정을 찾은 그의 작업실에는 다시 손님들이 북적였습니다. 결혼 이듬해인 1881년에는 예쁜 딸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이번에도 그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출산 한 달 만에 어린 딸만 남기고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겨우 일어선 그에게 다시 한번 닥친 참혹한 비극이었습니다. 그래도 시시킨은 이전처럼 술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숲에 아내의 묘지를 만들고, 숲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묵묵히 붓을 들고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숲, 그 앞에 선 인간
숲은 무심합니다. 나무는 아내를 잃었다고 해서 같이 울어주지 않습니다. 숲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서 있지만, 이 나무들은 서로 친구나 가족 같은 복잡한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그저 저마다 홀로, 묵묵히 제 자리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 사실은 시시킨에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의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의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숲에 들어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버지가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숲은 그를 위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동정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런 감정 없이 그를 받아주는 그 무심함이 오히려 시시킨에게 위로를 줬습니다.



시시킨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 속 소나무들은 무리 지어 있지만, 결코 옆 나무에 기대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숲이라는 전체를 이루고 있지만 각 나무의 땅속 뿌리는 서로 엉키지 않고 각자의 힘으로 서 있습니다. 거대한 소나무들이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광경은, 두 발로 서서 하루를 버텨내는 시시킨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숲에서 홀로 온전한 존재로 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한 화풍에도 시시킨의 상황이 녹아 있습니다. 슬픔에 빠질 때 보통 우리는 멍해지고, 감각은 마비됩니다. 시시킨이 나무껍질의 거친 주름을 하나하나 그려낸 건 이렇게 마비된 감각을 억지로 깨우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시시킨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슬프지만, 세상은 여전히 이렇게 선명하게 존재한다”고요. 시시킨의 그림이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힘을 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또다시 일상으로, 첫 번째 아내와 두 번째 아내가 각각 남긴 딸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로, 러시아 미술의 거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말년에 그는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로 일했습니다. 학생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무서운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부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소리치곤 했습니다. “디테일을 대충 뭉개는 건 삶을 속이는 짓이야!” 하지만 그는 사실 가난한 제자들에게 자기 돈을 털어 물감을 사주는 따뜻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숯 조각
1898년 3월 8일, 66세의 시시킨은 늘 그렇듯 작업실 이젤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제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숯으로 새로운 그림의 스케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하품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떨궜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천천히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시시킨다운 최후였습니다.



평생 시시킨은 이렇게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내게 영감이란 없다. 영감이 있다면 매일 일하는 것, 그 자체에 있다.” 그 말처럼 시시킨에게 섬광처럼 번뜩이는 영감, 단숨에 찾아오는 구원은 없었습니다. 대신 그에게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습관이 시시킨을 구원했습니다. 시시킨의 숲 그림이 단순한 ‘사진 같은 그림’이 아닌,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영혼에 새로운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는 작품인 이유입니다.

때때로 삶은 무너집니다. 몰려오는 생(生)의 파도를 우리는 속절없이 견뎌내야 합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의 습관에 기대는 것입니다.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고개를 꼿꼿이 드는 것뿐입니다. 시시킨의 작품들 속 나무들처럼요.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마음을 비우고 일상에 집중해 보세요. 가족을 잃은 시시킨이 무거운 이젤을 메고 뚜벅뚜벅 산으로 들어가 잎맥을 그렸듯이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라는 숲은 언젠가 아픔을 치유해 줄 것이라고, 시시킨의 그림은 우리에게 말하는 듯합니다.

<i>**이번 기사는 Ivan Pikulev의 'Ivan Shishkin', Vitaly Manin의 'Arkhip Kuindzhi'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숲에 대한 관점은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을 참조했습니다.</i>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문화재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국내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 소식과 지금 열리는 전시에 대한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 중인 8만명 독자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세 권의 책으로 곁에 두실 수도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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