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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판을 바꾸는 자들 [2026 뉴 리더]

입력 2025-12-29 08:16   수정 2025-12-29 08:17

[커버스토리 : 2026 뉴 리더]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해도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단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최소한 그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하고.”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대사다. 아무리 달려도 같은 곳에 머무는 것을 깨달은 앨리스가 영문을 묻자 붉은 여왕이 한 답이다. 여기서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란 용어가 탄생했다. 이 대사는 오늘날 경영학에서 생존의 법칙으로 통용된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하고, 적당한 속도로 변하면 생존하고, 전력으로 변하면 진보한다는 의미다.

국가 경제도 마찬가지다. 새로 탄생하는 혁신 기업의 숫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그 맨 앞자리에는 빅테크들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서 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남들보다 두 배 더 빨리 달려 ‘판’을 바꿔버린 이들이 등장하고 있다. 30년간 공고했던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가 흔들리며 그 균열 사이로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뉴 리더’들이 솟구쳐 오르고 있다.


86학번 공대생 그리고 송치형·백준호의 부상
한국 IT 산업의 부흥을 이끈 세대는 1980년대 중후반 대학에 들어갔다. 한국이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에 진입하던 시기 서울대 전자공학·컴퓨터공학과 등 공대가 의대와 법대보다 커트라인이 높았던 시절의 천재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산업에 대한 꿈을 품고 공대로 향했고 삼성SDS 등 대기업을 거쳐 네이버,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라는 테크 제국을 건설했다. 86학번이 주류였던 이들의 기업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이었다.

하지만 이들 이후 세대교체의 맥은 끊긴 듯 보였다. 쿠팡,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컬리 등 소비재 플랫폼 기업들이 등장했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경영의 중심축은 여전히 86학번 전후 세대가 쥐고 있었다. ‘네카라쿠배당토’라는 수년 전의 신조어조차 그 속살은 기성 테크 권력의 연장이었다.

최근 이 정체된 테크 비즈니스에 균열을 내는 인물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네이버와 합병 후 이해진 의장의 실질적 승계자로 거론되는 두나무 창업자 송치형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메타(Meta)의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글로벌 AI 칩 시장을 정조준한 퓨리오사AI의 백준호, 차세대 AI 반도체 선두주자를 노리는 리벨리온의 박성현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86학번 세대가 닦아놓은 ‘포털과 메신저’를 넘어 AI와 가상자산이라는 글로벌 인프라의 핵심부로 전선을 옮기고 있다.
서경배의 시대에서 김병훈·천주혁의 시대로
오래된 체제의 붕괴가 가장 극적으로 일어나는 곳은 뷰티 산업이다.

1990년대 중반 전통의 화장품 회사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은 전열을 정비했다. 증권과 야구단을 팔고 본업인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면서 장기집권의 길을 닦았다. LG생활건강 역시 이자녹스, 라끄베르 등을 내세워 양강 체제를 굳혔다. 이 질서는 30년 가까이 유지됐다.

그러나 이 견고한 성벽에 균열을 낸 주체는 대기업이 아닌 1980년대생이 이끄는 중소 인디 브랜드들이었다. 에이피알의 김병훈 대표는 전통의 두 거인을 제치고 뷰티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구다이글로벌의 천주혁 대표는 공격적인 M&A를 통해 ‘한국의 로레알’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판을 흔들고 있다. 내년 상장 후 많게는 10조원의 시가총액이 예상되고 있다.

뷰티업계의 판도 변화는 ‘업의 본질’의 변화와 함께 찾아왔다. 과거 화장품 산업은 제조 역량이 먼저였고 이를 기반으로 브랜드에 결합하는 게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라는 ‘뷰티업계의 TSMC’가 그 지형을 바꿔버렸다. 이들의 탁월한 제조 인프라를 활용하는 수만 개의 뷰티 기업이 탄생했다. 경쟁의 축은 ‘무엇을 만드느냐’에서 ‘어떤 콘셉트를 설계하느냐’로 이동했다. 온라인과 글로벌에 최적화된 신세대 경영자들이 제조가 아닌 기획과 유통, 트래픽의 구매 전환에 집중하며 산업의 패권을 옮겨버렸다.
신약개발보다 ‘플랫폼 바이오’
바이오 산업의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한국 제약산업은 1960년대 이후 지난 50년간 유한양행, 동아제약, 종근당의 ‘3강 체제’가 고착되어 있었다. 안티푸라민과 박카스, 펜잘 등 킬러 제품들이 지탱하던 질서는 2010년대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등장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제조 역량을 앞세운 바이오시밀러(복제약)로 시장의 경로를 틀었고 비슷한 시기에 한미약품은 ‘기술 수출’이라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했다.

