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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도 내일은 모른다"…'억대 연봉' 축구감독의 세계 [권용훈의 직업불만족(族)]

입력 2025-12-21 11:00   수정 2025-12-21 11:11




김정수 제주SK FC(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대행(50)은 지도자 일을 ‘결과로 평가받는 자리’라고 표현한다. 그는 프로 지도자 시장이 높은 연봉 뒤에 빠른 평가와 계약 종료가 일상적인 구조라고 정의했다. 선수 시절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경력 역시 오늘의 성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의미가 희미해지는 세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선수 출신 지도자는 다시 팀을 세우는 일과 매번 커리어를 ‘재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동시에 짊어진다.

김 대행이 올해 K리그1 시즌이 몇 안남은 상황에서 팀을 맡았을 때도 그랬다. 제주는 직전 11경기 무승에 빠져 있었다. 김 대행은 “전술보다 먼저 패배주의를 걷어내야 했다”고 말했다. 식사는 함께, 스태프들이 먼저 본보기, 워밍업 전면 교체 등. 작은 루틴을 다시 세우는 방식으로 팀의 공기를 바꿨다. 성적은 4승 2무 4패로 반등했고, 결국 1부 잔류에 성공했다. 그는 “숫자보다 중요한 건 팀이 다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상태로 돌아왔다는 점”이라고 했다.


Q. 지금 자신을 어떤 지도자라고 소개하고 싶습니까.
A. 결과로 평가받는 자리에서 사람과 팀을 바꾸는 일을 하는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성적만 보면 냉정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팀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전술은 결국 ‘도구’이고, 그 도구가 먹히려면 선수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 준비를 만드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루틴을 바로잡고, 집중도를 끌어올리고, 라커룸 분위기를 정리해서 선수들이 “우리도 다시 이길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일입니다.

Q. 선수로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요.
A. 프로는 1997년 대전에서 중앙수비수로 시작해 7년 정도, 이후 부천 SK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 32살까지 선수로 살았습니다. 선수 때는 내 경기와 내 몸이 전부였지만, 그 시간 덕분에 팀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가까이에서 봤습니다. 분위기가 좋을 때 선수들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반대로 한 번 무너지면 같은 전술도 왜 안 먹히는지 그런 것들이 몸에 남았습니다.



Q. 선수 생활이 무릎 부상으로 끊길 뻔했다고요.
A. 1997년 9월 경기였습니다. 뒤에서 들어온 태클로 무릎이 꺾였습니다. 오른쪽 전방, 후방 십자 인대 파열에 내측, 외측 인대까지 복합 손상이었고 탈구와 골절도 겹쳤습니다. 그때는 단순히 ‘아프다’가 아니라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같이 왔습니다. 부상이 없었으면 선수 생활을 더 했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Q. 그때 꿈을 접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A. 상실감이 컸습니다. 제일 잘나가던 때 부상이었으니까요. 의사도 부모님도 다른 일을 권했고, 구단도 정리하려는 분위기가 있었고요. 악몽을 1년 넘게 꿨습니다. 그런데 잊혀지는 게 자존심 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끝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더 괴로웠습니다. 그 마음이 버티게 했습니다. 지금 지도하면서 선수들이 흔들릴 때,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사실 그때 경험 덕분입니다.



Q. 결국 돌아와 7년을 더 뛰었습니다. 무엇이 힘이 됐나요.
A. 오기였죠.(웃음) 재활은 재능으로 되는 게 아니라 반복으로 되는 일입니다. 하루하루는 티가 안 나는데, 어느 순간 쌓인 게 몸으로 나오더라고요. 독하게 재활했고, 기다려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 김기복 감독님이 기다려줘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믿어준다는 경험이 선수에게는 엄청 큰 힘입니다. 지도자로서도 그걸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Q. 그 경험이 지도자로서 관점을 바꿔놨습니까.
A. 전부 바꿔놨습니다. 실패와 과도기를 겪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2002년 월드컵 전 체코 평가전 때 벤치 멤버로 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님이 뽑아줬는데, 지나고 보니 그 시행착오가 자산이었습니다. ‘선발’과 ‘벤치’ 사이의 간극, 경쟁의 냉정함, 그리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기회가 와도 못 잡는다는 걸 그때 체감했습니다.

