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2 전문가 인터뷰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

“탄소중립 도시는 과거보다 조금 나아진 수준의 친환경 도시와는 다르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절대 목표를 전제로 도시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개념이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한국은 탄소중립 도시에 대한 사회적 합의 비전이 아직 분명치 않다”며 대대적인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도시에서 온실가스를 크게 줄이려면 종이컵이나 분리배출 같은 실천만으로는 감축 효과가 미미하다”며 “도시 차원에서 가장 큰 배출원은 건물과 이동수단을 함께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기 사용과 가스 난방에 의존하는 건물 에너지 구조, 내연기관 자가용을 기본값으로 삼아온 이동 체계가 도시 배출을 고착화해왔다는 설명이다. 이 두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는 탄소중립 도시로의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탄소중립 도시에 가까운 해법으로 ‘도넛 도시’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도넛 도시는 시민의 복지 수준이 일정 기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도, 기후 위기와 재난 위험이 허용 한계를 넘지 않도록 도시 운영 원리를 다시 설계하는 접근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도넛 도시를 실제 도시 비전으로 구현한 대표 사례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꼽았다. 암스테르담은 2019년부터 도넛 모델에 기반한 도시 비전 수립에 착수했고, 코로나19 이후 ‘기후와 복지’를 함께 고려하는 전환 전략을 공식화했다. 이후 이 모델은 덴마크 코펜하겐과 영국 일부 도시,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 이포 등으로 확산되며 ‘도시의 미래 비전’을 논의하는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김 소장은 암스테르담 사례에서 주목한 핵심으로 ‘복지냐 기후냐’의 선택이 아니라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정책 설계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15분 도시 철학에서 이동 체계 구현해야”
김 소장은 “도넛 도시가 ‘상위 개념’이라면 그 철학을 이동 체계에서 구현하는 방법론이 ‘15분 도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15분 도시는 모든 생활을 15분 안에 해결하자는 공간적 구호가 아니라 도시설계의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0세기형 기능 분리 도시는 주거·일자리·상업·문화가 떨어져 있고, 그 사이를 거대한 도로로 연결해 자가용 이동을 기본값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15분 도시는 이를 바꿔 걷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두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자동차를 기본값으로 둔 도시(삼각형 구조)에서 벗어나, 보행자?자전거?대중교통을 우선하는 역삼각형 도시로 전환해야 교통 부문의 배출을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전환이 이미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다. 그는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가 세계적 확산의 계기가 된 배경으로 “파리를 자동차가 다니기 불편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수준의 강한 정책 의지를 꼽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처럼 차 없는 교차로를 늘려 자동차를 외곽으로 밀어내는 방식도 “결국 같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육교 철거, 신호등 복구 같은 변화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자동차 중심’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결국 가장 큰 장애는 기술이 아니라 관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도 ‘생활 캠페인’보다 건물 에너지 전환(태양광·효율·난방 전환)과 교통수단 전환(대중교통·도보·자전거·전기화)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와 기후를 동시에 설계하는 도시 정책 필요
김 소장은 도넛 도시의 핵심을 “복지와 기후를 동시에 설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안전망은 바닥을 깔아주는 정책이지만, 기후 위기 시대에는 기후 재난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천장’을 함께 씌워야 한다”며 “문제는 바닥을 깔면 천장을 망치고, 천장을 보호하면 바닥이 무너지는 정책 충돌이 생긴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감 소장은 대중교통 정액 이용을 가능하게 한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를 예로 들며 “온실가스를 줄이면서도 이동 복지를 결합한 정책 믹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보조금처럼 특정 계층에만 혜택이 쏠릴 수 있는 정책이 아닌 전기자전거 등 폭넓은 대상에게 효과적인 설계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른 226개의 광역·기초 지자체가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수립했지만 이행 수단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226개 기초지자체가 기본계획을 세웠지만, 이행 계획이나 실행 수단은 여전히 부실해 보인다”며 “민선 9기 출범부터 2030년까지가 중간목표 달성의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만큼 지자체가 사후적으로라도 비전·수단을 보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탄소중립 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중앙정부는 재정과 제도 틀을 만들고, 지방정부는 조례·사업 설계로 실행을 끌고 가야 한다”며 “그린 리모델링을 하려 해도 건축법 규정 때문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중앙이 제도를 풀어주고, 돈을 대주지 않으면 기초지자체 재정만으로는 어렵지만 반대로 중앙이 틀을 만들어도 지방정부가 실행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고 덧붙였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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