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포트 홍콩'
지난달 말 홍콩 카이탁 스타디움에서 열린 K팝 시상식 '2025 마마 어워즈'가 내세운 메시지다. 시상식 시작 직전까지도 개최 여부를 두고 말이 많았다. 대형 화재 참사로 나라가 슬픔에 잠긴 시기였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내려진 결정은 홍콩을 위로하자는 것.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약 1년간 기획하고 준비해 온 시상식을 단 24시간 안에 바꿔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전처럼 떠돌던 '음악의 힘'을 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었다.
쏟아졌던 우려와 달리 무대 위에서는 묵직하지만 힘 있게 '서포트 홍콩' 메시지를 전달했다. 평소와 달리 다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장으로 향한 팬들은 카이탁 스타디움 안에서 끈끈한 연대감과 섬세한 위로를 느끼며 연신 박수를 보냈다. '뮤직 메이크스 원(Music Makes One, 음악으로 하나되는 세계를 만든다)'. 음악은 현장에 모인, 그리고 생중계로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하나로 감싸안았다.

'2025 마마 어워즈'를 연출한 마두식 PD와 이영주 PD를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NM 센터에서 만났다.
마 PD는 '2025 마마 어워즈'의 총연출로 2017년, 2018년, 2024년에 이어 4회째 힘을 쏟았고, 시상식 첫째 날인 챕터 1을 책임졌던 이 PD는 2022년부터 메인 연출로 참여했다.
메인 연출이 아니었던 시기까지 포함하면 무려 10년째 '마마 어워즈'와 함께하고 있지만, 베테랑인 이들에게도 올해는 전에 없던 힘든 상황이었다. 이 PD는 "24시간 안에 조명, 특수효과, 가사, 영상 소스와 대본까지 수정해야 했다. 다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님들은 현장에서 대본을 다시 쓴 정도"라면서 "긴박하게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는데 제작진뿐만 아니라 T&A사업부, 컨벤션사업부, 엔터 관계자분들이 잘 도와주셨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마 PD 역시 "어려운 상황에 다 모여서 회의를 10시간씩 넘게 했다.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하고, 바꿀 걸 바꾸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였다"면서 "그동안은 시상식이 주는 화려함, 경쟁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에는 음악이 가진 본래의 가치에 중점을 뒀다. 화합, 위로, 치유 같은 가치들이 부각된 한해"라고 회상했다.



