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벤처투자 시장에는 투자할 만한 옥석을 가리는 일이 핵심입니다. 겉보기엔 호황 같지만, 실상은 독이 든 성배와 같죠.”23일 서울 성수동 DSC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만난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내년 벤처캐피털(VC) 생태계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그는 내년 VC 시장은 AI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윤 대표는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 나오는 AI 거품론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AI는 일상에서 사라진다면 불편함을 느낄만큼 눈앞에서 구현되고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과거 메타버스, 닷컴버블처럼 수요가 불분명했던 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 시장은 마치 독이 든 성배와 같다고 진단했다. AI라는 거대한 파고가 벤처 생태계를 덮치며 새로운 투자 동력을 만들고 있지만 투자할 만한 혁신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시장이 커지는 것 같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장이라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99%에 투자해서는 수익(ROI)을 낼 수 없다”며 “0.1%의 혁신 기업을 찾아내는 소수의 투자자만이 살아남는 극단적 양극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승자가 될 0.1%의 기업이 아닌 다른 기업에 투자하는 자본가들은 크게 무너질 공산이 크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윤 대표는 “과거처럼 골프장에서 인맥을 쌓아 딜을 따내는 시대는 끝났다”며 “심사역들이 기술 트렌드를 치열하게 공부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소수의 AI·딥테크 기업을 발굴해 집중 투자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인터뷰 내내 ‘소버린 AI’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국가 기밀이나 기업의 핵심 데이터를 해외 빅테크의 서버나 인프라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독자적인 대형언어모델(LLM)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그는 반도체와 인프라 자립을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예산을 들여 한국형 LLM을 만들었는데, 운영 비용이 비싸고 아무도 쓰지 않는다면 세금 낭비에 불과하다”며 “특히 엔비디아의 값비싼 AI 칩에 의존하는 것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국산 AI 칩 사용을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은 국산 칩의 성능이 엔비디아에 비해 부족할 수 있지만,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에서 의무적으로라도 실무 활용 사례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퓨리오사AI나 리벨리온 같은 국내 팹리스 기업들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과감하게 국산 칩을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소버린 AI 구현을 위해 “미쳐야 한다”는 표현까지 썼다. 한국은 미국, 중국과 함께 AI 3강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나라의 천문학적인 투자를 현실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미친듯한’ 정책으로 파상공세를 펼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대표는 “딥시크를 만든 량원펑은 중국 당국이 비행기도 못 타게 한다. 사고가 날까 봐 국가에서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신 량원펑이 고향인 우촨시로 이동할 때는 도로 신호 통제와 경찰 동원으로 프리패스 도로를 만들어줄만큼 극진하게 대우한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지금 시대의 독립투사는 총을 든 군인이 아니라,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핵심 인재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예우를 갖춰줘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DSC인베스트먼트의 전략은 투 트랙이다. 이미 검증된 기업에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덩치를 키우는 일을 돕고, 다른 한편으로는 리스크가 크더라도 잠재력 있는 초기 딥테크 기업을 발굴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계획이다.
강해령 기자 hr.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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