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후보자가 30일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 행위"라며 "1년 전 엄동설한에 내란 극복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임시 집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며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그는 이날 692자 분량의 입장을 밝히며 '사과'라는 표현을 다섯 차례 썼다.
그는 "당시는 제가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정당에 속해 정치를 하면서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과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놓쳤음을 솔직히 고백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오후 "내란과 관련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말한 지 하루 만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 후보자는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저의 판단 부족이었고 헌법과 민주주의 앞에서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한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추운 겨울 하루하루를 보내시고 상처받으신 국민들, 저를 장관으로 또 부처의 수장으로 받아들일 공무원들, 모든 상처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 수행에 대한 의지도 강조했다. 그는 "제가 평생 쌓아온 경제 정책 경험과 전문성이 대한민국 발전에 한 부분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제게 내려진 책임의 소환이며 저의 오판을 국정의 무게로 갚으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했다"며 "말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로 이 사과의 무게를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계엄으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청산하고,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다시 한번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온몸으로 헌신하신 민주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지명 직후 이 후보자를 제명한 국민의힘은 "왜 '과거의 이혜훈'과 싸우며 포퓰리즘 정권의 들러리가 되려 하는가"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그동안 이혜훈 후보자는 재정 건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온 보수진영의 정통 경제학자였다"며 ". 2020년,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과의 토론에서도 '헛돈을 쓰는 것보다 적은 돈으로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단언했고, 이 대통령의 기본소득과 현금 살포식 확장 재정을 '포퓰리즘 독재'라고까지 비판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랬던 그가 바로 그 정책 노선을 진두지휘할 '예산 사령탑'을 자청하고 있다"며 "현재 이 정권은 사실상 공산당식 '자아비판'을 요구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과거의 발언을 스스로 거둬들이고 비판을 철회하며, 권력의 노선에 공개적으로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노골화되고 있다"며 "이혜훈 후보자가 어디까지 입장을 바꾸고 어떤 모습으로 전향할지 지켜볼 일입니다만, 그 과정은 결국 그의 학문적 양심과 정치적 명예를 갉아먹는 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혜훈 후보자가 끝내 자진 철회하지 않고 고난의 길을 택한다면, '과거의 이혜훈'과 고통스럽게 싸우게 될 것"이라며 "포퓰리즘 독재 정권의 들러리가 되지 마시라"고 재차 당부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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