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주식을 팔고 국내 증시로 돌아오는 이른바 ‘유턴개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정부 대책이 나온 후 증권가에서 실효성과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S&P500, 나스닥100 등 해외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데도 미국 시장에 상장된 ETF엔 혜택을 주고 국내 상품은 배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유 자금이 많은 투자자들이 절세 혜택만 누리고, 정부가 당초 목표한 달러 유입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 국내 상장 미국 추종 ETF 제외 논란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내 시장 복귀계좌(RIA)를 통해 양도소득세 감면 조치를 받을 수 있는 투자 상품은 해외 주식과 해외에 상장된 ETF로 한정된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인베스코 QQQ’(나스닥100지수 추종)와 ‘SPY’(S&P500지수 추종)는 혜택을 받지만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이 국내에 상장한 ‘TIGER나스닥100’ ‘KODEX 미국S&P500’ ETF는 감면 대상 상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부는 전날 RIA를 통해 해외 주식을 매도하고 그 돈으로 국내 주식에 1년간 장기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에게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발표했다. 국내 한 운용사 관계자는 “QQQ와 TIGER나스닥100은 나스닥100지수를 추종해 미국 주식에 분산 투자한다는 측면에선 동일한 상품 구조”라며 “해외 자산을 팔아 원화로 환전하는 것은 동일한데 상장된 장소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RIA를 통해 감면하는 세금은 주식 매매에 따른 양도세”라며 “배당소득세로 과세하는 국내 상장 ETF 매매 차익은 과세 과정에 원천징수 자료가 필요해 상품 설계에 시간이 오래 걸려 이번 세제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긴급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내 상장 ETF가 배제됐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해외 상장 ETF는 매매 차익의 22%를 양도세로 물지만, 국내 상장 ETF 매매 차익은 배당소득세로 분류돼 15.4% 세율로 과세한다.

특히 배당소득세는 이자·배당 수익이 연간 2000만원을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에 해당해 최고세율이 49.5%로 올라가 세금 감면 혜택이 더 커질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도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추후 국내 상장 ETF 매도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을 검토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 절세 목적 주식 거래 불 보듯
RIA를 활용한 양도세 감면 제도가 기대한 달러 유입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절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RIA에서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최대한도(5000만원)까지 해외 주식을 판 후 이 자금으로 국내 주식을 매입하면 22%에 달하는 양도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동시에 일반 계좌에서 RIA에서 매입한 국내 보유 주식을 판 후 이 자금으로 해외 주식을 되사면 주식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해외 주식 양도 차익을 세금 납부 없이 실현할 수 있다. 투자자는 이 과정에 발생하는 증권 거래세만 부담하면 된다. 증권사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미국과 국장에 동시에 투자하면서 해외 주식을 판 돈을 1년간 국내 증시에 묶어둘 수 있는 투자자라면 해외 주식 양도 차익을 실현하는 게 무조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정부 관계자는 “해외 주식을 팔고 다시 사는 행위까지 제한하면 지나친 규제가 될 수 있다”며 “정책 취지와 달리 악용될 경우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RIA에서 매도한 해외 주식 자금 중 국내 주식 및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 비율도 증권가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테슬라 주식 1000만원어치를 판 돈으로 삼성전자 1주만 사도 양도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해외 주식을 판 금액의 사실상 전액을 국내 주식 및 펀드에 투자해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환율 하락 시 투자수요 크게 줄어”
매입액의 5%(최대 500만원 한도)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개인 투자자용 선물환 매도 상품’도 역차별 논란이 불거진다. 정부는 증권사가 새로 출시하는 환헤지 상품에만 혜택을 준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 이미 거래되고 있는 헤지형 투자 상품은 세금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기재부 관계자는 “새로운 환헤지 거래를 하면 외환 시장에 달러가 새로 공급되는 효과를 내지만 기존 헤지형 상품은 이런 효과가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업계에선 “기존에 환헤지 비용을 부담해가며 외환 위험을 방어한 투자자들이 사실상 역차별받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권업계에선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2월까지 증권사들이 세제 감면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 법안 논의 과정에서 제도가 바뀔 가능성도 열렸다. 증권가에선 내년 환율이 하락 안정되면 고환율 시점에서 설계한 상품 수요가 크게 줄 수 있다는 걱정도 한다. 정부가 미국 주식 대신 국내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듯한 정책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직 대형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투자 여부는 개인이 판단하는 영역인데 이번 조치는 미국에 투자하면 손해, 한국에 투자하면 이익이 되는 듯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며 “내년 미국 시장이 더 오르고 한국 시장이 하락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말했다.
남정민/정영효/박주연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