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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머니 X파일>은 2026년 신년 기획으로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을 ‘트러스트 커넥터’로 제시합니다. 한국이 어떻게 신뢰를 자산으로 바꿔 번영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최근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로 진화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의 단순 저가 공세에서 첨단 로봇, 전기차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원가 이하의 출혈 경쟁을 강요하는 이른바 '1센트의 전쟁'으로 변하면서다. 한국 제조업은 기존의 성장 모델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디플레이션 수출 고착화
1일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의 최신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38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단순한 경기 순환적 현상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한 막대한 잉여 생산 능력이 해외 시장으로 배출구를 찾아 쏟아져 나오는 구조적인 디플레이션이 굳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최근 중국의 과잉 생산은 과거의 철강이나 시멘트만 해당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육성해 온 첨단 분야에 집중돼 있다. 전기 기계, 통신 장비, 의료 기기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의 약 30%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생산을 지속하고 있다.
고든 핸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중국은 엄청난 제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 상품들은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며 "우리는 지금 '차이나 쇼크 2.0' 혹은 3.0의 한복판에 있다"고 진단했다.
'차이나 쇼크 1.0'는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의류, 완구 등 경공업 제품의 물량 공세였다. 2024년부터 본격화돼 지난해 정점에 달한 '차이나 쇼크 2.0'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분석이다. 첨단 로봇공학, 수직 계열화된 공급망, 국가 자본주의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높은 기술-초저가의 쓰나미’라는 지적이다.

2024년 중국의 무역 흑자는 사상 최대인 9920억 달러에 육박했다. 2025년에는 1조 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메버 쿠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산 상품과 경쟁은 많은 기업에 도전이고, 중국이 수출 다각화를 꾀하면서 이런 추세가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중국 내부의 '네이쥐안(內卷)' 현상과 맞물려 가속화하고 있다. 네이쥐안은 '내부로 말려 들어간다'는 뜻이다. 성장 파이가 커지지 않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서로를 죽이는 과당 경쟁에 몰입하는 상태를 말한다. 기업들은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보다는 마른 수건을 짜내듯 원가를 절감해 경쟁자를 죽이는 데 집중했다. 나사 하나, 전선 하나의 구리 함량까지 1센트 단위로 통제하는 원가 경쟁은 전 세계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내 뿌리 산업까지 침식
'차이나 쇼크 2.0'의 대표적인 전선은 B2B 산업재 시장이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처음 한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이들 쇼핑몰을 소비자는 저렴한 공산품을 사는 곳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제조업의 모세혈관인 뿌리 산업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2024년 기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한국 내 거래액은 4조 원을 돌파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이들은 B2C를 넘어 '알리익스프레스 비즈니스' 등 B2B 전용 서비스를 강화하며 한국의 자영업자와 중소 제조기업을 직접 공략하고 있다.
과거 한국의 중소 유통상들은 중국에서 부품을 수입해 마진을 붙여 국내 공단에 공급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공장들이 스마트폰으로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에 접속해 금형 부품, 나사, 베어링, 절삭 공구 등을 직접 주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표적인 도매 플랫폼인 '1688닷컴'의 한국 진출설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발 '모빌리티 쇼크'
최근 '차이나 쇼크 2.0'의 영향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모빌리티 산업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의 BYD는 테슬라를 위협하는 유일한 대항마로 부상했다. 2024년 출시된 샤오미의 첫 전기차 SU7도 시장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와 리서치 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샤오미 SU7은 테슬라 모델 3 퍼포먼스와 비슷한 주행 성능과 제원을 갖췄다.하지만 제조 원가는 국내 전기차보다 1만달러 이상 저렴한 것으로 분석됐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제조에서 축적한 공급망 관리(SCM) 역량과 가전 생태계(IoT)를 자동차에 접목해 비용 효율성을 달성했다는 분석이다. 샤오미는 수십 개의 부품을 하나로 찍어내는 다이캐스팅 기술로 차체 조립 비용을 낮췄다. 자체 개발한 OS를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통합했다.
