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주행 구동을 시작합니다. 안전을 위해 벨트를 매주세요.”
최근 중국 충칭 용촨에서 탑승한 바이두의 6세대 로보택시(무인 자율주행 택시) 뤄보콰이파오(영문명 아폴로고). 5세대에 비해 카메라·레이더 등 센서와 인지·예측 능력이 향상된 덕분인지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예상되면 어김없이 경적을 울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데다 언덕이 많아 인간도 녹록지 않은 꽉 막힌 도로를 적절한 ‘눈치 운전’과 ‘얌체 운전’으로 꽤 공격적으로 주행했다.
충칭 량장신구에 있는 치텅로봇(세븐스로보틱스)은 내년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중국의 대표 특수로봇 업체인 치텅로봇은 고온·저온·유독·유해·폭발 등 극한 환경에 인간 대신 투입할 수 있는 산업 현장용 로봇을 생산하고 있다. 장저 치텅로봇 기획총괄이사는 “안전 현장에서 로봇 한 대가 인간 6~8명 정도의 일을 거뜬히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방폭 사족보행 로봇인 X3스테이블에는 세계 각국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1800km 떨어져 있는 충칭은 ‘중국 기술굴기’의 축소판이다. 내년 이후 5년간 중국 경제의 핵심 전략인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의 진행 과정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첨단기술 산업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중국의 대표 자율주행 기업 바이두는 충칭 용촨에서 세계 최초로 6세대 로보택시를 출시했다. 6세대 로보택시는 인간 운전자가 전혀 필요 없는 최상급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L)5 바로 아래 등급인 레벨4다. 지나치게 방어적인 5세대를 개선해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했다. 사고 회피 능력과 안전성이 인간의 14배 수준이라는 자체 평가도 있다. 바이두 충칭센터의 한 관계자는 “텅 비어 있는 운전석을 보지 않으면 도로 위에서 로보택시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6세대 로보택시는 전후좌우 사면으로 감지되는 레이더의 정교함을 높여 더욱 민첩한 운행이 가능해졌다. 음성 인식 기능도 강화해 탑승자의 목소리만으로도 창문과 에어컨, 조명 등을 작동하고 조절할 수 있다. 충칭은 중국 최초로 안전요원이 없는 자율주행 로보택시 서비스가 허가된 곳이다. 바이두의 뤄보콰이파오는 이곳에서 2022년부터 유상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창장(양쯔강)과 자링강이 만나는 위치에 있는 충칭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대교 진입로는 언제나 복잡하고 차량이 몰리는 특징도 있다. 언덕이 많아 어찌 보면 여러 면에서 자율주행엔 불리한 환경 조건이다. 하지만 충칭시는 다른 지방정부에 비해 자율주행 관련 규제를 더 적극적으로 완화하고 적극적으로 시범구를 지정해 산업을 육성했다.
바이두 관계자는 “자율주행이 가능한 13인승 버스도 시범 운영 중인데 교통카드로 이용할 수 있다”며 “지리적인 제약이 로보택시의 딥러닝에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지형 덕분에 자율주행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검증하기에 최적의 테스트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자율주행만큼 충칭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건 특수로봇 부문이다. 그중 치텅로봇은 중국의 기술굴기 방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기업이다. 치텅로봇은 산업용 방폭 로봇과 응급구조 로봇, 위험 지역 안전점검 로봇 등 특수로봇에 집중하고 있다. 특수로봇 설계·연구개발(R&D)·생산·판매·서비스를 수직 통합한 모델을 구축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의 작은 거인(강소기업)으로도 선정됐다.
무엇보다 치텅로봇의 특수로봇은 중국식 기술 자립의 핵심 사례로 꼽힌다. 폭발 위험이 있는 석유·가스 플랜트, 화학공장, 광산, 터널 같은 현장에 인간 대신 투입되는 바퀴 로봇, 레일 로봇, 방폭 사족보행 로봇의 핵심 기술을 치텅로봇 자력으로 개발해서다. 치텅로봇은 현재 40여 개국에 맞춤형·표준형 제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중국 최대 에너지·화학 기업인 시노펙 등을 주력 고객사로 두고 있다.
