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4호의 성공적인 발사로 한국은 자력으로 실용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세계 7번째 발사체 보유국이 됐다. 우주 기술의 자립이라는 기술적 성취는 충분히 자부할 만하다. 그러나 기술적 성취가 곧바로 산업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주라는 거대한 시장의 과실을 온전히 향유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규칙을 만드는 ‘표준화’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글로벌 시장을 제패한 한국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동시에 치열한 ‘표준 전쟁’을 치러왔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제품만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국제 반도체 표준 협의 기구(JEDEC) 활동을 통해 자사 규격을 국제 표준으로 정착시켰다. 또한 휴대폰 시장에서 이동통신 표준 제정을 주도하며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그러한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어 시장 진입의 불확실성을 제거한 것이 성공의 핵심이었다.
최근 우주산업에서도 이러한 표준화 및 규격화 움직임이 뚜렷하다.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유럽우주법(EU Space Act)이 그 신호탄이다. 이 법안은 우주 쓰레기 최소화, 충돌 회피, 위성 수명 종료 후 처리 등 지속 가능성과 신뢰성을 위한 강력한 규제를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규제라며 우려하지만 한편으로 이는 새로운 사업의 기회다.
만약 우리 기업들이 이 법안의 세부 규격 제정 과정에 참여해 우리 기술의 강점을 반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부품과 시스템이 국제 인증의 기준이 되고, 더 나아가 우리 기업이 글로벌 우주 물체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인증 사업자’의 지위까지 확보할 수 있다. 규제가 신규사업자에 대한 진입 장벽이자 하나의 새로운 사업이 되는 것이다.
전세계 유수의 우주 기업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유럽우주법의 제정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들의 참여와 대응은 아직 미흡하다.
EU 집행위원회가 유럽우주법에 대해 공개 의견 수렴을 진행했을 때 스페이스X, 에어버스, 미쓰비시 등 전세계 주요 기업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반면 국내에서 공개 의견서를 제출한 기업은 텔레픽스가 유일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2030년 글로벌 우주경제 규모는 1조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우주 산업의 ‘규칙’을 누가 만들고 따르게 하느냐가 앞으로의 막대한 경제적 가치로 연결될 것이다.
이제 우리 우주 기업들은 기술 고도화와 더불어 국제 표준화 기구 및 법제화 논의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전세계 우주 산업의 표준이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우주 기술 보유국을 넘어 우주 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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