최근의 변화는 한층 더 급진적이다. 알테오젠의 박순재, 리가켐바이오의 김용주 등은 ‘돈 버는 바이오’를 지속가능한 구조로 구현해 냈다. 이들은 특정 신약 하나에 도박을 거는 대신 약물을 표적까지 정확히 배달하는 ‘기반 기술’에 집중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고속도로(플랫폼)를 건설한 셈이다. 한국 제조업 특유의 정밀함과 반복 생산 능력을 바이오 설계에 이식한 이들은 이제 글로벌 빅파마들이 찾아와 노크하는 새로운 리더의 자리에 서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한국 제약업계의 ‘축적의 시간’이 만든 결과물이다. 과거 한국 바이오 R&D의 산실이었던 LG생명과학(현 LG화학 바이오부문) 출신들로, 기술의 씨앗이 창업자의 야성적인 집념과 만나 글로벌 수준의 결실로 이어진 셈이다.
실험실을 넘어 시장의 중심으로
미래 산업의 두 축인 로봇과 우주 역시 게임체인저들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기술의 토양을 닦아왔으나 시장이 체감하는 폭발력은 2026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주가는 이미 기대를 선반영해 요동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2026년이 코스닥 기술주들의 전성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로봇 시대의 선두에는 이정호 대표가 이끄는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있다. 이곳은 대덕연구개발특구와 KAIST의 정수인 이족보행 로봇 ‘휴보’의 기술력을 실험실에 가두지 않고 시장으로 끌어낸 주인공이다. 핵심 부품의 내재화를 통해 협동로봇과 사족보행 로봇으로 외연을 넓힌 이들은 삼성전자의 전략적 지분 투자와 자회사 편입을 거치며 기술력에 ‘자본의 신뢰’까지 확보했다. 공공 연구성과를 상용화해 글로벌 로봇 시장에 도전하는 이들의 행보는 한국 딥테크 기업이 가야 할 이정표가 되었다.

김병수 대표가 이끄는 로보티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로봇의 관절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를 국산화하며 기초 체력을 다진 그는 이제 자율주행 배달 로봇으로 도시의 풍경을 바꾸려 한다. 이들의 성장은 자본 시장의 지도도 다시 그렸다. 기업데이터연구소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12월 19일 기준으로 김병수 대표는 주식 가치 약 9700억원을 기록하며 단숨에 주식 부호 상위권에 진입했고 오준호 레인보우로보틱스 창업자의 자녀인 오수정(1986년생) 씨가 30대 주식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로봇 신흥 부호’ 세대의 등장을 알렸다. 이는 전통적인 제조·유통 재벌들의 자리를 기술 권력을 가진 뉴 리더들이 대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주산업 역시 ‘국가 독점’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노스페이스의 김수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신동윤 등은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로 전환하며 하늘의 문을 열어젖히는 중이다. 비록 한국 우주산업의 현주소는 발사 실패와 주가 등락이라는 혹독한 진통을 겪고 있지만 이들이 쏘아 올린 것은 로켓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다음 영토다.


WHO’S NEXT
2025년 전면에 등장한 뉴 리더들은 이처럼 기존의 산업 공식을 무너뜨리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2026년 한국 산업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한 경쟁 구도의 한복판에 서 있다.

빌 게이츠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경쟁자는 지금 어딘가의 창고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스타트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역시 라인을 상장하던 영광스러운 날에 “매일 아침 미국에서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접한다”며 “국경도 시차도 없는 인터넷 환경에서 이용자들은 곧바로 비교하고 이동한다. 그런 상대들과 어떻게 경쟁할지가 가장 두렵다”고 토로했다.

오늘의 선두 주자가 1년 뒤에도 그 자리에 있을 보장은 없다. 뉴 리더라는 이름은 성취의 결과물인 동시에 가장 가혹한 변화를 요구받는 ‘붉은 여왕의 게임’ 시작점이다. 결국 살아남는 조건은 단순하다. 변화를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기존의 속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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