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센 강변에는 수많은 명작이 존재한다. 옛 왕궁이자 세계 최고의 박물관인 루브르가 인류의 보물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아폴론 갤러리'다. 1661년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는 루브르의 화재로 소실된 건물을 재건하며 건축가 루이 르 보에게 태양신 아폴론의 이름을 딴 새로운 갤러리를 설계하도록 했다. 벽면과 천장을 가득 채운 금박 장식과 프레스코화, 조각들은 압도적인 장엄함을 자아내며 훗날 베르사유 궁전 내 ‘거울의 방’에 영감을 줬다.아폴론 갤러리는 단순히 보석을 진열한 전시실이 아니다. 왕권과 예술, 그리고 기술과 럭셔리가 교차하던 문명의 무대였다. 특히 프랑스 왕실과 제정(帝政)의 보석 컬렉션이 이곳에 안치되면서 이 갤러리는 오늘날 수많은 현대 주얼러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런데 그 찬란한 공간에 전시되어 있던 약 1499억원 상당으로 추산되는 왕실 보석들이 최근 한 일요일 아침, 단 몇 분 만의 강탈로 사라졌다. '문화사적 재앙'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프랑스 문화 장관 및 주요 언론에 따르면, 범행의 목표는 총 9점이었다. 그중 8점이 사라지고 1점만 회수됐다. 유일하게 되찾은 것은 유제니 황후의 왕관이다. 범인들이 도주 중 떨어뜨린 채 발견됐다. 일부 파손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번에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은 모두 19세기 프랑스 왕실과 제정을 위해 제작된 유서 깊은 보물들이다. 나폴레옹 1세와 나폴레옹 3세의 황후를 위해 만들어진 이 컬렉션들은 프랑스 제정기의 예술적 감성과 세공 기술 그리고 장인정신의 결정체였다. 명품 주얼리 하우스들이 계승해 온 럭셔리의 원형이자 프랑스 왕실의 미적 유산 그 자체였다.

대표적인 게 212개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제작 유제니 황후의 티아라다. 유제니 황후는 나폴레옹 3세와 결혼하면서 17가지로 구성된 진주 주얼리 세트를 선물 받았다. 그중 하나인 이 티아라는 왕실 주얼러였던 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레모니에와 프랑수아 크레이머가 제작했다. 티아라는 212개의 진주와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1998개, 로즈 컷 다이아몬드 992개를 세팅해 은 소재로 제작됐다. 이 티아라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왕실 보석인 나폴레옹의 둘째 부인이었던 마리 루이즈 황후의 주얼리에서 나온 진주를 사용했다. 화가 빈터할터가 1853년에 그린 공식 초상화에서 유제니 황후가 결혼 선물로 받은 진주 티아라를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티아라에 장식된 진주는 모두 천연 진주다. 극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유제니는 프랑스의 마지막 황후다. 1870년 제정이 몰락한 뒤 아들 루이 나폴레옹 왕자와 함께 망명길에 올라 생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냈다.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동경하며, 자신을 그와 닮게 꾸미고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와 주얼리까지 수집했다. 보석과 의상의 광팬이던 유제니 황후가 여행을 떠날 때면, 이를 안전하게 실어 나를 여행용 가방도 필수였다. 황후는 트렁크를 납품한 루이비통을 총애해 파리에 가게를 열도록 도왔다.

오늘날 세계에서 으뜸가는 명품 브랜드가 된 루이비통의 첫번째 고객이 바로 유제니 황후였다. 황후가 된 이후 유제니는 왕실 보석 일부를 해체해 새로운 형태로 리세팅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주얼리 컬렉션은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독보적인 미학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도난 사건으로 그 일부가 사라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하나는 ‘리레쿼리 브로치’. 성유물이나 기념 유품을 간직하기 위해 만들어진 브로치 형태다. 왕실 공식 주얼러였던 알프레드 밥스트와 프레데릭 밥스트 형제가 제작했다. 이 브로치에 세팅된 세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는 원래 루이 14세의 상의 네 번째 단추로 사용되었던 보석이다.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한 귀걸이로 다시 세공됐다가 현재의 형태로 변형된 것이다. 즉 이 브로치는 프랑스 왕실 보석의 여러 세대를 거친 전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다이아몬드 리본 브로치’로 황후가 공식 복장에 착용하던 의전용 장신구다. 다이아몬드와 리본 모티브를 결합해 가슴 중앙을 장식하도록 디자인된 이 대형 브로치는 유제니 황후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대표한다. 두 작품 모두 19세기 프랑스 제 2제정기의 미학과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2025년 루브르 박물관 도난 사건의 목록에 포함되면서 그 역사적 가치를 역설적으로 상기시키게 됐다.

