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 우승 당시만 해도 노승희의 이름 앞에는 ‘깜짝 우승’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프로 데뷔 5년 만의 첫 승, ‘인텔리 코스’로 꼽히는 국가대표나 상비군을 지내지도, 이전까지 큰 두각을 드러내지도 않았던 선수기 때문이다.하지만 노승희는 석 달 만에 두 번째 우승을 거두며 ‘깜짝’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냈고, 올해는 우승에 8번의 톱3를 더하며 톱랭커로 우뚝 섰다.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상금랭킹 2위로 날아오른 노승희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제가 꿈꾸던 모습의 120% 이상을 달성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노승희는 장타를 앞세운 화려한 플레이어는 아니다. 하지만 정확한 샷으로 ‘또박또박’ 코스를 공략해 거의 모든 대회에서 최종 라운드마다 리더보드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걱정이 컸다”고 털어놨다. “우승하고 나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골프도 너무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골프는 늘 그렇듯 다시 1번홀 이븐에서 시작하는 경기더라고요.” 그는 동계훈련 내내 하나만 생각했다고 한다. “다시 처음부터 준비하자.” 그리고 노승희는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2023년까지만 해도 노승희는 매 시즌 상금랭킹 40~50위 선으로 무난하게 시드를 유지하는 평범한 선수였다. 그런데 그해 9월 KG레이디스오픈에서의 우승 경쟁과 준우승은 노승희를 각성하게 했다. “더 높은 곳을 노려보고 싶어졌어요. 그해 겨울,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우승자들을 살펴보니 톱10 경험이 많고 그린 적중률이 높았다고 했다. “그린 적중에 자신 있어야 코스 공략도 공격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린 주변 어프로치와 아이언샷을 집중적으로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맞은 2024년 노승희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이전까지 68% 선이던 그린 적중률이 75% 안팎으로 올라가며 톱10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고, 6월 드디어 생애 첫 승을 거뒀다. 올해도 노승희는 페어웨이 안착률 3위(80.65%), 그린 적중률 23위(74.43%)를 차지했다.
올해 초반에는 다소 난조를 겪었다. 세계랭킹 상위권자로 출전 자격을 얻은 6월 US여자오픈을 가는 것이 맞을지 고민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의 계기를 얻었다. 그는 “완벽한 연습 환경, 코스 컨디션에 그저 행복했다”며 “비거리를 보완하기 위해 5번 우드를 새로 만들어 갔는데 샷도 잘 맞고 즐겁게 도전하고 돌아왔다”고 돌아봤다.
돌아오자마자 노승희는 한국여자오픈에서 단독 4위를 차지한 데 이어 더헤븐마스터스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가장 전장이 길다는 US오픈에서 멀리 치는 것보다 똑똑하게 플레이하는 게 중요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덕분”이라며 미소 지었다.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은 그에게 한 번 더 도약할 가르침을 준 대회였다고 한다. 1타 차 선두를 달리던 최종 라운드 9번홀(파4), 온그린을 노린 두 번째 샷에서 섕크를 냈다. 노승희는 “골프를 시작한 뒤 처음 낸 섕크”라며 웃었다. “1타 차 선두인 것을 보고 ‘우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자마자 그런 실수를 했어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그 샷만 생각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내년 시즌을 앞둔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이던 노승희는 파마리서치 ‘리쥬란 골프단’의 간판 스타로 스카우트됐다. 노승희는 “100m 안쪽 아이언샷에서는 ‘노승희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며 “내년에는 다승왕이 목표”라고 다부지게 밝혔다. “시즌 개막전 우승을 시작으로 최대한 많은 트로피를 따내고 싶어요. 또박또박, 하지만 전략적인 공략으로 지루하지 않은 플레이를 선물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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