Q. 은퇴 후 지도자 선택은 ‘대안’이었나요 ‘꿈’이었나요.
A. 지도자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습니다. 저는 연령대별 지도 경험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부터 프로까지 다 지도해 봤고 U-19 대표팀 감독도 했습니다. 연령대가 달라지면 선수들의 언어가 달라집니다. 같은 메시지도 초등 선수에게, 프로 선수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죠.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선수의 성장 단계’를 보는 눈이 생겼고, 그게 제 지도 스타일의 뼈대가 됐습니다.

Q. 축구 감독의 업무는 무슨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A. 감독은 경기 때 지시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훈련 설계, 선수 관리, 스태프 운영, 분위기 조성까지 팀 운영 전반을 책임집니다. 선수단의 생활 루틴을 만들고,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세우는 일도 합니다. 쉽게 말해 ‘팀이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관리자’이자 ‘결정을 내리는 현장 책임자’입니다. 누구를 기용할지, 어떤 기준을 고정할지, 무엇을 버릴지 계속 판단해야 합니다. 그 판단이 쌓여 팀의 색깔이 됩니다.



Q. “프로는 자율, 아마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A. 프로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되 자율성을 줘야 성장합니다. 선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게 해야 경기 안에서 더 강해집니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고 체득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축구는 몸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하는 스포츠니까요.

Q. 직접 키운 선수 중에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가 있습니까.
A. 엄지성, 정상빈, 이한범, 이태석, 김문환 등 너무 많네요. 다들 국가대표팀에서 나라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지도자로서 가장 큰 보람은 이런 순간입니다. 내가 했던 말이나 기준이 당장 결과로 보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 선수의 습관으로 남아 성장으로 이어지면 그게 남습니다. 지도자는 ‘성적’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사람이 달라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Q. “크게 될 선수는 눈빛이 다르다”고 했는데, 더 구체적으로 설명 좀 부탁드려요.
A. 뭔가 될 것 같은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열정이 남다릅니다. 성실함은 기본이고, 눈빛이 빛납니다. 제가 말하는 눈빛은 ‘이기고 싶다’만이 아니라 ‘배우고 싶다’는 태도입니다. 잘하는 선수들을 보며 그들의 사소한 습관까지도 분석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있습니다. 반대로 축구를 대하는 자세가 안 좋은 선수도 많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배우려는 태도가 없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춥니다. 결국 커리어를 갈라놓는 건 그 미묘한 지점입니다.

Q. 제주 감독대행을 맡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A. 분위기 정리였습니다. 직전 11경기 무승으로 패배주의가 깔려 있었습니다. 남은 경기에서 그걸 먼저 걷어내는 게 최우선이었습니다. 패배주의가 깔리면 선수들은 시도 자체를 줄입니다. 전술보다 더 무서운 게 ‘소극성’입니다. 그래서 먼저 팀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훈련장에 어떤 표정으로 들어오는지부터 다시 잡았습니다.

Q. “팀 공기를 바꿨다”는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뭘 바꿨나요.
A. 불필요한 절차, 방식 이런걸 우선 다 뺐습니다. 그리고 스킨십을 늘렸습니다. 스태프도 선수들과 함께 밥 먹고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소통을 늘렸습니다. 지도자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주변이 흐트러져 있으면 선수들은 안 믿습니다. 훈련장에서는 워밍업을 바꿔 집중력을 끌어올렸습니다. 워밍업부터 몰입이 생기면 훈련의 질이 달라지고, 그게 결국 경기로 이어집니다. 작은 것 같지만 이런 ‘기본값’을 바꾸는 일이 팀을 움직입니다.