치텅로봇 관계자는 “인화성이나 폭발성 물질이 많은 산업 현장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환경의 특수성을 알려주면 그에 맞춰 순찰이나 안전점검을 위한 로봇을 제작하고 있다”며 “고온·고압 등 위험한 환경에 인간 대신 로봇을 투입해 열·가스 감지 등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 대당 가격은 최저 138만 위안(약 2억8710만원) 정도다. 현재 500여 건의 위험을 조기 감지했으며 안전사고의 90%가량을 사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치텅로봇 측의 설명이다.
치텅로봇은 전 직원 700명 가운데 절반을 R&D 인력으로 운영하고 있다. 로봇의 성능 개발에 필요한 AI 기술을 자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치텅로봇 관계자는 “AI 칩 관련해 해외나 타사에 의존하지 않도록 자사 설계와 제조 능력 향상에 업무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지난해 치텅로봇을 직접 방문해 이런 기술 자립을 격려했다. 치텅로봇은 이르면 내년 1분기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도 새롭게 출시해 화재 현장, 산악지대, 지대가 불균형한 산업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충칭에는 스마트공장을 추진하는 완성차 기업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창청차다. 홍콩과 중국 본토에 동시 상장돼 있는 창청차는 중국 최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픽업트럭 제조 기업이다. 창청차는 충칭에 100억 위안을 투자해 차체·엔진·변속기 등 핵심 부품부터 완성차 조립까지 아우르는 생산 거점을 구축했다. 창청차 충칭 스마트공장은 연간 16만 대 생산 능력을 갖췄다. 향후 신에너지차 비중을 늘리는 게 목표다. 창청차 공장 외곽엔 해외로 판매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여기서 생산된 차량은 동남아시아, 중동, 호주, 남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창청차의 충칭 스마트공장은 로봇 프로그래밍 기술을 결합해 용접 효율을 30% 향상시켰다. 용접 라인과 접착제 도포 라인의 산업용로봇의 적용률은 97%에 달한다. 총 400대 산업용로봇을 보유하고 있으며 생산성 향상과 인건비 최소화를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창청차는 바이두와 협력해 자율주행 테스트도 시범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과거 충칭은 오토바이·기계·철강 등 전통 제조업 중심의 산업단지였다. 하지만 이젠 로보택시·스마트공장·자율주행이 한 도시 안에서 연결되면서 도로와 공장·데이터센터를 아우르는 종합 테스트베드로 탈바꿈했다. 로봇·자동차·클라우드 컴퓨팅이 함께 작동하는 지능형 제조·디지털 인프라 구축은 중국 정부가 내년부터 추진할 15차 5개년 계획의 핵심이기도 하다.
충칭이 이렇게 ‘디지털 인프라+실물 제조’ 결합 모델을 추진하는데 다양한 시범 운영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와 현장 운영 경험은 핵심 자산이 됐다. 바이두의 6세대 로보택시만 해도 충칭에서 1차 테스트를 거쳐 베이징·우한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전문가들은 미·중 첨단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할수록 중국 정부가 자국 내 공급망을 촘촘하게 엮고 서부·중소 도시를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는데 충칭이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충칭시는 초기 개발 제품이라도 현장에서 시범 운영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규제를 풀고 충칭대·서남대 등 지역 대학이 기업과 자유롭게 AI·자율주행·로봇 관련 연구를 공동 진행하도록 산학 연구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렇게 진행된 각종 산학 연구 결과물이 충칭 내 기술 자립도 향상에 기여하고 충칭시를 자립형 공급망의 실험장으로 성장시키고 있는 셈이다.
충칭시는 베이징 대비 5분의 1 수준인 땅값과 싼 전기료를 내세워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텐센트 등 중국의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잇따라 클라우드·데이터센터와 연구기관을 충칭에 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각종 세제 혜택과 행정 간소화로 국내외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역시 당초 우한을 공장 부지로 고려했지만 충칭시의 적극적인 구애와 우호적인 조건 제시에 충칭으로 부지를 바꿨다.
충칭시 관계자는 “성장 잠재력이 둔화하고 있는 전통 제조업에서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일찌감치 미래 신성장 산업을 집중 육성했다”며 “열악한 지리적 조건을 역으로 활용해 AI와 로봇, 빅데이터 산업,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앞세운 스마트시티로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칭=김은정 한국경제 특파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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