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수도권으로 떠나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도시의 활력이 죽어간다. '죽은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화려한 외양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 해양 수도라는 타이틀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시 내부의 건강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부산의 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나는 '즐거운 지속가능성(Hedonistic Sustainability)'을 추구하는 건축가로서, 부산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부산형 자연 친화적 지속 가능 도시' 전략에서 찾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 인프라 구축을 넘어, 부산의 고유한 자연과 문화, 경제, 사회 전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래 도시 모델을 의미한다.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올리는 엄숙함과 강박에서 벗어나, 도시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풍요로움이 자연스럽게 지속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그것이 진짜 지속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도시 설계가 있다.
부산형 지속 가능 도시 전략 1: 블루-그린 네트워크
부산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 306km 해안선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절되어 있다. 해운대, 광안리, 송도, 다대포가 각자 따로 놀고 연결되지 않는다. 산도 마찬가지다. 금정산, 백양산, 황령산이 각자 고립돼 있고 생태 통로가 없다. 도시 중심은 콘크리트로 서면, 남포동, 부산역에 녹지가 부족하다. 이것을 연결해야 한다. '블루-그린 네트워크(Blue-Green Network)'.
블루(Blue)는 바다와 강이다. 부산의 해안선, 수영강, 온천천. 그린(Green)은 산과 공원이다. 금정산, 백양산, 시민공원, 용두산공원. 이 둘을 연결하여 해안에서 도심으로, 도심에서 산으로 생명의 통로를 만든다. 싱가포르의 Park Connector를 기억하는가. 모든 공원을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로 연결해 총길이 300km 이상으로 만들었고, 사람도 생물도 함께 이동한다. 부산도 할 수 있다. 아니, 부산이 더 유리하다. 왜? 해안선이 있으니까.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을 만든다. 해운대에서 광안리까지, 광안리에서 남천동, 이기대, 송도, 다대포까지 306km 전체를 걸을 수 있게. 지금도 일부 구간은 있지만 단절돼 있다. 도로가 가로막고 항만이 가로막는다.

북극항로 개발은 부산을 새로운 국제 물류 허브로 만들 기회다. 이 기회를 통해 해양 자산 활용을 극대화하고, 과거 단절됐던 항만 배후 부지와 구도심을 적극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프랑스 마르세유 '유로메디테라네(Euromediterranee)' 프로젝트는 쇠퇴한 항구 도시가 어떻게 부활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유로메디테라네는 구항에 머물던 도시 중심을 해안선을 따라 확장하며 단절된 구도심과 신규 개발 구역을 연결했다. 상징적인 공공 건축물과 현대적인 상업 단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도시 전체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부산 또한 항만 기능 재편과 유휴 부지 활용을 통해 구도심과 신규 거점들을 블루-그린 네트워크로 묶어낸다면, 북극항로 시대 국제 해양 수도의 비전을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산으로 이어지는 길도 만든다. 수영강과 온천천을 활용해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를 만들고, 그 길을 금정산, 백양산까지 연결한다. 생태 다리(Eco-Bridge)를 만들어 산과 산을 연결해 녹지 축(Green Axis)으로 이으면 생물 다양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블루-그린 네트워크'다. 바다-강-도심-산이 하나로 연결되고, 시민들이 어디에 살든 15분 안에 자연을 만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부산형 지속 가능 도시 전략 2: 산지를 품다
부산의 산복도로를 아는가. 비탈진 언덕에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 좁은 골목길, 계단, 가파른 경사. 오랫동안 난개발의 상징이었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하지만 시각을 바꿔보자. 산복도로는 부산의 독특한 자산이다. 산지가 바다와 만나는 곳, 지형의 고저 차가 만드는 풍경, 집마다 다른 조망, 계단을 오르면 펼쳐지는 바다. 이것이 부산만의 지속 가능 가치이자 자산이다.
부산은 싱가포르보다 훨씬 역동적인 지형을 가졌다. 바로 이 역동성을 도시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작년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작업으로 추진된 '영도 콜렉티브 하우스'가 좋은 예다. 저층 관광 숙박시설과 다용도 공간이 결합한 프로젝트로, 산지 경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지역 경제 활성화와 새로운 주거 유형을 제시했다. 핵심은 '지형을 따른다'는 것이다. 평평하게 깎지 않고 경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위에 건물을 앉힌다. 산복도로 전체가 수직 정원이 되는 것을 상상해보라. 옥상 정원과 계단식으로 이어지는 녹지는 산을 타고 흐르는 초록 물결을 만들고, 자생 식물과 함께 새와 벌이 어우러지는 생태계가 작동할 것이다. 이것이 '산지를 품는 자연 친화적 도시 설계'의 핵심이다. 획일적인 아파트 대신 지형의 흐름을 따르는 다채로운 형태의 주거 공간을 만들고, 지역 커뮤니티와 관광 산업이 조화롭게 발전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산복도로가 부산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어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골목을 걸으며 옥상 정원을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는 미래를 그려본다.

지속 가능한 부산의 시작
해양수산부 이전은 부산이 국제 해양 수도로서 새로운 미래를 그릴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이 기회가 단순히 구호로 그치지 않고 도시의 활력을 되찾는 실질적인 동력이 되려면, 부산의 고유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부산형 지속 가능한 도시' 전략이 필수적이다. '즐거운 지속가능성'이라는 철학 아래, 부산만의 강점을 살린 공간 혁신을 통해 청년이 돌아오고, 일자리가 넘쳐나며,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국제도시 부산을 설계해야 할 때다. 바다와 산, 그리고 도시가 어우러진 지속 가능한 부산이야말로 'Busan is truly good!'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외침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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