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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역 박정민 배우 "진실보다 중요한 건 살고자 하는 의지"

입력 2025-12-19 17:06   수정 2025-12-19 17:07

“사실 저는 영화 촬영 때 ‘못 우는 배우’로 유명해요. 그런데 ‘라이프 오브 파이’ 무대에선 매번 울고 있어요. 감정이 주체 안 될 정도로 동요하면서요. 저도 이런 제가 신기할 정도예요.”



지난 18일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정민은 목숨을 건 항해 끝에 탈진한 인도 소년 ‘파이’의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얀 마텔의 소설을 무대로 옮긴 ‘라이프 오브 파이’가 개막한 지 3주여째. 그는 특유의 덤덤한 목소리가 살짝 쉬어 있는 채로 ‘파이’의 여정에 몰입한 자신을 돌이켰다. “연습할 때 느낀 해일 같은 감정이 마지막에 와줄지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그런데 공연을 몇 번 해보니 알았죠. 아, 하다 보면 ‘그 분이 오시겠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무대에서 함께 눈빛을 교류하는 배우들이 있으니 이들만 믿고 가면 두려워할 일은 일어나지 않겠구나 하는 믿음이요.”



‘라이프 오브 파이’는 폭풍우로 가족을 잃고 태평양을 표류하게 된 파이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멕시코 해안에서 구조된 파이는 구명보트에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동거한 첫 번째 이야기와 동물을 인간으로 치환한 잔인한 버전의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이야기를 믿을지는 관객의 몫. “제가 곧 마흔이라 찌들대로 찌들어서 첫 번째 이야기가 어떻게 진짜일 수 있는지 의심이 많았어요. 연습 때 제가 두 번째 이야기가 사실인 것 같다고 하니, 영국에서 온 연출님(리 토니)이 ‘마음을 열어보라’고 말해주시더라고요. 대화를 나누며 내린 결론은 어느 쪽이 진실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의 의지와 결심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박정민은 이번 작품을 계기로 ‘믿음’과 ‘종교’에 대해 깊이 사유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극중 파이는 한 번에 세 개의 종교를 믿는다. “믿음은 삶에 대한 의지 같아요. 잘 살아가기 위해 혹은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요. 종교란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고 큰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처드 파커 등 퍼펫(인형)과 호흡하는 것도 이 작품만의 독특함이다. 파커는 머리와 몸통, 다리를 각각 맡은 세 명의 퍼펫티어가 조종한다. “퍼펫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게 ‘연기’가 아니라 ‘신체 훈련’ 같았어요. 그 과정이 쉽지 않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호랑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표정이 없고 말도 못하는 그 퍼펫의 상태가 변하더라고요. 파이의 마음이 아프면 호랑이가 안쓰러워 보이고, 파이가 무서운 감정을 느끼면 호랑이도 사나워 보이는 식으로요.”

박정민이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8년 만이다. 그가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은 뭘까. “아무리 최첨단 장비와 효과를 도입하더라도 연극은 한정된 공간이라는 특성상 기술력 면에서 영화나 드라마 따라갈 수 없잖아요. 연극의 강점은 생동감과 체험에 있다고 생각해요.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나비를 흔들며 움직이는 방식마저도 굉장히 연극적이어서 좋아요. ‘그렇다 치고’ 연기하는 건데,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마음만 열려 있다면 영화나 드라마보다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 notionvc: aeb1eb00-ad37-4140-a10c-120b1f583781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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