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플랫폼 업체가 납품 업체와 대리점 경영에 부당하게 개입했을 때 부과하는 과징금 한도가 현행 5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된다. 기업 담합 행위에 대한 과징금 한도도 4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라간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30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차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 처벌은 없애면서 불법 행위에 금전적 불이익을 강화해 실질적인 처벌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당정은 이날 총 331개 형벌 규정을 정비한다고 밝혔다. 시장 지배력이 있는 사업자가 부당하게 가격을 결정하는 행위에 대한 정률 과징금 상한을 관련 매출의 6%에서 20%로 높이기로 했다. 그동안 이 같은 행위에 징역 2년 이하의 형벌을 부과했지만, 앞으로는 시정명령을 내린 뒤 이행하지 않으면 형벌을 적용한다. 단순 행정 착오, 생활 밀착형 위반 행위는 형벌 대신 과태료로 바꿔 국민의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징역·벌금과 달리 과태료는 전과가 남지 않는다.
하도급법 등 331개 규정 재정비

당장 이런 제재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배달의민족과 쿠팡이 사실상 독점한 배달앱 시장이다. 공정위는 두 회사가 배달앱에 가입한 음식점들에 불공정한 요구를 했다는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다. 쿠팡은 이외에도 납품업체로부터 광고비 명목으로 판매촉진비를 받아낸 사건(대규모유통업법 위반) 등에 대한 공정위 조사도 받고 있다. 경제계에선 “이번 정부 대책의 1차 타깃이 쿠팡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경제적 불이익은 크게 강화한 반면 형사처벌은 대부분 완화했다. 통신사가 위치정보 유출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에도 현행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2000만원 이하 형사 처벌을 폐지한다. 그 대신 과징금 한도를 4억원에서 20억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건설사 등이 발주자로부터 선급금을 받고도 하청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부과되는 형벌(하도급대금 최대 두 배 벌금)도 폐지하는 대신 정액 과징금을 2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높인다.
고의성이 없거나 단순 행정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형사 처벌을 과태료로 전환해 기업의 ‘형벌 리스크’를 낮춘다. 금융투자업자가 아닌 기업이 회사 명칭에 ‘금융투자’를 사용해 부과되던 징역형은 폐지하고, 과태료 3000만원으로 완화한다. 자동차 제작사가 온실가스 배출 기준 관련 서류를 기한 내 제출하지 않은 경우에도 벌금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제도를 손질한다. 비료 성분과 효과 등을 과대 광고했을 때 적용되던 징역형 역시 폐지한다.
애견미용실 업주를 비롯한 동물미용업자가 직원을 새로 채용한 후 인력 현황 등의 변경 사항을 구청에 등록하지 않으면 처하는 징역 1년·벌금 1000만원의 형벌을 원천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식품제조가공업 대표자 성명 변경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의 처벌도 징역 5년에서 1년으로 줄인다.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관리비 서류를 보관하지 않은 때의 형벌 역시 과태료로 전환한다. 캠핑카를 튜닝한 뒤 검사를 받지 않았을 때도 벌금 대신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바꾼다.
경제계는 이날 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형사 처벌을 금전적 책임으로 전환하고,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등 그동안 경제계가 문제를 제기한 내용이 다수 반영됐다”고 환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경제 형벌을 개선하기 위해 경제계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담겼다”고 밝혔다.
김익환/이시은/정영효/하지은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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