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줄을 낀 노인들이 침대에 양팔이 묶인 채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나란히 누워 있다. 아버지가 임종 전 머물던 요양병원 풍경이다.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을까. 디스토피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뜩했다.올해 봄이 채 오기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0년 가까이 착한 치매를 앓긴 했지만 건강한 편이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거동을 못 했다. 치매도 악화했다. 누구라도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고 싶지 않겠지만 살던 집에서 임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모 간병은 대개 딸들의 ‘독박 돌봄’이 되기 쉬운데 우리 집도 그랬다. 여동생에 대한 미안함, 돌봄을 받을 연세에 간병을 도와야 하는 어머니를 향한 걱정이 결국 아버지의 요양원행을 결정하게 했다.
면회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아버지를 달래며 죄스러운 심정이었는데 그 시절이 그나마 행복했다는 것을 뒤에 알았다. 요양병원의 열악한 현실을 본 이후의 일이다. 육아와 닮은점이 많지만 노인 돌봄에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없다는 게 결정적인 차이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연명의료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사전에 의향서를 등록한 노인 대다수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막상 임종기엔 자기 의사와 달리 대부분이 연명의료를 받는다는 게 통계로 입증됐다. 연명의료를 줄여 절감한 비용을 태부족인 호스피스 병상 확충, 간병비 지원 등에 쓰자는 게 보고서의 골자다. 이번에도 ‘본업에나 충실하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생명과 관련한 예민한 문제까지 끄집어내 공론화하려는 시도는 나름 의미 있다.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기 훨씬 전 단계부터 당사자와 가족은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임종기 이전의 돌봄 상황이 열악하다면 ‘좋은 죽음’을 논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 없는 일이다. 이 단계에 투입되는 장기요양보험 지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5년 뒤에는 고갈이 예상된다. 그래도 우리의 노인 돌봄 시스템이 여전히 아쉬운 건 사실이다. ‘노인 대국’ 일본은 재택의료를 택하면 주 1회 의사의 방문 진료, 하루 최대 세 번 간호사가 찾아오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밤중에 요청해도 간호사가 달려와 준다고 한다. 거동이 힘든 부모를 집에서 모시는 사람에겐 꿈같은 얘기다. 그런 일본도 노인 돌봄이 위기에 직면했다. 요양업계의 인력 부족과 재정난 탓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호보험’(한국의 장기요양보험)의 본인 부담률을 10%에서 20%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료를 내는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노인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른 한국에도 눈앞에 닥친 문제들이다.
최근엔 20년간 모시고 산 장인이 거의 거동을 못 하신다. 돌봄이 매일 겪어야 할 현실이 됐다. 노인 두 분을 두고 출근하는 아내의 발걸음이 힘겨워 보인다. 몇 주 만에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이런 집이 적지 않을 것이다.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 한국이다. 15년 뒤엔 10명 중 4명이 될 전망이다. 노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국민의 행복도가 올라갈 수 없는 인구 구조다. 하지만 한국의 노인이 행복해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건강수명(65.8세)과 기대수명(82.7세)의 격차도 크다. 인생 막바지 17년을 병마에 시달려야 한다는 얘기다. 노인 돌봄 시스템도 아직은 2% 부족한 게 사실이고 이를 끌어올리려면 상당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탈모도 ‘생존의 문제’라는 마당에 노인 돌봄 문제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이라는 관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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