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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육사의 수난

입력 2025-12-22 17:36   수정 2025-12-23 00:50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0~1970년대, 육군사관학교 ‘입결’은 서울대 수준이었다. 지방에서는 육사에 합격하면 플래카드를 걸 정도였다. 학비, 생활비는 물론 ‘품위유지비’ 명목의 용돈까지 나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재들을 끌어들였다. 임관 후 대위로 예편하면 정부 부처 사무관으로 임용되는 ‘유신사무관’제도까지, 그야말로 ‘꿈의 학교’였다.

한국 정보기술(IT) 혁명의 산증인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부총리)은 경기고(54회) 출신으로 육사(18기)에 들어갔다. 고교 시절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서울대에 가고, 나라의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육사에 가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영향받아서다.

경기고 동기 30여 명이 육사 시험을 봤고, 그중 11명만이 합격했다. 오 전 부총리는 기초과학부터 기계, 전기 등 모든 응용과학을 육사에서 배웠다고 한다. 육사의 교과 과정은 미국 웨스트포인트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왔는데, 웨스트포인트가 미국 최초의 공과대학이다.

육사의 영화는 이제 ‘아 옛날이여~’일 뿐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올해 육사 임관 기수 중 자퇴 인원이 77명으로 전체 정원(330명)의 23.3%에 달했다. 지난해(35명)에 비해 2배 넘게 급증했다. 반면 경쟁률(26.2 대 1)은 전년 대비(44.4 대 1) 반 토막 가까이로 떨어졌다. 일반 대학에 비해선 여전히 높지만, 내용을 보면 이 또한 속 빈 강정이다. 1차 시험 합격자 중 78%는 2차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육사 시험이 수험생들에게 일종의 모의고사로 전락한 것이다.

육사의 퇴조는 우리 군 위상의 추락을 그대로 반영한다. ‘병장보다 못하다’는 초급장교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국방부가 초급장교 임금이 수당 등을 더하면 병장보다 적지 않다는 점을 열심히 해명하는 상황이다. 최일선에서 적과 직접 맞닥뜨려 싸우는 초급장교를 ‘창끝 전투력’이라고 부른다.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 중 윈터스의 말대로 “기다리고 있을 때는 필요 없지만, 총알이 날아올 때 비로소 필요한” 게 소대장이다. 그 소중한 초급장교 수급이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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