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50 세대가 이 책을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침마당', '인간극장', 라디오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 등 30년 넘는 긴 세월 우리 곁에 머물러온 방송인 이금희. 단정한 말씨와 친근한 목소리의 그가 이번엔 말과 마음을 주제로 한 책 두 권을 나란히 펴냈다. 어른을 위한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 어린이를 위한 책 <모두 행복해지는 말>이다.
<공감에 관하여>는 특히 20·30 세대와 함께 일하는 40·50 세대에게 건네는 책이다. 그는 숙명여대에서 22년 6개월간 강의를 하며 1500여 명의 학생들과 1:1 티타임을 나누었고, 그 세대가 겪는 불안·고립·두려움을 가장 가까이서 들었다. 기업·공공기관 등 강연장에서는 반대로 "요즘 MZ가 너무 어렵다"는 4050의 탄식이 반복됐다. 그 간극을 잇기 위해, 그는 다시 2030을 인터뷰하며 서로가 닿지 않는 이유를 물었고, 세대가 서로 덜 다치고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책으로 정리했다.
또 다른 신간 <모두 행복해지는 말>은 아이들의 짧은 한마디 속에서 발견한 다정함을 기록한 첫 어린이책이다. 아이의 말 한 줄이 어른의 마음을 위로하고, 말의 온도가 하루를 바꾸는 장면들을 서른 편의 이야기로 엮었다. 푸근하고 다정한 그의 이미지와 닮은 책이다.
이금희를 만나 공감과 말, 세대의 간극, 책을 화두 삼아 이야기를 나눠봤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책을 두 권이나 같은 시기에 내셨어요.
"책 홍보하러 부지런히 다니고 있어요.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 어린이책 <모두 행복해지는 말>이 거의 동시에 나왔거든요. 사실 두 책 제안을 비슷한 시기에 받았는데, 제가 두 권을 동시에 쓰게 될 줄은 몰랐죠. 특히 어린이책은 처음이라 '일단 만나서 이야기만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출판사 분을 뵀어요.
그 자리에서 요즘 아이들이 코로나19 이후 소통에 익숙하지 않고,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말하기 습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변 아나운서들의 아이들을 떠올려보니, 엄마·아빠와 늘 말을 주고받아서인지 말이 유난히 예쁘고 섬세하더라고요. 또 라디오 진행할 때 청취자들이 아이들과의 일상을 보내온 사연들도 떠올랐고요. 그래서 '그럼 제가 이런 장면들을 동화처럼 풀어보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고, 그렇게 어린이책을 쓰게 됐습니다."
▶ 어린이책은 써보니 어떠셨나요.
"동화라기보다 '어린이를 위한 에세이'에 가깝다는 말이 맞겠더라고요. 일상의 작은 장면과 말하기 습관을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엮은 에피소드 모음이에요. 저도 이런 글은 처음인데, 올해 1월부터 쓰기 시작해 4월쯤 30편 정도를 완성했어요. 분량이 짧으니까 쓰는 속도는 빨랐지만, 어린이와 부모들이 읽으면 어떨지 감이 안 와서 '수정이 많이 나오겠구나' 했거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그대로 가자고 하셨어요. 이후 그림 작가님 작업이 이어졌고, 그 과정을 거쳐 11월 17일 책이 나왔습니다."
▶ <모두 행복해지는 말>은 '어린이 말하기 교양서'라고 소개되더군요. 다정한 말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책이라고도 하셨는데요.
"책이 나온 뒤 독자 반응을 찾아보니 '우리 아이도 어릴 때 이런 말을 했어요' '아이와 함께 읽으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는 댓글이 많았어요.
원고를 지인들에게 먼저 보여줬을 때도 대부분 '읽다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린이들의 말이 낯설 만큼 순수해서 오히려 위로된다는 거죠. 어린 시절엔 '엄마 사랑해요', '선생님 좋아요'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하잖아요. 그런데 자라면서 그런 말들을 점점 아끼거나 잊게 되죠. 저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 가졌던 따뜻한 마음과 말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삼촌이 오랜만에 할머니 댁에 갔다가 다섯 살 조카에게 '삼촌, 밥은 먹고 다녀야지. 천천히 먹어'라는 말을 들은 사연이 있어요. 늘 할머니가 하던 잔소리를 아이가 대신 건넨 거죠. 바쁘단 이유로 한동안 찾아가지 못한 뒤 영상통화를 했는데도 조카가 그대로 그 말을 해줬대요. 삼촌이 그 순간에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장면, 어린아이의 짧은 말 한마디가 마음을 다독이는 순간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 같은 시기에 어른을 위한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도 쓰셨습니다. 왜 '공감'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2022년에 소통에 관한 책 <우리, 편하게 말해요>를 냈고, 그 무렵 숙명여대 겸임교수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외부 강연을 많이 다니게 됐어요. 기업이나 지자체에서 만난 담당자분들이 대부분 40~50대였는데, 강연 뒤에 함께 식사하거나 대화를 나누면 거의 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2030이 너무 어렵다',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괜히 꼰대가 될까 걱정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20년 넘게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강의 후 1:1 티타임으로 속 이야기를 들으며 그 세대가 얼마나 불안하고 두렵고 외로운지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거든요.
