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해외 주식·채권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선 시점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해외 자산 규모가 커지자 2007년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환헤지 전략을 처음 도입했다. 당시 해외 채권은 100%, 해외 주식은 50%의 헤지 비율을 설정하고, 이를 2010년까지 달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이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외환과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선물환, 스와프 계약 같은 환헤지 비용이 급증했다. 환율 변동이 심해지자 헤지 비율을 목표치에 맞추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환헤지 실효성에 의문이 커졌다.결국 국민연금은 2009년 해외 주식 환헤지 비율을 50%에서 0%로 대폭 조정했다. 해외 주식은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것이 수익률에 더 긍정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점차 그 효용성을 인정받았다. 해외 주식 투자 시기를 분산하고 장기 보유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환헤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얻은 국민연금은 2015년 해외 채권도 헤지하지 않기로 결정해 해외 자산 전체를 환율 변동에 노출하는 구조로 전환했다. 개별 자산별 환헤지를 완전히 포기한 셈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넘으며 급등하자 정부는 직접 개입에 나서 환율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학개미의 투자를 줄이기 위해 증권사에 마케팅 중단을 요청하더니, 해외 주식을 팔아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 양도소득세를 1년간 비과세하는 당근책까지 제시했다. 기업에도 강온 양면 전략으로 달러 환전을 유도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도 동원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15일 전략적 환헤지 기간을 내년 말까지로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전략적 환헤지는 환율 급변 시 자산의 최대 10%(전술적 판단 포함 때 15%)까지 헤지할 수 있도록 2022년 도입됐으며, 연 단위로 연장돼 왔다. 계엄 사태 여파로 환율이 급등한 올해 초 처음 발동됐고, 최근 고환율 상황에서 또다시 가동됐다.
이런 조치 덕분에 연말 원·달러 환율이 크게 하락했지만, 구조적인 고환율 추세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보건복지부 등은 10년 전 중단한 국민연금의 상시적 환헤지 재개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국민연금은 지난 9월 말 기준 전체 자산 1361조원의 44.4%인 약 605조원을 해외 주식(508조원)과 해외 채권(97조원)에 투자하고 있다. 만약 과거처럼 주식 50%, 채권 100%의 상시적 환헤지를 적용한다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4300억달러(약 621조원)의 절반이 넘는 351조원 규모의 달러 공급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외환시장 안정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국민 노후자금의 근본적인 안정성까지 흔들리게 해서는 곤란하다. ‘자연 헤지’는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최선의 전략이다. 환율이 극단적으로 치우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균 수준으로 되돌아간다는 ‘환율 평균회귀’ 이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초장기 투자자인 국민연금에 지금의 고환율은 스쳐 가는 일시적 문제에 불과할 수 있다. 상시적 환헤지 재개는 연간 수조원에 달하는 추가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국민연금 수익률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한 나라 경제의 펀더멘털을 나타내는 환율 방어의 근본 처방은 규제 완화와 구조 개선을 통한 성장동력 제고다.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 변경은 여러 의견을 청취한 뒤 무엇보다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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