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산업통상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3분 기준 올해 연간 누적 수출액이 7000억달러를 넘어섰다. 2018년 6000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7년 만이다. 연간 수출 7000억달러를 넘긴 국가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한국이 여섯 번째다.

올해 초만 해도 미국발 관세 충격과 보호무역 확산,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수출 여건이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실제로 상반기 수출은 감소세를 보였다. 하반기 들어 대미 관세 협상 타결 등 통상 불확실성이 낮아지며 분위기가 반전했다. 지난 6월부터 6개월 연속 해당 월 기준 역대 최고 수출 실적을 경신했다.
수출 증가세는 반도체가 견인했다. 11월까지 전년 대비 19.8% 증가한 1526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자동차(660억달러·2.0%), 선박(290억달러·28.6%), 바이오(147억달러·6.5%) 등도 견조한 성장을 이어갔다. 식품,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인 허정 서강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성과”라며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연합(EU), 아세안 등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한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관세 충격에도 주력산업 '굳건'…K웨이브에 식품·화장품도 강세
올해 초만 해도 한국 수출은 비관적 전망이 줄을 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무역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서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건 주요 기업의 경쟁력과 기민한 시장 다변화 전략 덕분이었다는 게 정부 관계자 및 통상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AI 데이터센터 특수’는 한국에 큰 행운이었다. 지난 11월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AI 서버 수요 폭증에 힘입어 1526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수출액인 1419억달러를 넘어섰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8%에 달했다.
작년 수출을 이끈 자동차산업은 미국의 품목관세 부과(최고 25%)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국내 기업들은 유연한 시장 다변화로 대응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하이브리드카와 소형 전기차 라인업을 강화해 유럽을 공략했고, 신차 수출이 막힌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는 우회 경로를 통한 중고차 수출로 실적을 끌어올렸다.
화장품과 농수산식품 등 이른바 ‘K라이프스타일’ 품목도 수출 효자였다. K화장품은 올해 수출 100억달러(1~11월·104억달러)를 돌파했다.
수출 시장 다변화로 특정국 의존도가 낮아졌다. 2018년 26.8%에 달하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올해 18.4%로 하락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 비중 역시 17.3%(1~10월 기준)로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이 빈자리는 비중이 높아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17.2%), 유럽연합(EU·10.0%), 중남미(4.5%) 등이 메웠다. 인도 수출은 역대 최대 수출액을 경신(11월까지 175억달러)하며 ‘포스트 차이나’의 핵심 시장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미 투자 이후 국내 제조업 공동화도 문제다. 투자 시점엔 중간재 수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지만 국내 기업이 현지 생산을 늘릴수록 국내 수출 실적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직접투자액(FDI)은 350억달러(신고 기준)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배후 수요가 증가하고 정부의 유치 노력이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탄탄한 공급망’과 ‘예측 가능한 규제’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약속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7000억달러 수출 실적을 유지하려면 기업과 정부가 합심해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반도체와 자동차를 잇는 새 고부가가치 수출 품목을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공장을 최고 제품 생산 기지로 남기는 ‘마더 팩토리’ 전략이 필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은/김대훈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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