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호텔 체인과 국내 주요 호텔들이 거대 온라인여행사(OTA)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숙박료의 최대 25%에 달하는 중개 수수료 부담을 덜어내 수익성을 개선하고, 급부상하는 인공지능(AI) 시장을 선점해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고객을 직접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OTA업계도 AI 기반의 초개인화 서비스와 콘텐츠 커머스 등 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며 여행 시장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맞서고 있다.

◇OTA엔 없는 경험 파는 호텔
30일 호텔업계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메리어트, 힐튼 등 글로벌 호텔 체인은 최근 OTA를 배제한 ‘소비자 직접 판매(D2C)’ 역량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인터내셔널은 멤버십 ‘본보이’ 회원을 지난 9월 기준 약 2억6000만 명까지 늘렸다. 전년 동기 대비 18%가량 급증한 수치다. 메리어트는 단순히 호텔 투숙객만 받는 것이 아니라 우버, 스타벅스, 신용카드사 등과 전방위적 제휴를 맺고 이들의 고객이 호텔 예약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OTA 영향력에서 벗어난다는 전략이다.
힐튼은 자사 포인트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포인트 사용처를 객실 예약을 넘어 럭셔리 크루즈인 ‘MSC 익스플로러 저니’ 결제로 최근 확장했다. 회원이 최저가를 찾아 OTA를 헤매는 대신 힐튼 앱에서 포인트를 쌓아 크루즈 여행을 가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힐튼은 영국 국가대표 축구팀 훈련장 내 호텔의 ‘축구 테마 스위트룸’을 자사 예약 채널에만 공개하며 직접 예약을 유도하고 있다.
국내 주요 호텔 행보도 비슷하다. 롯데호텔앤리조트는 무료 멤버십인 ‘리워즈’ 혜택을 강화하는 동시에 ‘트레비클럽’ 등 유료 멤버십을 세분화해 충성 고객층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OTA를 통하면 받을 수 없는 객실 업그레이드나 전용 라운지 이용 혜택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 중이다. 인터컨티넨탈(IHG), 웨스틴(메리어트) 등 글로벌 브랜드를 쓰고 있는 파르나스호텔과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이들 호텔 체인 멤버십 외에 자사 멤버십까지 별도로 내놓고, 자사 멤버십에 더 큰 혜택을 준다.
◇AI가 바꾼 게임의 법칙
호텔들이 이처럼 플랫폼에 과감히 맞서는 배경에는 생성형 AI가 있다. 과거 구글, 네이버 등 검색 위주 시대에는 OTA가 막대한 광고비를 써서 검색 결과 상단을 장악했지만 챗GPT 같은 대화형 AI 시대에는 판도가 달라졌다. AI에 “조용한 휴양지 찾아줘”라고 물으면 AI가 OTA 목록을 나열하는 대신 호텔 공식 사이트 정보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들이 최근 웹사이트 구조를 AI가 읽기 쉽게 바꾸는 ‘생성형 엔진 최적화(GEO)’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제프 발로티 윈덤호텔앤리조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생성 AI 툴은 호텔 기업이 OTA 의존도를 줄일 유일한 기회”라고 말했다.
OTA업계도 비즈니스 모델을 뜯어고치며 대응하고 있다. 단순 중개를 넘어 기술과 콘텐츠 기업으로 진화해 호텔들의 이탈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1위 객실 예약 플랫폼 야놀자의 ‘놀유니버스’는 방대한 이용자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고객이 검색하기도 전에 취향에 맞는 숙소를 먼저 제안하는 ‘초개인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개별 호텔이 갖추지 못한 방대한 비교 데이터를 무기로 소비자를 플랫폼에 묶어두겠다는 것이다.
트립닷컴은 여행업계 인스타그램을 표방한다. 여행기 공유 커뮤니티인 ‘트립 모먼트’를 앱 전면에 배치해 이용자가 콘텐츠를 즐기다 자연스럽게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발견형 커머스’로 차별화를 꾀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