'화려하고 멋진 연출'은 연말 시상식의 자존심과도 같지만, 모든 것을 내려놨다. 음악이 지닌 더 가치 있는 힘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시·수상자들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위로 및 애도의 말을 건넸고, 의상도 차분한 톤으로 바꿨다. 폭죽·화염과 같은 연출은 전부 사라졌으며, 참사를 연상케 할 수 있는 불 관련 가사도 모두 손을 봤다.
박보검·보이넥스트도어·코르티스·트레저 멤버들이 선보일 예정이었던 '쾌지나 칭칭나네', 라이즈 원빈·투어스 신유·제로베이스원 박건욱·한유진·보이넥스트도어 이한이 꾸미려 했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자보이즈 무대는 아예 진행하지 않았다. 가수들이 관객석으로 내려가서 같이 뛰어노는 연출도 삭제했다.
이 PD는 "제작팀과 작가님들은 50명 정도 된다. T&A 등 유관부서까지 합치면 비표만 1000장이 나갔다. 아티스트까지 더하면 그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마 PD는 "올해는 유독 각 요소가 잘 보였다. 위기의 상황에서 각자의 역할이 더 뾰족하게 잘 돋아났던 것 같다"며 거듭 힘을 모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두 사람은 전체적인 기획 및 제작 단계에서 가장 공들이는 작업이 '메시지 설정'이라고 했다. 당초 올해 콘셉트 슬로건은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추는 순간, 우리 안에 피어오르는 기쁨의 에너지인 '흥'을 핵심 가치로 삼아 '어-흥'으로 정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머리를 맞대고 '서포트 홍콩'이라는 메시지를 더했다.
이 PD는 "시대를 반영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정해야 한다. 가장 큰 노력을 들이는 부분이다. 메시지를 정해야 그에 맞춰서 무대 연출도 디벨롭할 수 있기 때문에 메시지화하는 작업이 고난도의 작업이다. '서포트 홍콩'이라는 메시지는 현장에서 회의해서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현지에서는 '한국팀 최고다', '홍콩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줄 줄 몰랐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 PD는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게 K팝 산업의 좋은 점인 것 같다. 시스템화가 잘 되어 있어서 이겨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마마 어워즈'는 1999년 엠넷 '영상음악대상'으로 시작한 역사 깊은 K팝 시상식이다. 2009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로, 2022년 '마마 어워즈'로 명칭을 변경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글로벌 개최를 통해 K팝의 세계화와 걸음을 같이했다는 평가도 따른다. 2010년 마카오에서 첫 해외 개최를 진행한 데 이어 2023년에는 K팝 시상식 최초로 일본 도쿄돔에서,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열렸다. 홍콩과는 특히 연이 깊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홍콩에서 줄곧 개최했고, 그로부터 7년 만인 올해는 무려 '스타디움 급'으로 규모를 키워 다시 현지 팬들을 찾았다. 7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렸다.
이 PD는 "일본에서 7개 돔을 다 돌았지만, 스타디움에서 개최한다는 건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이었다. 단독 콘서트가 아니라서 걱정하긴 했는데, 티켓 오픈 한 시간 반 만에 매진됐다. 홍콩에 K팝을 사랑하는 분들이 정말 많고, 기다리고 있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올해 문을 연 카이탁 스타디움은 어땠는지 묻자 "너무 좋았다. 스타디움이라서 그에 맞게 다양한 앵글로 촬영할 수 있었다. 비록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다채로운 특수효과도 준비했었다. 스타디움에 대한 도전을 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카이탁 스타디움 측도 라이브 쇼를 생중계로 방송하는 거나, 이렇게 많은 가수가 나오는 옴니버스 공연을 하는 게 처음이라더라. 서로에게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다만 소음 등의 문제로 스타디움 천장을 개방할 수 없었던 컨디션은 아쉬웠다고 했다.
두 PD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차별화'였다고 했다.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이 많아진 가운데, '마마 어워즈'만이 가진 것을 고민했고 그 결과 △메시지를 살린 연출 △하우스 라이브 밴드 도입 △특색 있는 스페셜 무대 등을 고안해냈다.
마 PD는 "메시지 작업을 한 뒤 그걸 어딘가에 심어야 하는데 가장 1차원적으로 보이는 게 무대다. T&A팀과 어떠한 스토리를 풀어야 하는지 논의한다. 올해는 '어-흥'이라는 주제에 맞춰서 호랑이를 형상화한 무대를 만들었다. 시상 게이트는 호랑이 발톱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었고, 아티스트 석은 꼬리의 형태를 유지했다. 남들이 안 하는 거, 혹은 못 하는 것, 자체적으로 데이터는 있지만 실패했던 것들을 하나씩 접목해서 우리만의 무대를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하우스 라이브 밴드는 현장감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치 콘서트에 온 듯한 느낌을 주며 공연 자체의 퀄리티를 높였다. '시상식은 무조건 MR 공연'이라는 편견을 제대로 깨줬다. 마 PD는 "관객 만족도 중심에서 생각하려고 했다. 좋은 기억을 가져가길 바랐다. 하우스 밴드를 써서 귀가 즐겁고 마음이 두근거리게 하고 싶었다. 공연 체험이 하고자 하는 방향이었다"며 미소 지었다.
올해 역시 '마마 어워즈' 표 명장면이 많이 탄생했다. 주윤발·지드래곤의 만남부터 여러 K팝 아티스트들의 특색을 살린 무대가 팬들을 환호하게 했다. 먼저 베이비몬스터 파리타·아현·로라가 부른 '케데헌' OST '골든' 무대와 관련해 마 PD는 "노래에 감동이 있는 거라 춤은 추지 말자고 했다. 기획할 때부터 춤은 없었다. 춤을 안 춰도 노래를 잘하는 분들이라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올데이 프로젝트 타잔이 카메라 유리를 깨부수는 파격적인 연출이 완성되기까지는 "유리공예가가 된 것처럼" 연구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 마 PD는 "유리를 4mm, 3mm로 전부 준비하고, 마이크도 특수제작해서 연습하고 또 했다. 코팅지에 따라서 깨지는 모양도 달라서 그것도 고려했다. 현지에도 여분 유리까지 총 3장을 가져갔다. 전부 단 3초의 장면을 위한 것"이라며 웃었다.


'마마 어워즈'는 오랜 시간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꼽힌다. 무대 위 아티스트를 가장 돋보이게 해주는 탁월한 해석력이 눈에 띈다. 이 PD는 "기획사 측과 대화를 많이 한다. 우리만의 생각을 강요하진 않는다. 기획사 의견을 충분히 듣고 여러 가지 안을 준비해서 맞춰가는 시간이 길다"고 밝혔다.
이어 "담당 PD가 아티스트의 모든 노래를 들으며 공부한다. 멤버별 장점을 분석하고 상세하게 논의하면서 준비한다. 앨범에 들어가 있는 수록곡이 좋은데 그걸 안 보여줬으니 보여주자고도 한다. 이런 게 하나씩 쌓이면서 아이코닉한 장면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 PD는 "팬들도 공부한다. 팬들이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이미 봤던 모습이더라도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수 있을지 연구하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 PD는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많이 하지 않나. 공연의 질이 너무 높아졌다. 우리가 준비한 만큼 그분들이 잘하니까 같이 더 빛나는 거다. 현장에서 압도하는 분위기도 자연스럽다. 연출할 때 신이 난다"고 강조했다.
'꿈의 무대'라는 말은 절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수식어가 아니다. 대상을 받고 펑펑 우는 가수들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이미 세계 무대를 석권한 스트레이 키즈, 엔하이픈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팬들은 물론이고 많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마 PD는 "감사한 일이다. 2018년 스트레이 키즈가 신인상을 받을 때 연출을 했는데 대상 받고 우는 걸 보니까 고마웠다"고 했고, 이 PD는 "엔하이픈이 우는 걸 보는데 나도 울컥하더라"고 털어놨다.
"K팝 트렌드를 앞장서 가고, 팬분들과 소통하는 게 '마마 어워즈'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K팝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다면 세계 어디든 간다는 게 모토죠. 올해는 시상식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뮤직 메이크스 원'에 더 다가가는 게 앞으로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하지 않을까요."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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