4050과 2030 사이의 간극을 중간에서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공감에 관하여>의 출발점이었어요."
▶ 40·50 세대의 '요즘 2030을 모르겠다'는 고민이 집필의 출발점이었다고 하셨습니다. 20·30 세대 48명을 인터뷰하셨는데, 어떤 걸 물어보셨고, 어떤 말을 많이 들으셨나요?
"처음부터 이 책을 제 생각으로만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2030의 생생한 목소리를 반드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총 48명을 인터뷰했습니다. 학교 제자들을 비롯해 편집자 지인, 제 조카와 그 친구들, 함께 일하는 작가들의 지인 등을 소개받아 메일·전화·대면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었어요.
질문은 크게 '일·가족·지인 등 주변 4050과 관계에서 겪었던 일', '그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 '그 상황에서 어떤 말이 도움이 되었을지' 등이었어요. 회사, 가족, 아르바이트 경험도 좋다고 했고, 갑질·의사소통·칭찬·거절 표현 같은 상황별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답변은 정말 제각각이었어요. 어떤 분은 '선배·사수·멘토가 다 좋은 분이라 갈등이 없다'고 했고, 그래서 본인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반대로 힘든 경험을 털어놓은 분들도 많았고요. 하나의 결론으로 모이기보다, 세대와 환경에 따라 다 다른 목소리가 쌓여 간 느낌이에요. 오히려 그 다양성이 책을 쓰는 데 큰 힘이 됐어요."
▶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을까요?
"우선은 4050 관리자급이 꼭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조직 안에서 2030과 함께 일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요즘 세대는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회식 문화만 봐도 세대별 감각이 다르죠. 저희 때는 회식이 '모처럼 고기 먹는 날'이었지만, 지금은 굳이 모여서 먹을 이유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 차이를 알아야 서로 덜 힘들어집니다.
그다음은 2030이에요. 결국 그들도 사회 초년생 때는 4050과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두 세대가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특히 4050에게 더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우리가 2030이었던 적은 있지만 2030은 아직 4050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이해의 폭은 윗세대가 조금 더 넓게 가져야, 결국 본인도 편해져요.
물론 지금 4050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저는 잘 알아요. IMF 외환위기로 고용 불안, 경기 침체를 온몸으로 겪었고, 부모 봉양과 자녀 교육비를 동시에 책임지는 '샌드위치 세대'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더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회사에서 팀을 이끄는 분들, 관리자급 분들께 꼭 권하고 싶어요. 사지 않으셔도 좋으니 도서관에서라도 한 번은 읽어보셨으면 해요. 그러면 조직 생활이 조금 덜 버겁고, 2030과도 덜 어색해지고, 덜 외로워지실 거예요."

▶ 젊은 세대와 대화를 나누며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된 순간이 있었나요.
"많았죠. 특히 20·30세대의 섬세함에 여러 번 놀랐어요. 어떤 분은 저와 일면식도 없는데, 성 정체성과 관련해 겪은 일을 길게 메일로 털어놓으셨어요. 그걸 보며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말할 것인가'가 이 세대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깨달았습니다. 저희 세대는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데 더 익숙해서,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훈련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 강원국 작가님의 신간 추천사를 쓰면서 이런 글을 적었어요. '우리는 살기에 급급했다. 공부하고 취직하고 일하면서 참 열심히도 살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모른 채. 그래서 그렇게 상처받고 부대끼며 아파했는지 모른다.'
이제라도 다시 배웠으면 좋겠어요. 40·50·60 세대가 지금이라도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지’를 돌아본다면 인생 후반의 관계가 훨씬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어요. 이 책이 그런 배움과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회화의 껍질을 조금 벗고, 나의 삶을 다시 찾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요."
