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디지털 보안 체계는 소인수분해 기반 공개키 암호(RSA)와 타원곡선 암호(ECC)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수학적 난제를 전제로 한 이 암호 체계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하면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난해 2048비트 RSA 암호가 100만 개 미만의 큐비트 연산으로 해독됐다. 불과 6년 전만 해도 2000만 개 이상의 큐비트가 필요하던 것과 비교하면 요구 자원이 95% 이상 줄어든 셈이다.버너 보겔스 아마존웹서비스(AWS) 최고기술책임자(CTO)는 “5년 안에 인터넷·통신·금융거래에 쓰이는 모든 RSA와 ECC 암호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할 수 있다”며 “양자 시대에 대비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보안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딜로이트와 가트너 등 글로벌 컨설팅·조사업체들은 양자 기술을 피지컬 인공지능(AI), 우주 기반 차세대 통신(NEXT G)과 함께 2026년을 대표할 핵심 하이테크로 꼽았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2026년 12대 AI·디지털 트렌드’ 보고서에서 “AI 모델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학습과 최적화 과정에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면서 기존 계산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중국 정부가 올해부터 5년간 중점 육성할 전략 기술 목록에서도 양자 기술이 최상단을 차지했다.

AI산업에서 대규모언어모델(LLM) 다음 ‘버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재 서버 기반 LLM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전기 먹는 하마’로 지적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기 내에서 작동하는 소규모언어모델(SLM) 이른바 에지 SLM이 주목받고 있다. 한동수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팀은 엔비디아 RTX4090 등 에지 GPU를 활용해 LLM 대비 전력 소모와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는 기술인 스펙에지를 최근 개발했다. SLM과 LLM 사이에 고속 통신 경로를 구축해 토큰 검증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 핵심이다.AI 확산과 함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능형 분산 전력망 기술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전력반도체를 전력망 곳곳에 적용해 수요 변화에 맞춰 공급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방식이다. 분산 전력망이 구축되면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분산 자원을 전력 계통에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AI를 통해 최적화할 수 있다. 한국전력과 서울대 등이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까지 AI산업의 중심이 모델을 만드는 ‘학습’에 있었다면 올해부터는 AI 활용이 폭증하는 ‘추론’ 단계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추론의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을 끊김 없이 공급해야 한다. 주요 AI기업이 12~18개월 만에 데이터센터를 완공하고 있지만 발전소가 데이터센터를 전력망에 연결하는 데는 통상 3~5년이 걸린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AI기업들은 가스터빈, 수소 연료전지 등 자체 전력원을 가교 수단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컨피덴셜 컴퓨팅’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이는 시스템 내부에 특수 보안 영역을 마련해 클라우드 환경에서도 데이터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술이다. 의료, 국방처럼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분야에서도 대규모 연산을 위해 AI 클라우드 활용이 늘고 있는 만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신종호 LG전자 소프트웨어센터 연구위원은 “애플과 구글이 최근 컨피덴셜 컴퓨팅 기술 개발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드론 등 피지컬 AI의 움직임을 완성할 차세대 통신기술 역시 수년간 산업계의 핵심 테마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위성, 민간 우주정거장(CSS) 등 우주 기업들이 관련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내년에는 다양한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과 특정 산업에 특화해 매출을 창출하는 로보틱스로 투자가 양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AI를 활용해 단백질·DNA·세포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험 과정을 자동화하는 ‘생성형 바이올로지’ 역시 올해부터 본격 부상할 유망 기술 분야로 꼽힌다.
고은이/김인엽/최영총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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