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624.79
(38.47
0.84%)
코스닥
949.81
(1.89
0.20%)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오늘은 네가 꽃이다 [나태주의 인생 일기]

입력 2025-12-23 17:23   수정 2025-12-24 00:35


해마다 연말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우편물이 있다. 신년도 연력, 캘린더다. 나는 해마다 새해가 되면 삼백예순다섯 개의 태양과 달님을 선물로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새해가 되어 새로운 달력을 선물받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며 좋은 일이다.

또 연말이 되면 내가 하는 일이 있다. 묵은 수첩을 정리하고 새로운 수첩을 장만하는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이 되자 문방구점에 들러 새로운 수첩을 하나 구했다. 그리고 새해 연력도 새롭게 마련하여 아파트 거실에 걸었다.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연력도 좋지만 내가 선호하는 연력은 농협중앙회가 발행하는 연력이다. 한 장에 석 달 치 달력이 인쇄돼 있어 지난 일을 살피고 앞일을 계획하기 알맞은 것이다.
영국 한글학교의 두 번째 선물
며칠 동안 외부 강연 일정으로 들르지 못하다가 풀꽃문학관에 나가 보니 여러 개의 우편물이 새롭게 배달돼 있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우편물은 단연 영국의 뉴몰든 한글학교에서 보내온 신년도 연력이었다. 왜 그런가? 그 연력은 단매인데 오른쪽에 2026년도 달력이 인쇄돼 있고 오른쪽에 나의 시가 시화 작품으로 인쇄돼 있었던 것이다.

작년에 이어서 두 번째 일이다. 작년도 연력에는 나의 시 ‘풀꽃’이 문자 그림으로 새겨져 있었다. 영국의 런던 근교 뉴몰든이라는 작은 도시의 한글학교 어린이들이 ‘풀꽃’ 시의 문장 가운데에서 한 글자 한 글자씩을 맡아서 그림으로 표현해 만든 시화 작품이었다.

그 연력을 받고 지난해 12월, 내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올해도 역시 그 뉴몰든 한글학교 어린이들이 만든 새로운 연력이 나에게로 배달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횡재이고 감사한 축복인지!

연력이 든 봉투에는 크리스마스카드와 함께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 모두가 뉴몰든 한글학교 이향규 교장 선생님이 마련해서 보낸 것이었다. 사신 공개가 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거의 공문 형식으로 보내온 문장이기에 여기에 옮기면 이렇다.

우선 크리스마스카드에 적힌 문장. ‘나태주 선생님께. 저희 학생들에게 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영국에 오시면 우리 학교 꽃들을 보러 꼭 와 주셔요. 감사드립니다. 이향규 드림.’ 나아가 컴퓨터 글씨로 인쇄된 편지 내용의 일부를 옮기면 이러하다.
발달장애 어린이의 특별한 재능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나태주 시인의 시로 2026년 연력을 만들었어요. 미술반 친구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꾸민 것입니다. 다 귀하고 예쁩니다. 이 중 한 어린이를 소개해 드려요. 첫 부분의 ‘꽃’, ‘나’, ‘태’ 자를 꾸민 친구입니다. 우리 띠오는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어요. 1년 반 전에 우리 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곤 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중략) 띠오는 미술을 좋아하는데, 이번 연력 프로젝트에서도 멋진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꽃’은 우주선과 사람을 그렸고, ‘나’는 물고기와 문어로 바다를 표현하고, ‘태’는 얼룩말과 기린으로 땅의 생명을 그렸습니다.

띠오가 문자를 보는 눈은 특별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띠오가 멋진 예술가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선생님께도 자랑하고 싶었어요).’

나는 편지를 읽으며 멀고 먼 나라, 내가 가보지 않은 고장 뉴몰든을 떠올리고 그 학교의 선생님들을 생각해 보고 또 여러 명의 아이를 떠올리면서 살그머니 미소를 지어 본다. 특히 ‘띠오’라는 낯선 이름의 아이, 미술을 좋아하고 유난히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아이를 생각하며 언제쯤 나에게 행운이 있어 영국이란 나라를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또 뉴몰든의 한글학교를 방문할 수 있을까, 마음을 멀리 내밀어 보기도 한다.
자기가 꽃이라는 걸 다 알았으면
그나저나 영국의 한글학교 아이들이 고맙게도 문자도(文字圖)로 만들어 준 나의 시 ‘오늘의 꽃’은 참 단출한 작품이다. 마치 아이끼리 무심히 주고받는 대화만 같다.

그러하다. 이 작품은 실지로 대화 내용으로 꾸려진 작품이다. 시를 쓴 날짜는 2016년 7월 21일. 그 당시 나는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무(公務)로 공주시청에 자주 들렀는데 부시장실도 내가 자주 들른 방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의 부시장은 유병덕 씨. 유독 문화계 인사들을 좋아해서 내가 찾아가면 화들짝 반기는 분이었다. 그날도 무심히 부시장실에 들렀는데 부시장실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차를 내주었다. 부시장실 아가씨 또한 오랫동안 만나서 친숙한 사이여서 내가 농담을 건넸다. “현진 씨가 말이 없고 착해서 참 잘 웃지요?” 그러자 부시장이 말을 받았다. “그럼요. 현진 씨는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뻐요.” 그 말을 받아 내가 한마디 보탰다. “그래, 눈을 감아도 예쁜가요?” “그럼요.” 부시장이 다시 말을 받았다.

문화원으로 돌아온 나는 부시장실에서 나눈 대화를 입속으로 외우며 시 하나를 꾸렸다.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바로 ‘오늘의 꽃’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마지막 구절 ‘오늘은 네가 꽃이다’이다. 우리는 누구나 꽃일 수 있다. 다만 자기가 꽃인 것을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영국의 뉴몰든 한글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모두가 자기가 꽃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다. 이 얼마나 귀중한 깨달음인가! 새해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자기가 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