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종종 멀고 어렵게 느껴진다. 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고, 작가의 의도나 미학 용어를 이해해야 감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걷다가 예술>은 그 편견을 가볍게 비튼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예술은 내 일상 속에 있다.”이 책은 저자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로 있던 2022년 7월부터 2024년 1월까지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와 한경닷컴에 연재한 동명의 칼럼을 엮었다. 그의 시선은 특별한 전시나 유명 미술관보다 ‘지나쳤던 거리의 풍경’에 머문다. 서울 시청역과 광화문 일대를 걷다 보면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흥국생명 빌딩 앞 22m 높이의 거대한 조각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 프레스센터 앞 네 장의 철판과 돌이 이루는 이우환의 ‘관계항’, 해 질 녘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수놓는 레오 빌라리얼의 미디어아트 ‘인피니트 블룸’. 저자는 독자의 손을 잡듯 풍경을 함께 걷는다. 그렇게 평범했던 길은 돌연 ‘전시장’으로 다시 보이고, 스쳐 지나간 공간은 작품의 제자리로 돌아온다.
책은 서울 도심과 백화점 로비, 지하철역 근린공원, 옥상정원, 아울렛 입구, 심지어 햄버거 가게 앞 등 우리가 하루 동안 몇 번이고 스치지만 주목하지 않던 장소에서 발견한 ‘예술’을 기록한다. ‘예술을 볼 여유가 없다’는 변명 앞에서 책은 조용히 말한다. “예술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필요하다.”
기자가 직접 ‘걷고, 보고, 느낀’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현장성을 지닌다. 2022년 ‘프리즈 서울’이 처음 개최된 이후 그는 세계적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고, 그 목소리를 글 속에 생생히 담았다. 제프 쿤스, 쿠마 켄고, 플로렌타인 호프만, 레픽 아나돌…. 저자가 두 발로 찾아가 듣고 적은 예술가들의 말은 전시 소개를 넘어 예술가가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까지 보여준다. 관람객이 ‘풍선 개’를 깨뜨리자 “내 의도대로 됐다”고 말한 제프 쿤스, “인공지능(AI) 작품은 비인간 속에서 인간성을 찾는 일”이라 답한 레픽 아나돌의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예술은 가격이나 논쟁 이전에 태도와 진정성의 문제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책 후반부에는 예술가들의 생과 상처, 그리고 그것을 예술로 치환한 과정이 등장한다. 환각의 점무늬를 작품으로 승화한 쿠사마 야요이, 난독증으로 학업이 어려웠지만 결국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나 뒤늦게 세계적 작가가 된 루이즈 부르주아. 저자는 이들의 삶을 따라가며 예술은 곧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책은 독자를 거창한 미술 지식으로 무장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 소박한 연습을 제안한다. 걷다가 멈추고, 한 번 더 바라보기.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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