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108.62
(8.70
0.21%)
코스닥
915.20
(4.36
0.47%)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다산칼럼] 고마워, 김 부장

입력 2025-12-24 17:25   수정 2025-12-25 00:08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 김 부장은 산업화 세대, 이른바 ‘오대남’의 초상이다. 이들은 ‘치열한 경쟁→빠른 승진→가족 부양’을 성취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나 중년이 되자 직장에선 MZ세대와, 가정에선 가족과 충돌하며 과거의 ‘규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다. 후반부 김 부장이 느끼는 ‘세상이 나만 남겨두고 달려가버린 듯한 감각’은 오늘의 오대남이 겪는 상실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음식점 앞에 붙은 ‘50대 남성 출입 금지’ 문구 역시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인식의 균열을 드러낸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되묻는 장면은 과거의 성실함이 이제는 ‘꼰대성’으로 낙인찍히는 시대 변화를 압축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세대 갈등이 아니라 사회 질서의 급격한 전환이다. 1995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50대 이상 응답자의 71%가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답했지만 2008년엔 65%가 ‘아들이 없어도 된다’고 했다. 2024년 조사에선 딸 선호(28%)가 아들(15%)의 두 배로 역전됐다. 1992년 아들 선호가 58%였던 점을 감안하면 600년간 이어진 남아 선호는 불과 한 세대 만에 해체됐다.

가정의 주도권도 재편됐다. 1990년대 30%대이던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2000년대 80%를 넘었고 2008년엔 남성을 추월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는 ‘남성 중심 부계 구조’를 ‘부부·자녀 중심 구조’로 바꿨다. 결정적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구조조정의 충격은 40~50대 남성에게 집중됐고, 직장이 존재의 중심이던 이들에게 명함 상실은 곧 권위의 붕괴였다.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김 부장의 독백은 그 상실감을 집약한다.

2005년 호주제 폐지와 상속법 개정은 이 흐름을 제도적으로 확정했다. 개정 전 상속 비율은 장남 1.5:차남 1:배우자 0.5:미혼 딸 0.5:출가한 딸 0.25였다. 장남은 미혼 딸의 세 배, 출가한 딸의 여섯 배를 상속받았지만, 개정 후엔 배우자 1.5:자녀 1로 성별·출가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자녀가 동일한 상속권을 갖게 됐다. 출산율은 1990년대 1.6명에서 2008년 1명 이하로 떨어지며 ‘많이 낳아 아들을 두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해졌다. 맞벌이와 핵가족화가 보편화되면서 ‘남편은 밖, 아내는 집’이라는 분업 구조를 무너뜨렸다.

서구가 산업화와 탈가부장, 저출생을 100년에 걸쳐 경험했다면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이를 압축적으로 겪었다. 그 소용돌이 중심에 있던 세대가 바로 오대남이다. 1960~1970년대 남아 선호가 당연하던 시대에 태어나 1980~1990년대 산업화 주역으로 일했지만 중년 이후 그 믿음은 더 이상 사회의 기대도 현실도 아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개인의 박탈감을 넘어 사회적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자살 사망자 1만4872명 중 50대가 3152명(21.1%)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50대 이상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약 세 배이며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존재 기반과 관계, 직업을 동시에 잃은 중장년 남성이 사회적 연결망 밖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오대남의 ‘재사회화’(re-socialization)다. 가부장제 해체를 권위의 몰락으로만 볼 게 아니라 새 시대에 맞는 관계와 소통 방식을 다시 배우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이를 방치하면 남성은 역차별의 피해의식에, 젊은 세대는 구세대 혐오에, 여성은 성평등 피로감에 갇힌다. 건강한 남성성 모델이 부재할수록 사회 전체의 갈등 비용은 커진다.

고맙게도 수많은 김 부장이 산업화 시기의 성장 엔진이자 가정의 생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떠받쳐왔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이들이 새 시대에 걸맞은 역할을 찾도록 돕는 출구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채 ‘꼰대’라는 낙인만 남겼다. 가부장제 이후 관계 규범과 세대 갈등을 조정할 사회적 논의, 제도적 장치 역시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방향을 잃은 오대남 앞에는 뚜렷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