▶ 세대 갈등을 두고 흔히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태도가 있다고 보시나요.
"먼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해요. 2030과 4050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서로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각자 다른 시대를 살아온 하나의 인격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 인지가 없으면 '우리는 이랬는데 왜 저럴까', '왜 회식에 저렇게 적극적이지?', '왜 회식이 싫지?' 같은 오해와 불편이 계속 생기거든요. 이해는 그다음 문제예요. '다를 수 있다'는 마음을 먼저 품으면, 비로소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는 것 같습니다."
▶ 책 속 사례들을 보면 상처를 주려는 의도보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 더 많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질문 하나만 있어도 대화가 달라진다고 하셨는데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질문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의 여유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말을 꺼내기 전에 3초만 '이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를 떠올려보는 거예요. 1분도 아니고, 아주 짧은 3초의 멈춤이 대화를 완전히 달라지게 하거든요.
저는 생방송을 오래 하면서 말의 파장을 여러 번 경험해왔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한 번 더 걸러 말하는 습관이 생겼죠. 물론 저도 실수합니다. 다만 그 3초를 의식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실수의 확률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요."
▶ 사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2030과 시간을 내어 이야기 나누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다못해 밥, 커피도 사야 하고요. (웃음) 그럼에도 그런 대화를 기꺼이 즐기시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무엇을 얻는다고 느끼시나요.
"얻는 게 정말 많아요. 젊은 세대와 이야기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건 결국 제가 넓어지는 거거든요. 그러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세대나 직업이 달라도 '말이 통하네'라는 경험을 하게 되죠. 제게는 큰 자산이에요.
학생들과 티타임을 15년 넘게 이어오면서 중간에 고비도 있었어요. 약속을 몇 번이나 펑크내는 친구도 있었고요. 그때 방송을 통해 친해진 정신과 선생님께 '그만둘까 고민된다'고 했더니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그걸 계속하면 당신 얼굴이 달라질 거예요. 내 말을 이해해줄 사람처럼 보일 겁니다.' 그 말이 저에게 큰 용기가 됐어요.
지금 강연을 다니다 보면 처음 뵙는 분들도 저를 '내 편'이라고 느끼고 이야기해 주세요. 아마 오랫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온 시간이 제 얼굴에 쌓였기 때문이겠죠. 길을 물을 때도 우리는 더 편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잖아요. 그래서 저는 4050도 젊은 세대와 더 자주 대화를 나눠보셨으면 좋겠어요. 그 시간이 쌓이면 결국 상대를 편하게 하는 얼굴, 안심하고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갈 거예요."
▶ 제자이기도 한 박상영 작가는 이금희 씨에 대해 "감정의 경제성을 가진 사람", "세상만사에 연연하지 않는 도인 같다"고 표현했던데요. 동의하시나요? (웃음)
"아마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감정에 오래 머무르면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연민과 후회에 빠지면 앞으로 못 나아가거든요. 그래서 슬프거나 속상하고 괴롭고 울적할 때 제 감정에게 말해요. '잠깐 뒤로 가 있어'"
▶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저는 늘 감정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봅니다. 예를 들어 18년 진행하던 '아침마당' 하차 통보를 받았을 때도, 감정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을 차례대로 떠올렸어요. 행여 기사를 통해 먼저 알게 됐다가 놀랄 부모님과 가족, 가까운 친구들에게 직접 알려야 했고, 제 하차로 수입에 타격이 있을 스타일리스트에게도 미리 이야기해야 했죠. 매일 함께 고생하던 제작진과 스태프들에게도 어떻게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고요.
스태프들 이름을 일일이 받아 적어 영화표를 봉투에 넣어 준비하고, 오래 함께해주신 패널 선생님들께도 따로 연락을 드렸어요. 그렇게 제가 하고 싶은 소소한 마무리 의식들만 처리해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슬퍼할 겨를이 없더라고요.
목록을 적고 순서대로 실행해보면 감정은 자연히 누그러져요. 나중에 조용히 그 감정을 다시 꺼내 '그래, 참 슬펐지'라고 인정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감정을 잠시 뒤로 보내고, 이성을 앞세워 작은 할 일부터 시작하는 것. 그러면 삶이 훨씬 덜 흔들립니다."

▶ 어려서부터 고민 상담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비공인 상담 경력이 중2 때부터'라고요. DJ를 맡은 라디오에서도 18년째 사연을 듣고 답하고 계십니다. 상담은 오지랖과 도움 사이의 경계가 참 어려운 일인데요. 전 국민이 듣는 생방송에서 그 선을 어떻게 지켜오셨나요.
