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23일 09:4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되고 격해질수록 수혜를 보는 곳은 김앤장법률사무소다. 단일 건으로만 수백억원에 육박한 막대한 수익을 올렸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수렁에 빠질 때마다 전례 없는 '법기술'이 김앤장 손에서 탄생했다. 지난해 10월 고려아연의 2조5000억원대 기습 유상증자에서 상호주 제한, 이번 미국 정부를 백기사로 끌어오는 대미 합작사 설립까지 이어진 김앤장 주도의 묘수들은 궁지에 몰린 최 회장을 회생시킨 '신의 한수'로 작동했다. 특히 미국 제련소 투자 결정에선 최 회장과 고려아연 경영진들이 이전까지 공동 업무를 맡았던 율촌을 아예 배제하고 김앤장과 단독으로 진행했을 만큼 자문사 이상의 '공동 운명체' 역할을 맡고 있다.
경쟁 로펌에선 "김앤장이 고려아연 못지 않은 주요 고객인 MBK파트너스와 파국을 맞을 것"이란 기대도 나오지만 김앤장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일차원적인 해석'으로 일축한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형사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 점이 핵심이다. 대관에서부터 여론 대응, 형사문제와 관련한 대비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국내에서 김앤장이 유일하다는 점은 누구보다도 MBK파트너스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앤장 '투톱'의 제동 없는 공세
23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법률 조력을 주도하는 변호사는 조현덕 김앤장 변호사와 지난해 김앤장을 퇴사해 개인 변호사로 활동하는 고창현 변호사다. 이들은 지난 15일 열린 고려아연 이사회에서도 직접 참석해 복잡한 미국 제련소 투자 구조를 설명했다. 이들이 벤치마킹한 사례는 2020년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다. 두 변호사는 조원태 회장 측 자문을 맡아 극적인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면서 스타 변호사 반열에 올랐다. 당시 한진칼은 사모펀드(PEF) KCGI와 조현아 전 부사장, 반도건설 등 주주연합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약 1조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기습적으로 단행했다.
경영권 분쟁 중 특정 우군을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불가능한 점은 당시만해도 법조계에선 기본 원칙이었다. 이들은 파격을 꺼냈다. 유상증자가 단순 경영권 방어용이 아닌 팬데믹으로 항공 산업 전반이 위축된 가운데 외부 자금 수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조원태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것은 사실상 법정에서의 싸움이 결정적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고려아연에서도 미국과의 경제안보 동맹이라는 국가 전략 차원의 명분이 시급한 점을 전면에 내세워 유상증자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접근이다. 다만 법조계에선 코로나19 위기로 항공업이 존폐 위기에 달렸던 당시와 달리 고려아연이 현지 합작사와 사업회사를 따로 만들고 합작사에 지분 10% 이상을 넘길 시급한 명분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상대편인 영풍과 MBK파트너스도 한진칼이 전례가 된 만큼 이번 미국 합작법인(JV) 유상증자가 당시와 다른 점을 강조하며 여론전을 펴고 있다.
성패와 무관하게 두 변호사의 승부수가 이번에도 최 회장을 최악의 국면에서 건져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제련소 건설을 명분으로 한 JV 투자가 성사될 경우 최윤범 회장 측은 약 10%의 우호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게 되고, 내년 정기주주총회 표 대결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김앤장 입장에서도 일단 내년 3월 주총만 넘기면 된다는 전략에 집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MBK 묶어둔 김앤장의 '한 수'
최 회장의 상대편인 MBK파트너스 역시 김앤장의 핵심 고객이다. 웅진코웨이, 홈플러스, ING생명, 메디트 등 주요 바이아웃 거래에서 김앤장이 법률 자문을 맡아왔고, MBK 내부에도 김광일 부회장 등 김앤장 출신 인력이 다수 포진해 있어서다. 고려아연 분쟁을 계기로 김앤장은 오랜 기간 협력해온 전략적 파트너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맞서게 됐다.고려아연 분쟁이 격화되며 MBK가 김앤장에 불만을 표출한 전례도 있었다. 지난해 공개매수 국면에서 고려아연 측은 사모펀드(PEF)의 차입매수(LBO)와 세일앤리스백 구조를 문제 삼았고, 이 과정에서 MBK의 대표 투자사인 홈플러스 사례가 거론됐다. 홈플러스 투자도 김앤장이 대리했던 만큼, MBK 내부에서는 “함께 일하며 축적한 정보로 우리를 공격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당시 김광일 MBK 부회장이 김앤장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퍼지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두 변호사가 올해 3월 주총을 앞두곤 고려아연의 해외 자회사인 썬메탈코퍼레이션(SMC)을 활용한 출자구조 카드까지 꺼내자 양측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까지 정면으로 빗겨간 '법기술'에 법조계에서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법의 허점까지 악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김앤장은 최 회장 측에서 순환출자 구조 설계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던 고창현 변호사를 떠나게 조치하는 방식으로 MBK에 대한 유화책을 폈다.

잠시 제동이 걸렸던 두 콤비가 다시 대미 투자 유치를 매개로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던 계기는 고려아연 분쟁과 동시에 홈플러스 사태를 둘러싼 MBK 수사가 진행되면서다. 김앤장은 지난 3월 홈플러스 회생 사태 이후 회생절차 대응과 금융당국 제재심, 전자단기사채 관련 사건을 모두 맡으며 MBK와 ‘불편한 재회’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사정당국의 칼날이 김병주 MBK 회장과 김광일 MBK 부회장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 문제로 향하자 결국 김앤장의 조력이 불가피해졌다는 게 로펌업계의 관측이다.
경쟁 로펌에선 동북아 최대 PEF인 MBK파트너스마저 쥐락펴락하는 김앤장 경영진의 역량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삼성그룹 수사와 관련한 자문들이 대부분 마무리됐던 올해부터 김앤장의 매출이 주춤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경쟁사 경영진들도 예상 매출치를 높여 잡고 있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대기업 오너의 형사사건을 매개로 해당 그룹의 M&A 등 모든 자문을 싹쓸이하는 김앤장의 '전매특허'가 PEF에서마저 통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 로펌 변호사도 "오너 형사 사건에선 김앤장을 쓸 수밖에 없다는걸 MBK가 가장 잘 알다보니 고려아연에서 무리수를 두더라도 MBK가 당장 김앤장과 결별할 수 없는 구조"라며 "추후에 김앤장이 MBK와 관계개선에 다시 나서더라도 일단은 투트랙으로 수익 극대화에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최다은 / 차준호 기자 max@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