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너 경영인을 만날 때마다 상속세 때문에 골머리를 앓더군요. 이러니 사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사진)은 지난 24일 기자와 만나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많은 중소·중견 기업인이 회사를 더 키우기보다 사모펀드(PEF)에 내다 파는 선택을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강 회장은 기아 협력사에 다니다가 2000년 창업해 매출 1조원짜리 그룹을 일군 기업인이다. 오텍그룹은 ‘에어컨 명가’ 캐리어와 냉동·냉방기기 전문기업 CRK, 오티스엘리베이터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여기에 기업 오너는 최대주주 할증이 적용돼 세율이 60%로 뛴다. 중견기업연합회가 지난 3월 “상속세 최고세율을 30%로 내려달라”는 건의문을 기획재정부에 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3년 정체기, 외환위기보다 고통…"기업인 최고"란 말에 감동 안받아
2020년 6월 한국경제신문과 만났을 때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이 남긴 말이다. 대내외 환경이 어둡다는 이유로 기업이 웅크리기 시작하면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삶아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강 회장의 생각은 그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안 그래도 정체된 에어컨 시장에 중국의 저가 공세가 더해지면서 오텍은 최근 3년(2022~2024년) 연속 영업적자를 냈지만, 그는 도전과 혁신을 멈출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 회장은 “주력 사업(가정용 에어컨) 여건이 나빠지자 스마트팜용 히트펌프와 빌딩용 냉난방 시장 등 신사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며 “인공지능(AI) 시대를 기회로 삼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혁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오텍그룹이 올해 3년 적자를 털어내고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냉난방공조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AI 시대에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화하는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기엔 새로운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죠.”
▷어떤 기회를 보고 계십니까.
“빌딩, 스마트팜, 데이터센터의 냉난방 솔루션 시장이죠. 새로운 시스템을 깔면 에너지 비용을 최대 65% 아낄 수 있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오텍의 새 먹거리예요.”
▷삼성, LG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습니다.
“칠러(대형냉방기) 시장의 진입장벽은 항공기 엔진만큼 높습니다. 오텍캐리어는 미국 캐리어 본사와의 협업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국내 대기업과 칠러, 냉방 솔루션 공급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도 열리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보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지으면 함께 가는 거죠. 한국 대기업은 외국계보다 오텍과 일하는 걸 선호합니다.”
▷중국이 냉난방공조도 잘하나요.
“중국 기술력이 높아졌지만 디자인 등 ‘디테일’은 우리가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품질도 10% 정도 격차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냉동공조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데요.
“5년 정도 됐죠. 요즘 회원사들이 가장 많이 요구하는 건 ‘상업용 냉동·냉장기에도 에너지등급제를 도입해달라’는 겁니다. 물류창고나 대형마트에서 냉동기가 24시간 365일 돌아가는데 왜 등급제를 안 하냐는 거죠. 에너지등급제가 시행되면 고효율 제품이 더 많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력발전소 몇 기는 안 지어도 될 겁니다.”
▷전력 소모를 줄여야 하는 AI 시대에 필요한 제도네요.
“AI 시대를 맞아 세상이 바뀌는 건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오텍의 주력 사업인 냉난방공조와 물류 부문에도 AI가 이미 침투했습니다. 단순히 제품뿐만이 아니라 AI를 접목한 솔루션까지 공급할 계획입니다. AI 시대를 오텍의 재도약 기회로 만들 겁니다.”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립니다.
“아마도 오텍에서 가장 혁신에 몸이 단 사람이 저일 겁니다. 얼마 전에는 혁신을 주제로 강연회도 했어요. 오텍의 성장·생존을 위해선 목숨 걸고 혁신해야 합니다.”
▷기업인을 대우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저는 솔직히 ‘기업 하는 사람이 최고’라는 말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실제론 기업인보다 의사를 더 높게 쳐주잖아요.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도 내면서 나라 경제를 살찌우는 건 기업인인데 말이죠. 우리 기업인이 ‘회사를 더 키워야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합니다.”
▷지원이 시급한 분야가 있다면요.
“기업인이 상속세를 신경 쓰지 않게 해줬으면 합니다. 요즘 창업 기업인들을 만나면 상속세 얘기만 합니다. 사업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경영에 집중할 시간을 놓치는 셈이죠.”
▷상속세율이 너무 높은 측면이 있습니다.
“최대 60%를 세금으로 내는 건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기업인들은 ‘상속세 면제’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자연스럽게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기업의 상속은 부의 상속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세습 경영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오너 기업인과 전문 경영인은 다릅니다. 오너 기업인은 장기적 안목으로 회사를 바라보니까요.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아야 미래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오너 경영이 기업의 영속성에 도움이 된다면 직원과 주주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세, 3세 경영인은 안정 추구형이 될 것 같습니다.
“규모를 불문하고 기업 경영은 편안하게 ‘크루즈 컨트롤’로 가는 게 아닙니다.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대형 선박도 큰 파도를 맞으면 휘청입니다. 이때 필요한 게 선장의 책임감과 노하우예요. 모든 걸 온전히 책임지는 오너 경영인이 인수합병(M&A)처럼 회사의 미래가 달린 결정을 더 고민해서 하지 않을까요.”
▷오텍도 M&A를 통해 회사가 성장했죠.
“먼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해야 합니다. 사업을 확장할 때는 연관 사업 분야로 해야 합니다.”
▷기업을 키우면 규제만 늘어난다는 하소연도 나옵니다.
“창업해서 중견 기업이 될 확률은 0.6%입니다. 어렵게 기업 규모를 키우면 이때부터 온갖 규제가 시작됩니다. 그러니 기업이 생존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젊은 기업인들은 ‘재기의 기회’가 없다고 합니다.
“한 번에 성공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수많은 성공 아이디어는 창업과 실패를 반복할 때 나옵니다.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죠. 조금 잘못했다고 악의적으로 대하면 안 됩니다.”
▷회장님도 실패의 두려움을 느끼셨나요.
“저는 성공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아도 항상 ‘망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그칩니다. 짐을 내려놓고 싶어도 직원들 생각에 그럴 수도 없어요.”
▷최근 3년간 힘든 시기를 보내셨죠.
“기업의 요체는 성장인데, 최근 정체됐던 건 사실입니다. 저는 파산한 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을 시작했고, 외환 위기도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그때보다 힘든 것 같아요. 신사업 성과가 조금씩 나오면서 올해는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창업가의 삶을 후회하진 않나요.
“내 모든 걸 쏟아부은 기업이 커나가는 걸 보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일이 없을 겁니다. 창업 때부터 함께한 직원이 지금은 그룹의 중역이 됐죠. 함께 커나간 겁니다. 이런 스토리를 주변에 많이 들려주고 싶습니다.”
■ 강성희 회장은
△1955년 서울 출생
△1973년 동대부고 졸업
△1981년 한양대 사학과 졸업
△1982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료
△1982년 서울차체 입사
△2000년 오텍 설립(대표이사·회장)
△2011년 캐리어에어컨 및 캐리어냉장 인수
△2015년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회장
△2020년 한국냉동공조산업협회 회장
△2024년 대한기계설비단체총연합회 회장
황정수/김채연/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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