"그 경계는 지금도 늘 고민해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도 선은 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제작진이 제가 멈춰야 할 지점을 알려줘요. 방송이 끝나고도 PD·작가들이 '오늘 코멘트는 좋았어요', '그 표현은 지금 세대엔 올드해 보여요', '그건 선 넘을 수 있어요' 같은 솔직한 피드백을 해주죠. 저는 '싫은 말도 꼭 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이에요. 한 번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순간에도 '선 긋기'를 제작진이 잡아주니, 저는 그 테두리 안에서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죠."
▶ '그 말, 조금 다르게 해야 했는데' 하고 뒤늦게 마음에 남은 말도 있으신가요.
"그런 생각, 거의 매일 합니다. 라디오 끝나고 걷다 보면 문득 떠올라요. '오늘 그 말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해야 했는데, 혹시 상처받지 않으셨을까.'
어떤 날은 사연에 꽤 강하게 말할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전 남자친구에게 매달리지 마세요. 도움이 안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마음 한쪽에서 '너무 냉정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날은 다음 방송에서 직접 A/S를 합니다. '어제 제 말이 조금 날카로웠을 수 있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제 동생이라면 저는 그렇게 조언했을 것 같아요'라고요.
저도 완벽하지 않아요. 다만 후회가 남으면 그냥 두지 않고, 생각하고, 사과하고, 다시 배우려 하죠."
▶ 공감하고 들어주는 일은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를 소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공감의 피로는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저는 다행히 체력이 좋은 편이에요. 또래들과 이야기하다 내린 결론이 '결국 모든 게 체력'이라는 거예요. 체력이 있어야 사람도 만나고, 일도 하고, 마음도 돌보고, 가족도 챙기니까요.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도 쉽게 약해지거든요.
운동도 꾸준히 합니다. 필라테스를 계속해오고 있고, 특히 걷기가 큰 역할을 했어요. 이번 책을 쓰면서 '매일 만 보 걷기'를 결심했고, 더우면 쇼핑몰을 돌고, 시간이 없으면 새벽에라도 꼭 걸었습니다.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글감이 되기도 했어요.
또 하나는 몰입과 망각입니다. 누군가의 얘기를 들을 때는 온전히 집중하지만, 돌아서면 툭 하고 내려놓아요. 그 순간엔 깊이 들어가지만, 오래 품지 않는 성향이에요."
▶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잘 듣는다는 건 내 것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간과 에너지, 감정과 경험을 함께 쓰는 거죠. 단순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고 '그럴 수 있겠다'고 반응하고, 질문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화예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잘 들어준 사람을 오래 기억하죠. 그래서 농담처럼 말하곤 해요. ‘지금 소개팅을 나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웃음) 상대가 관심 있는 걸 묻고, 적극적으로 들어주면 되니까요."
▶ '서로를 알아주는 한마디가 마음에 봄을 불러온다'고 쓰셨습니다. 그런 한마디가 남아 있는 순간이 또 있으신가요.
"책에는 쓰지 않았지만, '당신 목소리는 낮은 도 같다'는 말을 들었던 때가 있어요. 아주 오래전이고 누가 했던 말인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청취자나 방송 관계자분이었을 거예요. 설명하시길, 낮은 도는 어떤 화음에도 잘 어울리지만 스스로 과하게 드러나지 않는 음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음이 없으면 전체 화합이 깨진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리 내어 전면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서 화음을 완성해주는 목소리. 20년도 넘은 기억인데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어요."
▶ 책에서 젊은 세대에게 여러 번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독 2030에게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년 동안 티타임에서 학생 1500여 명을 만났어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 버텼을까'를 수도 없이 생각했습니다. 저희 세대는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고, '일할 곳을 찾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길이 있었어요. 꼭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선택지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처음부터 경쟁 속에 서 있어요. '어떤 동아리가 취업에 도움이 될까요?' 이런 것까지 물어봅니다. 얼마나 물어볼 데가 없으면 저한테 물어봤을까 싶고… 저와 함께하는 30분은 그 학생에게도, 저에게도 매우 소중한 시간인데, 그 소중한 시간에 그 질문을 들고 왔다는 건 그만큼 절실한 고민이라는 뜻이잖아요.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어요.
