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21일 13:4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곽병진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 19일 회계기준원장에 선임된 것을 두고 회계업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원장추천위원회(원추위)에서 2순위로 뽑혔던 후보가 1순위를 제치고 원장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일부 회원기관의 표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월권 의혹도 제기된다.
21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곽 교수는 지난 19일 회계기준원 회원총회에서 1순위 후보였던 한종수 이화여대 교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받으며 신임 회계기준원장에 선임됐다.
곽 교수는 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 자문위원, 한국회계정책학회 부회장, 한국회계학회 이사, 한국관리회계학회 이사 등을 지냈다.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이사회 이사를 맡는 등 회계학 전반에 영향력을 나타내온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의 조카다.
최종투표서 뒤집혀
지난 11일 회계기준원이 원추위를 열고 2명의 후보들에 대한 우선 순위를 부여했을 때만 해도 곽 원장이 신임 원장에 선임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한 교수가 1순위로 꼽힌 것으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1999년 회계기준원이 설립된 이래 매번 1순위가 원장에 임명돼 왔다.당시 표결에는 한국거래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국은행연합회,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회계학회 등 7개 기관 대표가 참여했다. 여기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 원추위 위원들은 △회계 전문성 △글로벌 회계 감각 △감독당국과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성 등을 주요 심사 기준으로 세웠다.
하지만 8일 뒤 열린 회원총회에서는 분위기가 뒤집혔다. 회원총회 투표에는 원추위에 포함된 7개 기관을 포함해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코스닥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 14개 회원기관이 참석했다.
여기서 한 교수는 원추위 투표 때보다 오히려 적은 표를 받았다. 한 교수를 1순위로 꼽았던 일부 회원기관도 입장을 바꿨다는 방증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원추위에서 자격과 능력 등을 고려해 결정한 순번이 바뀐 건 이례적”이라며 “특히 경합 수준을 넘어 2순위 후보에게 표가 대거 몰렸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개입 정황 논란
이같은 총회 결과에는 금감원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설명이 회원기관들 사이에서 나온다. 한 회원기관 관계자는 "총회 투표 전날 금감원 관계자로부터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묻는 연락이 왔다"며 "다른 회원기관에게는 곽 교수에게 투표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1순위인 한 교수를 떨어뜨리고, 2순위인 곽 교수를 밀어주기 위해 금감원이 회원기관들에 적극적으로 메세지를 보냈다"고 했다.회계기준원장 인선과 관련해 이처럼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최근 자본시장 신뢰 및 회계 투명성 강화와 맞물려 위상이 커지고 있는 회계기준원장 선임과 관련해 불필요한 잡음이 나타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계기준원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과 일반기업회계기준의 제·개정, 해석 및 질의회신을 담당하는 민간 기구다. 상장사뿐 아니라 금융사와 보험사, 비상장기업, 공공기관까지 폭넓은 회계 처리와 공시 기준에 영향을 미친다.
금감원이 반발을 무릅쓰고 회계기준원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한 배경으로는 일부 여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교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는 점이 지적된다. 한 교수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 등에서 대기업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 이유다.
금감원 자체로도 보험업 회계 처리 등과 관련한 강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앞서 이찬진 금감원장은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여러 차례에 걸쳐 관련 기준 강화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온 바 있다. 보험사를 계열사로 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를 흔들 수 있는 이슈다. 금감원이 기준을 바꾸더라도 재무제표 등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지 등을 정하는 회계기준원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결과 자체보다도 왜 추천 순위가 뒤집혔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는지 중요한 상황”며 “무엇보다 회계기준원의 독립성·중립성이 중요한 만큼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인선 절차의 투명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