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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가 에너지 사업 지형도 바꾼다

입력 2026-01-03 06:00  

[한경ESG] 커버 스토리 1 - 에너지 저장의 미래
② 배터리가 바꾼 에너지 지형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가 있다. 재생에너지의 약점이던 ‘간헐성’을 극복하고,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상시 전력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배터리를 등에 업은 재생에너지가 이제 화석연료발전소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2025년 10월 발간된 블룸버그NEF(BNEF)의 ‘2025 에너지 저장 시장 전망’과 미국 국립 재생에너지연구소(NREL)의 ‘<!--StartFragment -->대규모(유틸리티 규모) 배터리저장 비용 전망’, 12월 발간된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배터리저장은 얼마나 저렴한가?(How cheap is battery storage?)’ 등 3개 보고서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글로벌 BESS 시장의 동향과 전망을 짚어봤다.

기록적인 성장세...2026년 33% 급성장 전망

글로벌 에너지 저장 시장은 그야말로 역대급 성적표를 써 내려가고 있다. BNEF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신규 BESS 설치량은 약 92GW(저장용량 247GWh)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4년 대비 23% 성장한 수치로, 양수발전을 제외한 순수 배터리저장장치 분야에서 역대 최대 규모다.

주목할 점은 이 성장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BNEF는 2026년 설치량이 123GW까지 치솟으며 전년 대비 33%의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았다. 특히 2035년까지 누적 설치 용량은 2024년 대비 약 12배 증가한 2.0TW(7.3TWh)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2024년 누적 설치량의 12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의 관세 갈등 같은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존재하지만, 이를 압도하는 강력한 시장의 ‘경제성’이 자리 잡고 있다.

경제성 획기적 개선...‘가격 파괴’가 불러온 변곡점

에너지 정책 연구소 엠버는 2025년 1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2024년 배터리 장비 비용이 40% 폭락한 데 이어, 2025년에도 대대적 가격 하락이 이어지며 2년간 시장의 경제성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었다고 짚었다.

엠버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10월 기준 중국과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의 유틸리티급 BESS 프로젝트 자본적 지출(CapEx)은 125달러/kWh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중 중국산 핵심 장비 가격은 75달러/kWh에 불과하며, 설치 및 계통 연결 비용은 약 50달러/kWh를 차지한다. 이를 전력 저장 원가인 균등화저장원가(LCOS)로 환산하면 65달러/MWh가 된다. 이러한 낮은 LCOS는 단순히 배터리 가격 하락 때문만이 아니다. 수명 연장, 효율성 향상 등 기술적 진보와 중국발 배터리 시장 경쟁 심화,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와 규모의 경제 강화, 그리고 입찰(auction) 시스템을 통한 명확한 수익 모델 구축으로 낮아진 금융 비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입찰 시스템은 투자자들의 리스크를 낮춰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금융 비용 하락)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2024년 글로벌 평균 태양광발전 단가(43달러/MWh)에 배터리저장 비용을 합산(태양광발전량의 50%를 야간에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약 33달러/MWh 추가)하더라도 총전력 비용은 76달러/MWh 수준에 머문다. 코스탄차 랑겔로바 엠버 글로벌 전력 분석가는 “태양광은 이제 낮에만 쓰는 값싼 전기가 아니라 언제든 공급 가능한(dispatchable) 상시 전기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도 보고서를 통해 배터리 자본비용이 2030년까지 현재보다 20~30% 더 하락할 것이라는 ‘낙관적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특히 배터리 셀을 담는 컨테이너 ‘배터리 외함(enclosure)’, 인버터, 관리 소프트웨어 등을 포함한 ‘주변 장치 및 설치 비용(BOS)’의 최적화가 가격 하락의 새로운 엔진이 되고 있다고 보았다. NREL은 표준화된 컨테이너형 솔루션 보급이 설치 현장의 복잡성을 줄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6시간 이상 장주기로의 발전과 한국의 부상

기술적으로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향후 10년간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BNEF는 LFP 배터리 점유율이 2027년 93%로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니켈 기반 배터리보다 저렴한 가격과 긴 수명을 앞세운 LFP는 고정형 저장장치 시장의 표준이 되었다. 심지어 LFP의 가격 하락 속도가 너무 빨라 차세대 대안으로 꼽히던 나트륨 이온 배터리의 상용화 속도마저 늦추고 있다.

저장 시간의 변화도 뚜렷하다. 현재 4시간 미만의 ‘단주기’ 저장장치가 시장의 80%를 차지하지만, 2020년대 후반부터는 6시간 이상의 ‘장주기(LDES)’ 프로젝트 비중이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 호주와 함께 장주기 프로젝트가 가장 먼저 활성화될 ‘선도 시장’으로 지목됐다. 한국 정부가 도입한 전력 시장 입찰 프로그램이 시장 가시성을 높였다. 실제로 한국 정부의 최근 540MW(약 3.2GWh) 규모의 대규모 BESS 입찰은 장주기 배터리를 전력망 핵심 자원으로 안착시키고 있다.

BNEF는 한국이 리튬이온 배터리 강국인 만큼 기존 시스템을 6~8시간대까지 확장해 여타 신기술과 경쟁하는 ‘기술 고도화의 격전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한국이 단순 제조국을 넘어 복잡한 계통 안에서 저장장치를 운영하는 ‘시스템 통합(SI) 및 운영 모델’의 글로벌 표준을 제시할 기회를 잡았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배터리는 단순한 보조장치에서 벗어나 전력망의 핵심 인프라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 폭락과 기술혁신이 맞물리며 재생에너지 자립이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의 마지막 퍼즐은 배터리였다”는 엠버의 분석처럼, 24시간 멈추지 않는 태양광과 풍력 시대를 기대해도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구현화 한경ESG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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