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30일 15:3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온시스템의 대규모 유상증자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대표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실권주 1800억원어치를 떠안게 됐다. 실권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한 데다 증자에 앞서 80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까지 제공한 만큼 NH투자증권이 단순한 주관사를 넘어 사실상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온시스템은 이날 9834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대금 납입을 마무리한다. 앞서 진행된 구주주·우리사주·일반공모 청약 결과 최종 청약률은 81.62%에 그쳤다.
발행 예정 주식 3억4750만주 가운데 6385만7629주가 미청약 물량으로 남았다. 주당 발행가 2830원을 기준으로 하면 1807억원 규모의 실권주가 발생했다. 해당 물량은 잔액 인수 계약에 따라 단독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전량 인수한다.
이번 증자가 마무리되면 NH투자증권은 한온시스템 지분 6.22%를 보유한 3대 주주로 올라선다. 기존 최대주주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지분율은 54.77%에서 51.07%로 낮아진다. 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사모펀드(PEF) 한앤코오토홀딩스의 지분율도 21.6%에서 14.3%로 희석된다.
시장에서는 실권 규모 자체보다 NH투자증권이 부담을 줄이기 위한 통상적인 관행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유상증자 주관 계약을 맺을 때는 실권 발생 시 인수 부담을 감안해 인수금액의 10~20% 수준의 실권 수수료를 책정한다. 하지만 이번 거래에서 NH투자증권은 실권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9834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독으로 주관하고도 인수 수수료는 모집총액의 0.4%인 약 39억원에 그쳤다.
증자 이전에 제공한 자금을 지원한 점도 눈에 띈다. NH투자증권은 이번 유상증자에 앞서 한온시스템에 만기 4개월의 브릿지론 8000억원을 공급했다. 금리는 연 3.2% 수준이다. 유상증자 대금이 유입되기 전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와 차입금 상환을 위해 NH투자증권이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한온시스템은 유상증자 대금으로 해당 브릿지론을 상환할 계획이다.
IB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단일 딜이 아닌 ‘패키지 딜’로 평가한다. NH투자증권은 브릿지론 이자 수익과 유상증자 인수 수수료를 합쳐 100억원이 넘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대신 대규모 주식 인수에 따른 주가 변동 리스크를 동시에 떠안게 됐다.
이 같은 구조는 한온시스템과 NH투자증권 간의 오랜 관계를 고려하면 예견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온시스템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매각된 이후인 2016년부터 10년간 공모채 발행을 모두 NH투자증권에 맡겨왔다. 이번 유상증자는 한온시스템이 사실상 처음으로 진행한 대형 주식자본시장(ECM) 거래였는데 이 역시 NH투자증권이 단독으로 주관했다.
NH투자증권으로서는 실권주 인수 부담에도 불구하고 거래 안정성을 지키며 핵심 고객과의 파트너십을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반대로 한온시스템은 청약 부진 속에서도 증자를 완주하며 재무구조 개선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청약 흥행만 놓고 보면 아쉬운 딜”이라며 “주관사의 책임 인수와 이후 물량 관리가 전제된 만큼 NH투자증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실권주를 시장에 소화하느냐가 향후 한온시스템 주가 흐름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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