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질주하는 듯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년도 안 돼 리더십 위기에 빠졌다. 워싱턴 정가에선 벌써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작년 11월 대선 승리 때만 해도 트럼프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트럼프는 선거인단 수에서 압승했을 뿐 아니라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도 공화당 출신으로선 2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를 앞섰다. 공화당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까지 흡수한 것이다.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취임 초 50%를 넘었던 국정 수행 지지율은 NBC 조사에서 42%로 낮아졌다. PBS 방송 여론조사에선 트럼프 경제 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집권 1, 2기를 통틀어 최저인 36%에 그쳤다.
지지율만 맥을 못 추는 게 아니다. 최근 치러진 선거 결과도 트럼프에겐 좋지 않은 소식뿐이다. 안방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장 선거에선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가 참패했다. 버지니아와 뉴저지주지사 선거도 민주당이 싹쓸이했고, 뉴욕시장 선거에선 트럼프가 대놓고 반대한 조란 맘다니가 여유 있게 당선됐다. 지금 추세라면 최대 승부처인 내년 11월 중간선거는 트럼프의 패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에서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물가 대응 실패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배경 중 하나가 인플레이션이었다. 코로나19 때 막대한 돈이 풀리면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때 9%대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결정적 원인이 됐다. 미국민은 트럼프에게 경제 해결사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아직까지 이런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트럼프 집권 후 물가상승률이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3% 안팎을 맴돈다. 미국 중앙은행(Fed) 목표치 2%보다 높다. 게다가 상승률이 낮아졌더라도 물가 수준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다. 중산층과 서민들 사이에선 주거비, 의료비 등 생활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트럼프 관세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최근 대국민 연설에서 생활비 부담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놔 빈축을 샀다.
둘째, 권력 남용이다. 선거구를 입맛대로 조정하는 게리맨더링을 시도하다 역풍을 맞은 게 대표적이다. 원래 미국에서 선거구 조정은 10년마다 인구 변화를 반영해 이뤄진다. 그런데 트럼프는 내년 중간선거 승리를 노리고 그 시기를 임의로 앞당겼을 뿐 아니라 공화당에 유리하게 바꾸려 했다. 공화당 아성인 텍사스주가 스타트를 끊었다. 텍사스에서 연방 하원의원을 뽑을 때 더 많은 공화당 의원이 당선될 수 있도록 선거구를 뒤흔든 것이다. 민주당도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았다. 텃밭인 캘리포니아주에서 민주당에 유리하게 선거구 조정에 나섰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서 불붙은 게리맨더링 전쟁은 이후 미국 내 여러 주로 확산했다. 이는 공화당 중도파의 반발로 이어졌다. 급기야 공화당 강세 지역인 인디애나주가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고 선거구 조정안을 부결해 버렸다.
셋째, 정적을 탄압하고 협치를 거부하는 대결 정치에 대한 피로가 커졌다. 트럼프는 집권 후 과거 의회 폭동에 연루된 지지층을 대거 사면하면서 자신과 대립한 인사에 대해선 뒤끝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 집권 2기 출범 후 미국 법무부가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을 수사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과 트럼프 일가의 부동산 사기를 입증해 5억달러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낸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을 기소한 게 그런 사례다. 이들에 대한 기소는 법원에서 기각되며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는 민주당과의 협치에도 소극적이었다. 전 국민 의료보험 격인 오바마케어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 정지)이 사상 최장인 43일간이나 이어진 게 단적인 예다.
트럼프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건 이런 독선과 독주가 누적된 결과다. 핵심 지지층은 열광할지 몰라도 중도층 확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도 비슷한 실수 끝에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에 패했다. 일방통행식 정치가 역풍을 맞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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