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연말이 되면 미 국세청(IRS)의 발표를 유심히 살핀다. IRS는 매년 말 이듬해 적용될 소득세 과세표준(과표) 구간을 공개한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이를 자동으로 높이는 것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명목소득이 늘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세금 부담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감세(소득세 최고세율 39.6%→37%)가 시행된 2018년 소득세율 35%가 적용된 과표 구간은 20만~50만달러(1인 기준)였다. 이 구간은 2025년 25만525~62만6350달러로 높아졌고, 2026년에는 25만6226~64만600달러로 더 올라간다. ‘숨은 증세’(stealth tax)를 막는 이런 투명한 조세 시스템 덕분에 미국인들은 실질소득이 늘지 않았다면 세금 부담이 증가하지 않는다.
2026년 첫날이 밝았다. 한국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증세가 이뤄졌다. 소득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의 과표가 자동 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표는 어쩌다 한 번 손볼 뿐이다. 특히 35%의 초고율이 적용되는 소득세 과표 ‘8800만원 초과’는 2008년 세법 개편 이후 20년이 거의 다 되도록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부 하위 구간이 소폭 조정된 적은 있지만, 최고 구간의 기준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증여세, 상속세 등 다른 세금도 마찬가지다. 세율 40% 이상이 적용되는 10억원 초과 구간은 1999년 세법 개정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5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이제는 서울 주택 한 채만으로 초고율 상속세 구간에 진입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설명 없는 과세, 동의 없는 증세는 사회적 저항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프랑스 대혁명도, 미국 독립전쟁도 출발점은 세금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조세체계는 수십 년째 몰래 세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나 정치권이 이를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이런 비겁한 증세에 기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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