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조작국 지정은 미국 재무부가 내놓는 ‘주요 교역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환율보고서)’를 통해 이뤄진다. 재무부는 △대미 무역흑자 150억달러 초과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GDP 2% 이상 규모의 달러 순매수가 8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등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다.미국은 조작국으로 지정된 정부에 우선 시정을 요구하고, 1년의 개선 기간을 준다. 그럼에도 시정되지 않으면 본격적인 제재에 들어간다. 우선 미국 기업의 해당국 투자를 제한한다. 또 조작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조달 계약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고, 보조금 등 재정 지원을 끊는 조치도 이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추가 감시를 요구하는 등 글로벌 제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 1988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된 적이 있다. 3저 호황으로 환율 관리에 나선 시기다. 이듬해 명단에서 빠졌고, 지금까지 재지정되지 않았다. 대신 한국은 현재 ‘환율 관찰대상국’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 재무부의 환율 조작국 기준을 두 개 충족하면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조작국이 될지를 유심히 지켜보겠다는 경고성 조치다.
미 재무부는 지난 6월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550억달러, 경상 흑자는 GDP 대비 5.3%라고 설명했다. 세 가지 기준 중 무역과 관련된 두 가지를 충족했다는 것이다. 외환시장 개입 요건만 남은 상태에서 외환당국이 적극적 개입을 단행하자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은 이와 반대 방향이다. 달러를 팔아 원화 가치를 높이는 게 목표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방향이기 때문에 미국이 딱히 문제 삼을 일이 없다. 글로벌 투자은행(IB) ING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순달러매수 비율은 -0.4%로, 순매도로 나타났다. 미국의 기준인 2% 순매수와는 방향 자체가 달랐다.
물론 미국이 세 가지 정량적 기준만 가지고 환율 조작국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조건을 미충족했음에도 양국 무역 갈등의 영향으로 조작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9월 ‘환율 합의’가 이뤄지면서 정성적 문제도 대체로 해소한 것으로 평가된다.
걱정해야 할 것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개입이다. 국민연금의 연금 지급액이 늘어나는 시기가 오면 지금과 달리 해외 자산을 대규모로 팔아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환율이 급락할 수 있다. 이 경우 급격한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선다면 이는 미국이 문제 삼는 방향의 개입이 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미래 상황까지 고려한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 전략,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