저는 아나운서를 꿈꾸며 스스로 선택해 방송국이 유명하다는 숙대로 갔어요. 하고 싶어서 한 선택이었죠. 그런데 요즘 많은 학생들은 '해야 해서' 움직이는 모습이에요. 그게 기쁘겠어요, 즐겁겠어요, 행복하겠어요?
제가 미안하다고 말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죠. 그런데도 한 사람의 어른이라도 미안하다고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너희 편이다', '도와주고 싶은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는 어른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말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해오셨습니다. 요즘은 이념·계층·성별 갈등까지 겹쳐 사회 전체가 날카롭게 말로 충돌하는 느낌입니다. 모두가 예민하고,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상처 주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큰 해법은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 말이 우리를 상처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하는 것, 그게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겐 칼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기면 말의 톤도 자연히 달라지거든요.
갈등이 깊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그 위험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그냥 흘려보내는 데 있다고 봐요. 그래서 '지금 이대로 두면 골이 더 깊어진다', '말을 바꾸려면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나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 책에 대한 챕터를 따로 썼을 만큼 애서가라고 밝히셨습니다. 평소 책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제일 행복해하는 주말 루틴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 노트북과 책 두세 권을 들고 카페로 갑니다. 사람이 없는 오전 시간,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써요. 점심을 먹고 두 시간쯤 산책을 한 뒤, 또 조용한 카페를 찾아서 책을 보죠. 저녁에는 영화 한 편 보고 다시 산책하고 집에 돌아오면,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기분이 들어요. 이런 주말을 몇 주 못 가지면 스트레스가 쌓일 정도예요.
별도의 '독서 시간'을 정해놓지는 않아요. 틈틈이, 어디서든 읽습니다. 차 안에도 몇 권, 집에도 곳곳에 책이 놓여 있고, 메이크업 받을 때도 읽고요.
예전에 읽은 책에 '15분씩 네 권을 번갈아 읽으면 집중력이 유지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저는 자연스럽게 여러 권을 오가며 읽어요. 집에서 읽다 책을 두고 나오면 차에 있는 책을 읽고… 그러다 보니 항상 서너 권 정도를 병행하게 됩니다."
▶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제가 쓰는 글은 말랑해서 의외일 수도 있는데, 읽는 책은 오히려 딱딱하고 사유를 넓혀주는 책을 좋아해요. 분야와 상관없이 넓게 파고 깊게 확장하는 책들. <사피엔스> 같은 책도 아주 좋아합니다. 비문학과 인문서를 많이 읽고, 소설도 읽지만,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책에 자주 손이 가요.
지금 가방에 있는 책은 <당신은 태어나겠다고 선택하지 않았다>예요. 어제 받은 철학책인데 메이크업 받으며 첫 장을 펼쳤더니 바로 마음에 들더라고요. '당신의 인생이 아주 소중하다는 기분과 그 기분의 근거를 대지 못할 수 있다는 앎 사이의 불일치가 바로 부조리함의 정체다. 의미를 찾는 우리와, 그걸 내주지 않으려는 우주와의 대결이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맞지, 맞지' 하면서 읽었습니다. 앞부분만 읽고도 '이건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인생 책'을 꼽아주실 수 있나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제 인생 책이에요. 문장도 좋고 내용도 좋고, 도입부부터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저는 농담처럼 '세상은 <코스모스>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말하곤 합니다. (웃음)
그런데 지금 집에는 그 책이 없어요. 유튜브 '마이금희' 구독자 이벤트에 애장품으로 선물했거든요. 밑줄과 낙서가 잔뜩 있는 책이라 내드리기 부끄러웠지만, 약속을 지키느라 드렸습니다. 팬분들은 오히려 그런 흔적이 있는 책을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 책에서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책 읽는 모임과 봉사 현장을 추천하셨습니다. 특히 "책을 매개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책은 사람을 사유하게 만들죠. 생각하는 순간에는 자기반성과 점검이 반드시 들어가요.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고, 사유하지 않는 사람이죠.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 하나 있어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되거든요.
자기를 돌아보고 점검하고 사유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쁜 사람이 되겠어요. 그래서 저는 책 읽는 사람 중에는 좋은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믿어요."
▶ 실제로 2009년부터 책 모임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신다고요.
"네, 벌써 15년이 훌쩍 넘은 모임이에요. 처음엔 저와 선배 아나운서 한 명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들어오고 나가는 분들도 있고요. 10년 넘게 함께한 멤버도 있고, 대학원 후배나 방송 작가·아나운서 등 주변 분들이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알음알음 이어져 왔습니다. 예전에는 직접 만나서 책을 읽고 이야기했는데, 요즘은 2주에 한 번 줌으로 모여 책을 읽고 나눠요."
