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추론용 인공지능(AI) 칩 개발사인 그록에 200억달러(약 29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엔비디아 창립 이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베팅한 최대 규모 외부 투자다.
그록은 24일(현지시간) “추론 기술에 대한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GPU 주요 구매자인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클라우드 플랫폼 사업자가 자체 칩을 개발·적용해 외연을 확장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GPU에 추론 특화 AI칩 더해…구글, AWS 수직계열화 차단
최근 추론용 AI칩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에 맞서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연산·학습에 최적화된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추론에 특화된 그록의 언어처리장치(LPU)를 결합해 구글, AWS 등 대형 클라우드 고객이 자체 AI칩으로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는 흐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와 그록의 이번 거래는 최근 빅테크들이 독과점 이슈를 피하기 위해 애용하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계약의 일환으로 그록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조너선 로스, 서니 마드라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이 엔비디아에 합류할 예정이다. 엔비디아로선 그록의 인재와 기술을 내재화할 수 있고, 이들이 구글 등 잠재적인 경쟁자에 인수되는 일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로스 창업자는 구글 텐서처리장치(TPU) 1세대 수석 아키텍트였다.
엔비디아가 그록을 ‘포섭’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투자 금액만 봐도 알 수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사진)가 최근까지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부은 인수합병(M&A) 거래는 2019년 네트워킹 부품 제조사 멜라녹스에 69억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그록은 지난 9월 삼성카탈리스트펀드, 블랙록, 1789캐피털 등이 참여한 투자 라운드에서 기업 가치를 69억달러(약 10조원)로 평가받았다. 엔비디아는 시장가의 약 세 배를 주고 그록에 베팅한 것이다. 다만 이번 거래 후에도 그록은 사이먼 에드워즈 최고재무책임자(CFO)가 CEO를 맡아 독립 회사로 존속한다. 그록의 클라우드 사업인 ‘그록클라우드’도 이번 거래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TPU는 추론 과정에서 정보량이 많을 때 마치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처럼 그때그때 해결하면서 대규모 데이터 묶음(배치) 처리에 장점이 있다면, 그록의 LPU는 출발 전에 시간표대로 그냥 달리는 전용 고속철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제어 기능을 제거하고 연산 경로를 고정함으로써 지연 편차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AI칩이라는 얘기다.
엔비디아는 최근 클라우드 플랫폼 사업자로 나서기 위한 전략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 주요 고객사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AWS와 정면으로 싸우는 방식에서 일보 후퇴한 것이다. 그 대신에 엔비디아는 GPU에 LPU까지 겸비함으로써 구글 등의 AI칩 확대를 방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과 AWS는 각각 추론용 AI칩인 7세대 TPU 아이언우드, 트레이니엄3 등을 공개하며 엔비디아 첨단 GPU보다 전력 효율성이 높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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