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노사가 2030년까지 한국의 연평균 실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700시간대로 낮추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공개했다. 내년 상반기 포괄임금 규제를 입법화하고 근무시간 외 연락을 차단할 권리도 제도화한다. 노동절도 공휴일로 지정해 공무원도 쉴 수 있게 한다.
30일 고용노동부는 노·사·정이 참여한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이 서울 RENA 컨벤션센터에서 공동선언과추진 과제를 발표하는 ‘실노동시간 단축 대국민 보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출범한 추진단은 약 3개월간 총 25회의 회의와 현장 방문을 거쳐 로드맵을 마련했다.
추진단은 내년 상반기 중 실질적인 노동시간 개편 입법에 착수한다. 핵심은 포괄임금제 오남용 금지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정액급제를 개선하고 노동시간 기록·관리 의무를 법제화한다. 임금대장에는 근로일수와 함께 연장·야간·휴일근로 발생 시 근로일별로 근로 시간을 반드시 기재하도록 한다.
노동자 동의가 있거나 불리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포괄임금을 허용하는 현행 판례 기준을 입법으로 정식 제도화 한다. 포괄임금 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직접 주문했던 사안으로, IT업종이나 전문직 등을 중심으로 임금체계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근무 시간 외 불필요한 연락을 자제하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제도화한다.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연락에 응답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내용이다. 퇴근 후 상사의 전화나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에도 법적 제동이 걸린다. 추진단은 이를 내년 상반기 제정 예정인 ‘실근로시간단축지원법’에 제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노동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공무원·교원까지 확대 적용(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 △노사의 실노동시간 단축 노력을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실근로시간단축지원법’ 제정도 추진된다. 다만 경영계가 시급성을 제기해 온 화이트칼라이그젬션 문제나 반도체 산업의 근로시간 특례 등은 이번 로드맵에서 제외됐다.
추진단은 '건강한 일터 조성' 과제로 연차·반차·휴게시간 제도를 전면 손질한다. 우선 연차휴가를 4시간 단위 반차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상반기 내 근로기준법을 개정한다. 연차 사용을 이유로 근무평가·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도 함께 입법화 한다.
또 반차 사용 시 4시간 근무 후 30분 휴게시간 없이 바로 퇴근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친다. 현재는 4시간 근무 시 무조건 30분 휴게를 줘야 하는 강제 규정이 적용돼 법적으로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곧바로 퇴근하는 게 위법이다.
노동시간 격차 해소 차원에서는 중소·영세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노동자·기업이 공동 적립하면 정부가 보태는 ‘휴가비 40만원 적립 제도’를 2026년 10만 명에게 지원한다. 근로자가 20만을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가 각각 10만 원씩 보태 적립하는 방식이다.
최근 쿠팡 등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새벽 배송 등 야간노동자 건강보호 대책 마련에도 착수한다. 내년 상반기 내 해외사례를 분석하고, 하반기 중에는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야간노동자 건강보호법 대책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야간노동자 건강 보호를 위해 쿠팡 등 새벽배송 업종의 야간노동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2026년 하반기 건강 보호 대책을 마련한다. 특별연장근로에 대해서는 사후 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노동시간 적용제외·특례업종에 대해서도 2026년 상반기 전수 점검 후 개선안을 내놓는다.
다만 추진단은 법정노동시간 단축, 연장근로 상한, 일 최장 노동시간 제한, 유연근무제 단위기간·절차 요건, 근무일 간 휴식시간 보장, 연장·휴일·야간수당 할증률 조정. 연차휴가 확대 및 저축제도 등은 노사 간 이견을 이유로 ‘추가 논의 과제’로 미뤘다.
노동계의 요구였던 주4.5일제는 당초 입법이 거론됐지만 이번에는 법제화 대신 정부 지원 정책으로 선회했다. 육아기 10시 출근제, 주4.5일제 도입 사업장에 대해 2026년부터 324억 원을 투입해 720개 사업장을 지원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는 노사정이 함께 논의하고 추진하기로 한 입법과제 등이 신속히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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