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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정부가 보여준 노란봉투법의 민낯

입력 2025-12-30 17:38   수정 2025-12-31 00:42

고대 로마시대 때 얘기다. 당시 석조 건축의 백미는 반원 모양의 아치형 다리였다. 수직 기둥에 상판을 그대로 얹는 직선형 다리보다 내구성이 좋았다. 벽돌을 아치 형태로 맞물려 쌓아 상판의 하중을 분산시킨 덕분이다. 대형 교량 건설에 적용할 수 있어 로마제국 영토 확장에 큰 도움이 됐다.
목숨을 건 설계자들
하지만 공사 막바지에 커다란 위험에 직면한다는 게 문제가 됐다. 아치 형태로 쌓아 올린 벽돌 자체 힘만으로 버틸 수 없어 다리 곳곳에 임시로 고정한 가설물을 빼는 시점이다. 이때 다리 설계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아치 밑에 서야 한다. 이른바 ‘진실의 순간’에 설계가 잘못됐거나 벽돌이 부실했다면 다리는 무너지고 설계자는 즉사한다. 설계자가 아치 밑에 서기를 거부한다면 그 다리에 결함이 있음을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자신의 설계가 옳다는 점을 목숨 걸고 증명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낙하산 포장병도 같은 처지였다. 그들은 낙하산을 공수부대로 보내기 전 직접 포장한 낙하산 중 하나를 택해 비행기 밖으로 몸을 던졌다. 로마시대 다리 설계자처럼 낙하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입증했다. 동료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엄중한 책임감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블랙 스완’ 이론으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는 이런 용단을 ‘스킨 인 더 게임’으로 묘사했다. 피부를 게임에 걸 정도로 자신의 결정과 행동으로 빚어진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탈레브 관점에서 본다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어떤가. 그동안 기업인들은 정부가 노란봉투법의 불확실성을 줄일 ‘모범 답안’을 제시해주길 기대했다. 하청 기업의 ‘진짜 사장’이 누가 되고, 노조 파업의 가능 범위는 어디까지일지에 대한 혼선을 줄여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정부는 철저히 피해 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6일 내놓은 ‘노란봉투법 해석 지침’에서 ‘기획재정부가 실질적 사용자’라는 공공부문 노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기업의 임금·정원을 통제하는 ‘총액 인건비 제도’는 공공정책일 뿐 공공 부문 노사의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인건비 급증을 막아 국가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뒤로 빠진 한국 정부
같은 논리라면 한국 기업의 원·하청 구조 역시 비용 절감 때문에 생겨났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대기업이 설계하고 협력사가 생산 일부를 분담하는 방식은 단가를 줄여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정부는 이런 특수성을 외면하고 기업만 노란봉투법 적용 대상에 넣고 본인들은 빠졌다. ‘진실의 순간’에 아치 밑에 서지 못한 다리 설계자나 자체 낙하산을 타지 못하는 포장병 신세라는 걸 정부가 자인한 셈이다. “법 설계자는 국회”라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결국 당정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노란봉투법이 문제투성이라고 역설적으로 고백한 정부의 빈틈은 기업이 채울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걸고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를 건너고, 안 펴질 수 있는 낙하산을 타야 한다. 한국 정부의 이런 이중성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탈레브는 “자신의 결정에 따른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지 않는 자들이 세상을 망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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