▶ "초등학교 4학년, 계림문고 어린이 명작동화 100권 한 질을 집에 들여놓은 날이 생애 가장 기뻤던 날 중 하나였다"라고 쓰셨던데요. 그 외에도 책과 관련된 행복한 순간이나 인상 깊은 경험이 있나요?
"사실 좀 '미친 사람처럼' 보일까 공개하기 망설였던 기억이 하나 있어요. 박사과정 시절입니다. 아침엔 TV 생방송, 낮엔 학교 강의와 대학원 수업, 저녁엔 라디오 생방송… 그러다 논문을 쓰자니 한국 자료가 부족해 영문 논문을 36시간씩 붙들고 앉아 읽던 때였어요. 잠은 차에서 15분씩 쪽잠으로 때우고, 지도교수님 미팅 일정마다 분량을 채워가며 계속 고쳐야 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도 책 모임에는 거의 빠지지 않았어요. 독서 모임에서 다루는 책을 읽어가야 참석할 수 있는데, 저는 잠잘 시간도 없으면서 인문서를 후루룩 읽어가며 모임에 나갔죠. 이번 책에 그 에피소드를 썼더니, 모임 멤버들이 '언니 그때 정말 어떻게 나왔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책을 읽어야 숨을 쉴 수 있었어요. 딱딱한 학술논문만 붙들고 있으면 가라앉는데, 책 모임에서 읽는 말랑말랑한 문장이 저를 살렸거든요. 정말 책과 책 모임이 없었다면 그 시절을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책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런 느낌이 어떤 건지 조금 아실 거예요. (웃음)"
▶ 책 추천을 미리 부탁드렸는데, '내가 고르면 절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한 책' 위주로 골라주셨다고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편식이 있어요. 소설만 읽는 사람, 인문만 읽는 사람… 저도 서점에 가면 늘 같은 코너만 돌고요. 그래서 추천할 땐 본인이 평소에 선택하지 않을 책을 권하려고 했어요. 남이 건네주는 책은 나를 전혀 다른 길로 데려가거든요.
예를 들어 조승리 작가, 김승섭 교수의 책은 이곳저곳에 많이 소개됐지만 독서 모임에서 얘기해보면 의외로 모르는 분이 많았어요. 제목부터 '타인', '고통' 같은 단어가 들어가면 어렵게 느껴지고, 펼치면 소수자·사회문제가 등장하니 쉽게 손이 안 가는 책이죠. 그래서 더욱 추천하고 싶었어요.
소설도 SF는 또 잘 안 읽는 분들이 많아요. <저주토끼> 같은 작품도 그렇고요. 현실과 조금 거리가 있는 장르라 외면하기 쉽지만, 저는 생각의 폭을 확장하는 데 SF만큼 좋은 장르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설을 추천할 때는 일부러 SF 중심으로 골랐던 것 같습니다."



1.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 김승섭-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햇볕 아래 앉아 있더라도 그늘진 그곳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2.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 강혜인, 허환주- 하루에도 몇 번씩 배달 앱을 누를 때 한 번쯤 생각해 보자. 라이더들의 삶과 일상을.
3.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조승리- 청소년기에 맞이한 중도 실명에도 씩씩하고 지랄 맞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당당한 이야기.
4.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 남유하- 말기 암 엄마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조력사를 원할 때 당신이 그 딸이라면?
5. <슬픔의 틈새> | 이금이- 80여 년 전 사할린, 그 얼어붙은 땅에 씨를 뿌리고 뿌리 내리며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6.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 민태기- 과학이 나라를 살린다고 믿은 우리 선조들의 놀랍도록 지적이고 열정적인 이야기.
7. <저주토끼> | 정보라- 잔혹 동화처럼 어린 시절 옛이야기처럼 당신을 매혹하는 정보라 작가의 자줏빛 상상력.
8. <고독 깊은 곳> | 하오징팡- 일정한 시간마다 도시가 접힌다면? ‘접는 도시’를 비롯해 계급 사회의 우화를 그려낸 단편집.
9. <클라라와 태양> | 가즈오 이시구로- 챗GPT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절친이 된 당신과 속 얘기까지 나누며 지낸다면?
10.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서늘한 겨울날 새벽, 난로 위의 주전자 같은 소설. 일상의 온기와 냉랭한 균열을 그린다.
<i>'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i>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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