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경기 침체와 고금리 장기화의 충격을 저신용자들이 집중적으로 받은 영향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저신용 차주라도 바로 위 단계(신용점수 400~499점)에서는 채무 불이행자가 3716명에서 346명으로 급감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출을 갚지 않고 드러눕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진 결과”라는 금융권 분석이 일 리 있다.
정부는 지난 10월부터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 또는 채무 조정하는 배드뱅크(새도약기금) 정책을 시행 중이다. 현재까지 7조7000억원의 연체 채권을 사들였고 약 60만 명이 혜택을 받았다. 9월엔 금융위원회가 역대 최대 규모인 370만 명의 연체 이력을 지워주는 ‘신용사면’에 나섰다. 이런 정책들이 발표될 때마다 우려했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빚의 굴레를 벗겨주고 신용 불량의 낙인을 지워주겠다는 선의에서 나온 정책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연체를 부추기고 열심히 빚을 갚은 사람들만 바보로 만들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신용 시스템을 뒤흔든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럽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가난한 이에게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기존 신용 시스템을 ‘금융계급제’라고 비판한 이후 저신용자가 신용도가 높은 사람보다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고의로 대출을 갚지 않아 신용점수를 낮추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은행들은 대출을 죄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최저신용자들의 대출은 늘렸다. 이런 구조라면 금융시장을 왜곡하는 포퓰리즘 정책의 피해자는 결국 성실한 금융소비자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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