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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KBS교향악단, 서울 한복판에서 인류애를 외쳤다

입력 2025-12-31 14:25   수정 2025-12-31 14:26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가 있다. ‘합창’으로 알려진 베토벤 교향곡 9번이다. KBS교향악단이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합창으로 연말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2026년부터 이 악단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할 정명훈과 합을 맞췄다.



이번 합창 공연은 앞으로 3년간 KBS교향악단을 이끌 정명훈이 감독으로서 관객에게 새로 인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가 이 악단과 합창을 연주한 건 올해가 4년 만. 그는 올해에만 이번 공연을 포함해 다섯 차례 합창을 지휘했다. 정명훈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던 2008년부터 연말마다 합창을 선보이곤 했다. 베토벤이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던 말년에 마지막 교향곡으로 작곡한 합창은 악단과 합창단이 함께 인류의 화합을 노래하는 4악장이 백미로 꼽힌다.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정명훈은 음량을 신중하게 조금씩 키워가며 1악장을 시작했다. 현악기는 연주자별로 기민함의 정도가 달랐던 탓에 소리가 뭉쳐 있는 인상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을 살려 섬세하게 노래하는 데 초점을 둔 듯했다. 여느 때라면 천둥처럼 울려 퍼졌을 타악기도 이날은 세밀하게 떨림을 조절하며 현의 부드러움에 호응하는 데 힘썼다. 팀파니스트 이원석은 살짝 끊어치는 듯 절도 있게 북을 두드리며 건조함이 살짝 감도는 잔향과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을 동시에 그려냈다.



2악장에서도 팀파니와 바이올린의 부드러운 조화는 계속됐다. 아주 빠르고 생기 넘치게 연주해야 하는 악장 성격에 맞게 현악기는 1악장보다 기민해졌고, 타악기는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몰입감을 끌어올렸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층층이 소리를 포갤 때면 이따금 오보에나 클라리넷이 고개를 빼꼼히 드러내듯 맑은 소리를 슬쩍 내비치곤 했다. 정명훈은 음압을 크게 키우는 대신 긴장이 풀리는 속도를 조절하고 휴지를 강조하며 이완감을 최대한으로 살렸다. 비올라가 안정감을 더한 3악장에서도 이 기조는 유지됐다.

마지막 4악장에선 악장으로 활약한 루마니아 바이올리니스트인 리비우 프루나루의 열연이 돋보였다. 그는 활을 격렬하게 움직이며 현악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첼로와 베이스가 조금씩 호흡을 끌어올리는 사이 금관은 기쁨에 찬 소리로 합창단의 노래를 예고했다. 테너 손지훈과 소프라노 최지은을 필두로 남녀 합창단이 한데 섞여 ‘안겨라, 만민이여!’를 외칠 땐 그 웅장함과 숭고함에 공연장의 모두가 인류애를 품을 만했다. 악단은 4악장 ‘환희의 송가’ 중 마지막 부분을 앙코르로 다시 연주하는 것으로 이날 공연을 마쳤다.



콘서트홀 밖에선 뜻밖의 여운이 찾아왔다. 객석에서 일어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층 로비로 내려온 이들은 창가 너머 광화문 광장에 놓인 크리스마스 트리들과 알록달록 반짝이는 조명들을 바로 볼 수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광화문 외벽을 빛으로 수놓은 파사드 작품이 관객들을 맞았다. 피부색이 다른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한데 섞인 도심 광장의 들뜬 분위기는 만민을 하나로 묶으려 했던 베토벤의 포부와 맞닿아 있었다. 다른 공연장이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연말을 맞이했기에 만끽할 수 있는 뭉클함이었다.

정명훈과 KBS교향악단은 오는 15일 화성예술의전당 개관을 기념해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협연하는 콘서트로 2026년 일정을 시작한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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