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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워런 버핏’에서 8조 거함으로… 공모펀드로 제2의 도약

입력 2026-01-16 12:16   수정 2026-01-16 12:17

[커버스토리] 자산운용사 톱6 새해의 히든카드 - VIP자산운용



지난 2002년 2명의 동갑내기 대학생이 출간한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은 대한민국 투자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 책이다. 가치투자에 대한 진심 하나로 똘똘 뭉친 두 젊은이의 투자 철학은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1세대 가치투자자로 이름을 떨친 현업자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기업의 가치에만 집중하면 주식 투자로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주가는 기업의 가치에 결국 수렴한다”는 그들의 메시지는 지금까지도 가치투자의 기초적인 마인드셋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국의 리틀 워런 버핏’이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쌓은 두 사람은 바로 VIP자산운용의 공동 창립자인 김민국·최준철 대표다. 회사를 시작한 2000년대 초반으로부터 무려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 VIP자산운용은 운용자산 8조 원대의 탄탄한 자산운용사로 성장했다. 창립 이후 23년 연속 흑자를 냈을 정도로 탁월한 실력도 증명했다. 부침이 심한 운용 업계에서 보기 드문 성과다.

업력과 노하우가 쌓이면서 좋은 투자를 위한 액션 플랜도 일부 조정됐다. 출범 초기에는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투자를 했다면, 이제는 투자하는 기업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과외 선생님’, ‘주치의’ 역할을 자처한다. VIP자산운용 특유의 우호적 행동주의가 완성된 순간이다.

2025년 12월 VIP자산운용 사무실에서 만난 김민국 대표는 “스스로 본(本)이 되는 자산운용사가 되고 싶었다”면서 “긴 세월 운용사를 운영하며 쌓은 투자 경험치를 기업에 적극적으로 이식하고,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우리 고객의 재산을 보호하는 ‘우호적 행동주의’를 표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사는 고객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습니까. 단순히 주식을 잘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가치가 이 수수료에 묻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기업과 경영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마음을 생각해보세요. 환자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주치의는 없지 않을까요. 대주주가 가진 것을 강탈해 가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병에 걸렸다면 치료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거죠.”

경영진에게 보내는 50쪽 분량 ‘연애편지’

대주주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행동주의라면 VIP자산운용이 추구하는 투자 철학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라고 김 대표는 생각했다. 기업과 경영진을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족한 경험치를 채워주기 위한 선의를 바탕으로 접근한 것이다.

“창업 초기에 밸류 트랩(value trap: 저평가된 가치주로 보여 투자했으나 좀처럼 주가가 오르지 않거나 도리어 하락해 돈이 묶이는 현상)에 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가치투자자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바로 밸류 트랩이에요.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처럼 투자를 했다가 주가가 떨어져 버리는 케이스를 적지 않게 겪었던 거죠. 오히려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그들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게 유효한 전략이라고 판단했습니다.”

VIP자산운용의 이런 행동주의 투자는 일종의 연애편지를 쓰는 단계까지 진화했다. 회계사, 컨설턴트를 비롯한 각 분야 전문가가 팀을 이뤄 주주 정책 등을 제언하는 보고서를 만든다. 적게는 20~30쪽에서 많게는 5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는 회사의 핵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종합적인 컨설팅 내용이 담긴다.

“실제로 VIP자산운용 내부에선 이 리포트를 ‘연애편지’라고 표현합니다. 과거에 진행했던 초기 컨설팅에서는 주주환원율을 늘려 달라는 등의 주주 정책을 제언하는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공장 입지, 브랜드 전략, 재무적 현금흐름의 활용, 장기적인 기업지배구조 개편까지 종합적인 컨설팅 내용을 담습니다.”

기업의 약점부터 성장 가능성까지 낱낱이 평가한 이 보고서를 받아보고 동요하지 않을 경영진은 그리 많지 않다. 기업의 성장을 위한 쓴소리부터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까지 종합적으로 담은 이 연애편지는 기업이 스스로 변화할 의지를 만들어주는 기폭제다. 이를 계기로 VIP자산운용은 기업의 체질을 함께 개선하는 파트너이자 과외 선생님으로서 기업과 보폭을 맞추게 된다.

회사가 이 같은 우호적 행동주의를 본격적으로 추구한 지는 약 5년째, 기업 컨설팅 리포트를 발송한 것은 4년 전부터다. 차트를 보며 트레이딩만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성과가 나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운용역별 강점 살려 펀드 운용

그렇다면 회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도약하게 된 결정적 순간은 언제였을까. 우선 김 대표는 2010년을 꼽는다. 공동 창립자인 최 대표와 펀드를 함께 운용했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각자 운용하기로 한 것이다.

“서로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종목만을 운용하다 보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죠. 저는 저렴하면서 안전마진이 있는 종목에 관심이 많았어요. 반면 최 대표는 소비재에 관심이 많았고, 훌륭한 경영진이 알아서 잘 경영하는 회사를 훨씬 선호했죠. 비유하자면 저는 향후에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학생을 좋아했다면, 최 대표는 이미 수준이 높아 과학고나 영재고에 가는 친구들을 좋아했던 거죠.”