BYD의 공세는 더욱 압도적이라는 평가다. 2025년 상반기에만 200만 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하며 전년 동기 대비 31% 성장했다. BYD의 핵심 경쟁력은 완벽에 가까운 '수직 계열화'다. UBS의 BYD '실(Seal)' 분해 보고서에 따르면 BYD는 배터리, 모터, 전력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의 75%를 자체 생산한다. 외부 공급업체 마진을 제거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BYD의 LFP(리튬인산철) 기반 '블레이드 배터리'도 성능과 가격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다. 왕촨푸 BYD 회장은 "배터리는 전기차 비용의 최대 40%에 달하는데, 우리는 이를 자체 통제해 높은 마진을 유지하면서도 경쟁사를 가격으로 압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BYD가 물류까지 내재화했다. BYD는 자체 제작한 자동차 운반선을 통해 수출 물류비용까지 통제한다.

중국 로봇의 위협
로봇 산업에서도 중국의 공세는 매섭다. 2025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50% 이상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더 큰 위협은 서비스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서의 가격 파괴라는 분석이다.중국의 로봇 스타트업 유니트리는 2025년 7월, 휴머노이드 로봇 R1을 3만9900위안에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경쟁사인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나 테슬라 옵티머스의 예상 가격보다 저렴한 수준이다. 산업용 4족 보행 로봇은 2700달러 수준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싼 로봇의 등장은 한국의 로봇 스타트업들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하드웨어 제조 원가에서 중국을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수(로봇 밀도) 세계 1위 국가다, 하지만 그 로봇의 대다수가 중국산으로 채워지기 쉽다. 이미 한국 식당가의 서빙 로봇 시장은 중국산이 70% 이상을 차지했다.
커지는 지정학적 리스크
중국발 저가 공세는 거시경제적으로 복잡한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과잉 생산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한다. 고물가에 시달리던 미국과 유럽, 한국의 소비자들은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 저가 전기차 등을 통해 실질 구매력을 높일 수 있다. 2024년 입소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 소비자는 테무와 같은 플랫폼으로 평균 24%의 비용 절감 효과를 누렸다.하지만 부정적 영향은 무시하기 어렵다. '산업의 사막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2년간 섬유·의류 업계 일자리 25만 개가 사라졌다.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신발·섬유 산업의 대량 실직이 중국산 제품과 관련 있다"며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국·말레이시아·인도 등도 반덤핑 조사와 저가 수입품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유럽은 경쟁에 열려 있으나 끝없는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센트의 경쟁'은 무역 장벽도 높이고 있다. 미국은 2025년 8월부터 800달러 이하 해외직구 면세 혜택(디미니머스 규정)을 사실상 폐지했다. 중국산 직구품에 평균 3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U 역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반보조금 조사를 통해 중국산 전기차와 철강을 견제하고 있다. 글로벌 교역 질서가 효율성 중심에서 안보와 블록화 중심으로 재편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지경학적 분절이 장기적으로 세계 GDP가 최대 7%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글로벌 기업들의 설비가 '좌초 자산'으로 전락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중국 내 공장 가동률 저하와 미·중 갈등에 따른 자산 동결 리스크가 결합하면서다.
"트러스트 커넥터로 전환하라"
2026년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가격과 물량의 전면전에서 한국은 중국을 이길 수 없다. 1센트를 깎기 위한 출혈 경쟁은 승산 없는 싸움이다. 해답은 '가격'이 아닌 '신뢰(Trust)'와 '연결(Connect)'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한국의 생존 로드맵으로 '트러스트 커넥터(Trust Connector)' 전략이 거론되는 이유다. 한국이 서방 세계에는 '대체 불가능한 신뢰재'를 공급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와는 기술과 자원을 연결하는 결절점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뢰의 프리미엄화'가 핵심이다. 중국산 제품은 가격 경쟁력은 있지만 데이터 보안과 지정학적 불안정성이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한국은 반도체, 바이오, 방산 분야에서 '백도어 없는 클린 칩', '약속을 지키는 납기'를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우시앱텍이 미국 생물보안법으로 퇴출당할 때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롯데바이오로직스가 그 빈자리를 채우며 글로벌 제약사들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K방산이 유럽의 러브콜을 받는 것은 이런 '신뢰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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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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