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들이 사고 싶어 하는 럭셔리 2인승 항공기를 만들자.”
류태규 에어빌리티 대표(사진)가 민간 항공 시장에 뛰어든 출발점이다.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KT-1, T-50 등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기 개발을 주도했다. 전투기 개발로 축적한 기술과 경험을 군수 분야에만 묶어두지 않고, 민간 영역으로 확장해보기로 결심했다.
류 대표가 선택한 파트너는 현대자동차에서 제네시스 디자인을 총괄한 이재현 최고제품책임자(CPO). 성능 중심의 항공기 개발 경험과 감성·디자인을 중시하는 자동차산업의 노하우를 결합해 단순히 잘 나는 항공기가 아니라 ‘갖고 싶은’ 럭셔리 2인승 항공기를 제작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렇게 해서 2023년 11월 에어빌리티가 출범했다.
이들이 개발 중인 수직이착륙기(eVTOL)는 비행 방식부터 다르다. 이륙 단계에서는 드론처럼 수직으로 떠오르고, 목표 고도에 도달하면 프로펠러가 앞으로 눕혀져 비행기처럼 순항 모드로 전환된다. 유선형 디자인과 감성적 요소를 결합해 ‘하늘의 제네시스’를 만들겠다는 것이 에어빌리티의 철학이다.
▷비행기가 예술 작품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부터 럭셔리 교통수단을 타깃으로 삼았어요. 서울 강남에서 제주까지 당일 골프 여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2시간 비행 성능을 갖춘 제품을 목표로 했죠.”
▷ADD 출신으로서 색다른 도전인데요.
“항공기 제작 자체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다만 외관은 전혀 다른 문제더군요. 참고할 레퍼런스도 거의 없었고, 기술뿐 아니라 시장과 사용자, 디자인을 함께 이해하는 역량이 필요했습니다. 현대차에서 제네시스 외장 디자인을 담당했던 디자이너와 함께 창업한 이유입니다.”
▷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원칙이 분명했어요. 비행 성능에 직결되는 날개 크기와 배치 같은 핵심 사양을 제외하고, 성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디자이너의 판단을 존중했습니다. 공학자가 형상을 만들고 디자이너가 다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고, 제비 꼬리 형태처럼 미적 완성도가 높은 요소들도 자연스럽게 반영할 수 있었죠.”
▷방향성이 중요했겠군요.
“창업을 결심할 때부터 ‘왜 이 항공기를 만드는지’에 대한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잘 나는 항공기를 만드는 데서 끝난다면 기존 기업들과 다를 바 없다고 봤습니다.”
▷시장 전망은 어떤가요.
“미국, 중동, 유럽엔 이미 개인용 항공기 시장이 형성돼 있습니다. 매년 미국 위스콘신에서 열리는 ‘에어벤처 오시코시’에는 1만5000대가 넘는 개인용 항공기가 모이죠.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개인용 항공기 시장은 현재 약 11조원 규모로, 2028년에는 2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늦깎이로 창업에 도전했는데요.
“30년 넘게 항공기를 개발하며 사람, 기술, 설비가 다 있는데 왜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 조직의 한계를 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항공 분야에서 20~30년씩 일한 인력들이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경력을 충분히 쌓은 뒤 창업하는 것이 답일까요.
“오히려 20~30대 때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시기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자산입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실패가 두려워지고, 감당해야 할 책임도 커지는 것 같아요.”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보나요.
“요즘은 인터넷만 찾아봐도 기술 자료와 사업계획, 해외 성공 사례까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정부 지원도 초기 자금부터 기술개발, 실증사업까지 잘 갖춰져 있어요. 예전보다 훨씬 낮은 리스크로 시작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우주·항공 분야에서 창업 유망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우주·항공이라고 하면 발사체나 위성 제작에 관심이 쏠리지만, 이런 분야는 정책 영향이 크고 민간 스타트업이 진입하기 쉽지 않아요. 앞으로는 소프트웨어, 데이터, 우주·항공 플랫폼을 연결하는 응용 분야가 더 빠르게 성장할 겁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산업 간 경계가 흐려진 만큼 새로운 기회도 많아질 거고요.”
▷해외는 어떤가요.
“미국은 변화 속도가 특히 빠릅니다. 예전에는 보잉이나 록히드마틴 같은 대기업 중심이었지만, 요즘은 민간 스타트업 기술을 빠르게 군과 산업에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합니다.”
▷우주·항공 스타트업의 길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우주·항공은 단일 기술로 되는 산업이 아니에요. 기계, 전기, AI,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영역이죠. 기성세대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기술 문법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감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창업을 고민하는 공학도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지금은 경험보다 모험심이 더 중요한 시대예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면 미루지 말고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는 충분합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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