마리 아멜리 왕비의 사파이어 티아라와 목걸이, 귀걸이 한 쪽 등 장신구 세 점도 도난품에 포함됐다. 마리 아멜리 왕비의 사파이어 세트는 ‘마리 아멜리 왕비와 호르텐스 여왕의 사파이어 파뤼르’라는 긴 이름으로 불린다. 실론(Ceylon·현재는 스리랑카)산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조합한 작품이다. 이 세트에서 티아라, 목걸이 그리고 귀걸이 중 한쪽만 탈취된 것으로 발표됐다. 파뤼르는 19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 사회, 특히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주얼리 세트를 말한다. 전형적인 파뤼르는 티아라,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 벨트 버클, 코르사주 브로치, 헤어콤 등 5~20점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황후나 대공비 등 외교 행사에 나서는 왕족에게는 의전용 풀 세트였다.
아멜리 왕비의 사파이어 세트는 큰 사파이어가 중심에 배열되어 있고 이를 둘러싸는 다이아몬드 장식과 사파이어 장식이 이어지는 형태다. 원래 소유자는 호르텐스 네덜란드 여왕이었다. 이후 마리 아멜리 왕비가 이 세트를 소유하게 됐다. 아멜리 왕비는 공식 행사에서 이 세트를 여러 차례 착용했고 사파이어 파뤼르를 착용한 초상화도 남아 있다. 제작 시기는 19세기 초반이며 제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새 신부에게 바칠 결혼 선물이었던 에메랄드 세트를 나폴레옹은 파리의 왕실 보석상 프랑수아 레뇨 니토에게 의뢰했다. 니토는 오늘날 쇼메의 전신이 된 주얼러로 황실의 공식 세공사였다. 그가 제작한 ‘에메랄드 파뤼르’는 32개의 에메랄드와 1138개의 다이아몬드가 정교한 마름모 형태와 드롭형으로 배열되어 있다.
금과 은을 섞어 만든 섬세한 세공 위로 브릴리언트 컷과 로즈 컷 다이아몬드가 교차하며, 중앙에는 타원형 에메랄드가 중심을 이룬다. 나폴레옹 제국 양식이 지닌 장중함과 우아함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상징적 작품이다. 그 짙은 초록색 에메랄드의 이면에는 외교와 권력 그리고 제국의 야망이 교차한 정치적 서사가 스며 있었다.


황후의 왕관엔 전례없이 독수리 8마리가 장식돼 있다. 금으로 된 금 독수리 여덟 마리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이다. 독수리 날개가 왕관 상단의 십자가 아래 구형(공 모양)을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독수리 사이사이에는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장식을 번갈아 세팅했다. 왕관의 상단에는 다이아몬드로 된 구형이 있고 구형의 한가운데는 에메랄드 띠를 둘렀다. 왕관의 가장 윗부분에는 십자가가 있는데, 6개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그렇게 왕관에는 총 2480개의 다이아몬드와 56개의 에메랄드가 사용되었다. 유제니 황후의 진주 티아라와 함께 독수리 왕관은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손꼽힌다.
이번 루브르 아폴론 갤러리 사건은 "박물관에서 보석이 도난당했다"라는 수준의 사고가 아니다. 아폴론 갤러리는 세계 각국의 관람객이 찾는 루브르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은 관람 시간 중 외벽 공사의 틈을 노려 불과 7분 만에 왕실 보석을 감쪽같이 탈취했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문화유산에 대한 보안 체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인명 피해가 없다는 점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사라진 유산의 가치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다. 탈취된 보석들은 대부분 암시장에서 거래되거나 재연마와 해체를 거쳐 흔적 없이 사라질 위험에 놓였다. 보석을 빼내고 금속을 녹이는 일은 기술적으로 너무도 쉽다. 프랑스 왕실 주얼리의 자존심은 지금, 해체의 운명 앞에 서 있다. 이번 사건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사라진 비극이 아니다. 우리가 신뢰하던 박물관의 보안 체계 그리고 문화유산의 실체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경고다. 보석은 언제나 권력과 욕망 그리고 아름다움의 경계를 오가며 역사를 비추어 왔다. 그것이 왕의 관을 장식하든, 박물관의 진열대 위에 놓여 있든, 혹은 파리의 거리에서 산산이 부서져 있든, 그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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