Q. 팀이 계속 지고 있으면 선수들 사기가 많이 떨어질텐데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A. 다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준비한 걸 경기에서 구현해내는 과정이 쌓이면 팀이 달라집니다. 팀이 한 번 무너지면 준비한 걸 경기에서 못 합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라오는 상태가 옵니다. 그걸 다시 빨리 되돌려야죠. 저는 결과도 보지만, 경기 안에서 ‘우리가 준비한 걸 끝까지 해냈는가’를 더 봅니다. 그게 쌓이면 팀은 다시 올라옵니다.



Q. 프로 축구팀 감독이나 코치 연봉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액’이 일반적입니까.
A. 일부는 수십억원대 연봉도 받지만 그게 전체를 대표하진 않습니다. 사람들은 프로 지도자라고 하면 연봉부터 떠올리는데 실제 현장은 연봉보다 계약 구조가 더 큰 변수입니다. 같은 팀에 오래 남는 사람이 드물고 자리가 바뀔 때마다 조건이 달라집니다. 어디서 얼마나 버느냐보다 지금 맡은 역할이 내년에도 이어지느냐가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됩니다.

Q. 연봉이 높아도 불안하다는 말은 결국 ‘계약’ 문제인가요.
A. 그렇습니다. 프로 지도자는 실질적으로 단년 단위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적이 흔들리면 분위기가 바뀌고 그 흐름이 계약에도 바로 반영됩니다. 그래서 연봉은 높아도 안정적이라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준비는 장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평가는 단기간에 내려지는 구조라 그 간극이 큽니다.

Q. 선수 시절의 이름값이나 국가대표 경력이 안전판이 되지는 않나요.
A. 경력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선수로 잘했다고 지도자로도 자동으로 인정받는 구조가 아닙니다. 오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거의 경력은 빠르게 흐려집니다. 결국 지도자는 매 경기 매 시즌을 통해 현재형으로 다시 증명해야 합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오래 갑니다.

Q. 일을 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뭔가요.
A.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결과를 바꿀 때입니다. 엄청 열심히 준비한 대로 했는데 작은 실수 하나, 예기치 못한 변수로 실패했을 때가 가장 답답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그런데 그 책임은 결국 지도자가 집니다. 이게 지도자의 숙명입니다. 그래서 더 디테일하게 준비하고 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Q. 그럼에도 왜 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A. 저는 축구를 떠나 있는 제 모습이 잘 안 그려져서요. 계산만 하면 쉽지 않은 직업입니다. 평가가 빠르고, 늘 증명해야 하고, 심리적으로 소모가 큽니다. 그런데 팀이 변하는 순간을 보면 내가 하는 일이 분명해집니다. 무너졌던 선수들이 다시 자신감을 얻고, 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 분명합니다. 돈이나 안정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Q. 이 직업의 ‘장점’은 뭔가요.
A. 사람을 성장시키고, 조직을 바꾸는 일을 직접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만든 기준과 루틴’이 팀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내가 만든 결정이 현장에서 바로 반응으로 돌아옵니다. 그만큼 성취감이 엄청 큽니다. 그리고 한 시즌이 끝났을 때 남는 게 단지 성적표만은 아닙니다. 선수의 변화, 팀 문화의 변화 같은 것도 남습니다. 그게 지도자라는 직업의 매력입니다.

Q. 반대로 ‘단점’은요.
A. 결과 중심 평가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빠르고, 안정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늘 증명해야 하죠. 심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소모가 큽니다. ‘팀 전체’가 내 일이 되기 때문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개인 시간을 따로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성적이 안 나오면 설명을 해야 하고, 성적이 나와도 다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 압박을 견디는 힘과 멘탈도 필요합니다.

Q. 끝으로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좋아하는 걸 미친 듯이 하면 결국 성공합니다. 축구에서는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오래 갑니다. 박지성 선수 같은 유형이 롱런하죠.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좋은 커리어를 오래 끌고 가는 건 재능만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꾸준함과 조직을 위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업불만족(族) 편집자주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업했지만 매일 퇴사를 고민하는 30대 청년,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제2의 삶을 개척한 40대 가장,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70대 청소 노동자까지. '직업불만족(族)'은 직업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목소리를 기록합니다. 당신의 평범한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깊은 위로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하며 살아가는 세상 속 모든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하단 구독 버튼을 눌러주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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