서로의 관심사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펀드를 운용하다 보니 그만큼 버려지는 종목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버려진 종목 중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계를 느낀 두 사람은 결국 펀드를 각각 운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각자의 색깔이 살아나며 펀드 수익률은 더 좋아졌다.

“그때의 경험이 굉장히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내에서 매니저 역할을 하는 직원이 10명 정도인데요. 각 매니저의 아이디어와 투자 철학을 존중하는 방식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사가 트로트, 팝, 시티팝, 힙합 등 여러 장르의 레이블을 운영하는 것처럼, 서로의 장점을 살려 수익률을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어요.”

실제로 VIP자산운용에서는 각자의 장기를 살린 탁월한 운용 인력들이 포진해 있다. 그중에서도 균형 잡힌 투자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데 강점을 갖고 있는 조창현 매니저, 확실한 성장주 투자를 통해 장기 수익률을 견인하는 박성재 매니저를 핵심 멤버로 꼽을 수 있다. 김 대표가 상위 1%급 매니저라고 자부하는 인재들이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되, 기본적으로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는 투자의 대원칙은 모든 매니저가 공유한다. 김 대표는 “애널리스트와 매니저가 리서치한 자료는 서로에게 공유되며, 뷔페처럼 마련된 리서치 결과 속에서 종목을 발굴한다”며 “리서치에 기반한 가치투자, 그리고 밸류 대비 저렴하게 투자해 보유하는 전략이 VIP를 관통하는 투자 키워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회사의 두 번째 분기점은 2015년 노르웨이 국부펀드로부터 자금을 투자받았을 때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연기금으로, 위탁운용사 선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들에게 실사를 받은 경험은 VIP자산운용의 시야를 틔워준 계기가 됐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매우 까다로운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대신 한 번 투자하면 오랜 기간 맡기는 편이죠. 우리에게 맡긴 투자금도 지금까지 감액한 적이 없어요. 특히 운용사의 투자 철학이 바뀌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게 그들이 살피는 우선순위예요. 그 과정에서 우리도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세 번째 분기점은 공모운용사로의 전환이다. ‘VIP한국형가치투자증권자투자신탁(주식)’은 사모펀드로 유명한 VIP자산운용이 2023년 출시한 첫 개방형 공모펀드다.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 <한국형 가치투자> 등을 출간하며 투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 왔지만, 정작 우리 회사를 통해 투자를 하려면 최소 수억 원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모펀드를 선보인 이후 퇴직연금 등을 통해 소액으로도 우리의 고객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게 회사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죠.”

김 대표가 그리는 앞으로의 목표는 지금까지 해 왔던 VIP자산운용의 가치를 앞으로도 잘 지켜 나가는 것이다. 특히 우호적 행동주의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저는 귀납적인 원칙을 믿거든요. 우리가 투자한 기업이 잘되면 그 자체가 VIP자산운용의 브랜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뿌렸던 우호적 행동주의의 씨앗이 잘 뿌리를 내려 수확을 거둘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업과 운용사가 윈윈(win-win) 하고, 장기적으로 선순환하는 구조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2026년, 소외됐던 종목들 키 맞추기 할 것

김 대표가 내다보는 2026년 투자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2025년은 정보기술(IT)이 시장을 하드캐리했다면, 2026년에는 상법 개정 등으로 인해 주주 환원이 본격적으로 각광받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펀더멘털에 비해 소외됐던 종목들도 건전한 키 맞추기를 하는 장세가 펼쳐질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2020년에 지수가 엄청나게 올랐죠. 그리고 2021년에는 지수 자체는 쉬어갔지만 상대적으로 중소형주, 가치주의 주가가 많이 오르며 갭 메우기를 했습니다. 2026년에도 비슷한 시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해봅니다. 새해에는 상법 개정 등의 수혜를 받을 만한 기업, 저평가됐던 기업이 유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지주회사 섹터를 꼽을 수 있겠죠. 관세 이슈로 인해 상대적으로 눌려 있었던 자동차부품 종목도 주목받을 것 같습니다.”

김 대표는 개인투자자들이 2026년 투자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직접투자도 좋지만, 신뢰도 있는 펀드매니저를 찾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 간접투자를 해보는 것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보통 투자자들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이라는 후회를 많이 하죠. 일종의 ‘뒷북’을 울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러면서 고점에 물리는 케이스도 많고요. 건강한 투자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반영한 좋은 청지기, 자산관리자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직접투자를 하는 개인투자자가 굉장히 많은데, 간접투자를 통해서도 충분히 좋은 투자 전략을 가져갈 수 있거든요.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잘 맞는 펀드매니저를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본업’과 ‘투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이야기다. 김 대표는 “개인이 투자에 전력으로 뛰어들어서 엄청난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본원적 경쟁력을 키워서 몸값을 올리고, 동시에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투자하는 게 좋다”며 “나보다 더 똑똑한 전문가를 잘 발굴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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