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출을 연체한 지 1년이 됐습니다. 곧 대규모 채무 탕감이 있을 것 같은데 대출을 지금 갚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버텨볼까요.”지난 6월 정부가 장기 소액 연체 채권에 대한 채무조정 정책을 발표하기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채무 탕감, 신용사면 같은 정책이 ‘빚을 제때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일회성 정책이므로 부작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정부 설명과 상반되게 저신용자 가운데 대출을 연체하는 차주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신용자 중에서도 신용점수 400점 미만 ‘최저 구간’에서만 연체자가 급증한 것이다. 전체 금융채무 불이행자 가운데 400점 미만 저신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9월 말 95.2%에서 올해 9월 말 99.4%로 급등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 배경에 채무 탕감 정책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 또는 채무조정을 하는 배드뱅크(새도약기금)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경기 침체나 고금리 장기화 등에 따른 충격을 저신용자들이 집중적으로 받아 연체자가 늘어난 측면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신용점수 400점 미만의 최저신용자 구간에서만 연체자가 급증한 건 ‘대출을 갚지 않고 드러눕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진 결과”라고 꼬집었다.
‘신용 양극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신용점수별 가계대출 보유자를 분석한 결과 950점 이상 최고신용자와 400점 미만 최저신용자만 증가하고 나머지 구간에서는 인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정책서민금융 상품인 햇살론 금리를 현행 연 15.9%에서 연 12.5%로 인하하고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배려자에게는 연 9.9%까지 낮추기로 했다. 불법사금융 예방 대출 금리도 현재 연 9.9~15.9%에서 연 5~6%대로 낮춘다. 문제는 최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서민금융 금리가 저축은행, 카드사 등 2금융권 대출 금리보다 낮아진다는 점이다.
‘관치 금융’ 여파로 가계대출 금리가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은행연합회의 지난달 은행별 가계대출 금리(신규 취급 기준) 공시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신용점수 600점 이하 차주의 금리는 연 5.48%로 751~800점(연 5.69%)보다 낮았다.
정부가 은행권에 저신용자, 취약계층 대상 대출을 확대하라고 주문한 결과로 풀이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고위험 대출을 낮은 금리로 떠안으면 금융 시스템 전반의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