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불모지나 다름없던 경기 가평군에 ‘구원투수’가 등판했다. 주인공은 올해 75세인 베테랑 의사, 최낙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사진)다. 가평군은 2022년 5월 군내 유일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경영난으로 폐원해 3년 넘게 소아 의료 공백이 발생했다. 그동안 주민들은 자녀가 감기만 걸려도 40분 넘게 남양주나 강원 춘천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야 했다.29일 가평군보건소에서 만난 최 전문의는 “치료를 넘어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에서 35년간 개업의로 환자들을 진료하다 올해 1월 은퇴했다. 이후 국립중앙의료원 시니어의사 지원센터를 통해 가평군보건소와 인연을 맺었다.
가평은 최 전문의가 공공의료의 의미를 처음 체감한 곳이다. 그는 “50여 년 전 청평면 군 병원에서 위생병으로 복무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며 “다시 가평에서 진료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최 전문의는 특히 소아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잘 아는 의사다. 그는 1982년 미국 전공의 수련 과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인 ‘ECFMG’ 인증을 취득한 뒤 뉴욕주 보건소 등에서 공공의료 현장을 경험하며 임상 역량을 쌓았다. 은퇴 이후에도 서울의 한 교회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최 전문의는 소아 진료는 특히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과는 만성 질환이 많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소아과는 예측하기 어려운 급성 질환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아이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성인 진료에서는 빈혈 등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소아과 의사는 모야모야병 같은 뇌혈관 질환을 우선 의심해야 한다”며 “지역 내에서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소아 진료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가평군보건소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채용은 의사 확보에 난항을 겪는 인근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보건소는 의사가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미리 조성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장우진 보건소장은 “최 전문의 채용을 위해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은 소아청소년과 진료 장비”라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문진이나 시진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중이염 등 염증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진단 장비를 중요하게 본다는 설명이다. 이에 가평군은 이비인후과 내시경(ENT) 장비를 비롯해 호흡기 치료 장비 등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장비 도입과 시설 개선에 투입한 예산만 2000만원이 넘는다.
가평군의 적극적인 지원과 은퇴 의사의 합류로 의료 취약지인 가평에서 소아 진료가 다시 시작됐다. 아직 시범 운영 단계임에도 지난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두 달 만에 진료와 예방접종 예진 등 누적 이용 건수는 395건(12월 22일 기준)에 달했다.
보건소에서 만난 40대 직장인 최혜미 씨는 “그동안 군내 병원에서는 소아 약 처방이 어렵다거나 다른 지역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이제는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감이 든다”고 말했다. 최 전문의는 “환자 부모가 먼 타지를 헤매지 않고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아이들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가평=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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