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바이오업계에서 AI는 뜨거운 화두다. 지난해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 알파폴드를 개발한 연구진이 노벨 화학상을 받으면서 AI가 생물학의 오랜 난제를 풀 수 있다는 기대는 확신에 가까워졌다. 단백질 구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통상 수조원을 들여 10~15년 이상 걸리던 신약 개발 과정은 절반 이하로 단축될 수 있다. 기존에 치료제가 없던 희소·난치질환 치료에 접근할 길도 열린다.
그동안 기술적 낙관론을 가로막은 건 데이터다. AI의 성능은 학습 데이터의 질과 양에 의해 결정되는데, 생물학 분야에는 고품질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공개된 단백질 구조 데이터는 한계가 명확했고, 실험을 통해 구조를 규명하는 과정은 비용과 시간이 과도하게 소요됐다. 이 때문에 다수 AI 신약 개발 기업은 제한된 공개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리즘 성능 향상에도 구조적 제약이 따랐다.
제너레이트바이오메디슨은 이 지점에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AI 성능을 높이기 위해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대신 학습의 원천이 되는 데이터를 직접 만들어내기로 한 것이다. 6600㎡ 규모 실험 공간을 확보하고, 연구실 하나를 구축하는 데만 3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곳에서는 극저온 전자현미경 4대가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마이크 낼리 제너레이트바이오메디슨 최고경영자(CEO)는 “머신러닝의 핵심은 데이터지만, 생물학에는 아직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영역이 많다”며 “AI 기업이 실험 인프라에 직접 투자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전략은 빠르게 성과로 이어졌다. 회사 설립 4년 만에 AI로 설계한 단백질 신약을 세계 최초로 임상 3상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아쇼카 마두리 사노피 글로벌 전략·지능총괄은 “사노피는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AI를 활용한다”며 “초대형 언어모델을 활용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전문가형 AI부터 세계 제조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십억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종합 분석하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노피는 오픈AI 등과 협력해 신약 개발 전 과정에 AI를 적용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신약 하나에 평균 26억달러가 투입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다.
보스턴 바이오 혁신의 배경에는 빅테크의 야심이 원동력이 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케임브리지에 AI연구소를 두고 신약 개발 가속화를 위한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IBM은 MIT와 함께 MIT-IBM왓슨AI연구소를 운영하며 생명과학과 AI를 결합하고 있다. 아바 아미니 마이크로소프트 수석연구원은 “AI 연구 거점을 통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한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AI가 가장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신약 개발”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글로벌 인프라 기업 아카마이도 가세했다. 중앙집중형 클라우드에 강점을 가진 AWS와 달리 네트워크 끝단에서 AI를 구동하는 분산형 인프라를 앞세워 산업 현장에 특화된 버티컬 AI 환경을 제공한다.
로버트 블루모프 아카마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AI산업은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같은 추론을 더 적은 전력과 비용으로 제공하는 효율 혁신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제조업을 잃으며 치른 대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국은 바이오라는 가장 난도 높은 제조 산업을 AI와 결합해 사실상 독점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스턴=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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